그러나 나중에 생각해보니 싱가포르나 홍콩, 혹은 콸라룸푸르를 경유지로 했으면 두 번에 나누어 가는 장거리가 덜 힘들었으리라. 그리고 하루 일정의 관광도 일본보다는 홍콩이나 싱가포르가 여러 모로 훨씬 유리하다고 한다.
일본이나 싱가포르나 안 가본 것은 마찬가지인데 굳이 왜 일본으로 갔느냐고 어느 자리에서 친구들이 묻기에 필자가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친구들이 가관이라며 웃었는데 필자는 지금도 그것이 웃을 일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이렇게라도 가지 않으면 생전 못 갈 것 같아서 갔다. 아직도 풀지 못한 분이 있고 잊을 만하면 한번씩 속을 뒤집어 놓는 인간들이지만 궁금하기는 하지. 어떻게 사나 말야. 하지만 쥐뿔도 없어도 자존심이 있는데 그 집구석 가자고 비자신청까지야 못하지. 근데 이번에는 비자가 없어도 되는데다 공짜라데. 싱가폴이야 나중에라도 가고 싶으면 갈 수 있지만 일본은 내 평생 갈 일이 없을거야. 그냥 오시라고 하기 전까지는.”
사람들은 오늘도 미국대사관 앞에 길게 줄을 서서 목이 빠져라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그 절차라든지 내용은 안 해봐서 모르되 길게 생각할 것도 없이 그들은 미국이라는 나라를 가기 위하여 소위 가도 좋으냐는 허락을 받기 위해 그리 하고 있는 것이다.
여권이 뭔지 비자가 뭔지도 모르던 시절에는 돈이 없어서 못 가지 돈만 있으면 어디든 비행기타고 가는 줄 알았다. 그러다가 여권을 만들고 비자에 대해 들으면서 내가 가고자 해도 허락을 하지 아니하면 못가는 나라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 입국허가증인 비자라는 것이 개인보다는 국적에 비중을 두고 발급되고 소위 못 사는 나라의 국민들은 미국이 믿을 만한 여러증표들을 제시하지 못하면 갈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필자는 막말로 벨이 꼴렸다.
뭐 그렇게 까지 해서 가야 하는 중요한 일이 내게는 없다. 그냥 오세요’ 해도 갈까 말까인데. 노무현 대통령이 대통령이 되고서야 미국에 처음 가보았다는 말을 들었을 때 공연히 웃음이 나왔다. 그런데 노 대통령도 비자 받고 갔을까?
물론 사업 때문에 가야 하는 사람들이나 여러 가지 피치못할 일이 있는 경우에는 모르되 세상에 손님이 되어 가면서 허락을 받고 가다니! 그것도 공손히 하여야 한다는데, 그렇게까지 허락받고 가서 볼 것이 쥐뿔이나 있으랴.
자본주의의 오만한 콧대와 남의 것을 빼앗아 만든, 넓어서 기이한 땅이외에 그 무엇이 일천한 역사를 가진 미국에 있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혹여 인디언들이나 만나 그들의 삶과 한을 들여다보고 같이 울어줄 수 있으면 모르되 가당치도 않다고 생각했다.
우리가 국력이 강해지면서 동남아는 물론 유럽도 비자가 면제되지만 아직도 미국과 일본은 우리에게‘뭐하는 사람이며 여기 와서 뭐할거냐’ 고 묻는다. 그리고는 맘에 들면 오라 하고 안 들면 오지마라 한다. 진짜 꼴갑 떠는 이야기다.
유럽의 어느 나라가 미국이나 일본만 못하여 우리에게 비자가 필요없다 하겠는가. 혹자는 국가안보와 불법체류 때문에 그렇다 하지만 국가안보는 헛소리고 불법체류 문제는 그만큼 우리를 업수이 보고 있다는 증거와 다름없다.
우리나라도 많은 동남아 국민들에게 비교적 엄격하게 비자를 발급하고 있다. 엄격하게 하는지 대사관에서 비자장사를 하고 있는지 소문은 무성하되 하여튼 그렇게 해도 수많은 동남아의 노동자들이 코리안 드림을 가지고 비자를 받아 입국해서 불법체류자로 전락한다.
그것은 돈을 벌기 위해서, 꼭 필요해서 비자를 받는 것이기 때문에 지금 필자가 언급을 하고 있는 부분은 아니다. 먹고 사는 문제에 누가 토를 달 수 있으랴. 같은 논리로 우리가 그리한다면 그 또한 어쩔 수 없으되 돈을 싸들고 놀러가면서도 허락을 구하러 미국대사관 앞에 늘어선 사람들을 보면 안쓰럽다 못해 한심한 생각도 든다.
안 가면 그만이지. 누가 그러지 않았는가? 세상은 넓고 놀데는 많다고. 그런데 그는 지금 어디서 놀고 있을까?
일본을 경유하게 되면 나리타 공항을 이용하는데 나리타 호텔과 동경은 버스를 이용해서 한 시간 이상 걸리고 요금도 일본답게 비싸서 저녁에 도착하여 다음날 오전에 출발하는 경우 그야말로 일본땅에서 공짜로 먹고 잤다는 것 이외에는 아무 소득이 없다.
우리는 저녁에 호텔측에서 제공한 버스를 타고(쇼핑센타측에서 제공한 것 같기도 하다) 나리타 시내를 갔는데 그리 늦은 시간도 아니었는데 창밖으로 보이는 거리는 유령의 도시처럼 깜깜했고 아무 구경할 것이 없었다. 쇼핑센타에 가서 그야말로 촌동네 슈퍼구경만 하다가 일본 땅에서는 아무 것도 안 먹겠다고 하는 둘째를 설득하여 국수 한그릇 먹고 왔다.
경유지로는 홍콩이나 싱가포르가 좋을 것이다. 둘다 공항이 시내와 멀지 않고 24시간 셔틀버스가 있다고 하는데다 두 도시 모두 관광천국답게 밤을 새워도 볼 것이 있지 싶다. 밤을 새운 다음날 비행기를 타면 곯아 떨어지니 오히려 더 좋지 않을까?
물론 필자도 직접 가보지는 않았고 나중에 들어서 안 이야기니 막상 작업에 들어가서는 꼼꼼히 따져보아야 할 것이다. 그것 역시 인터넷을 이용하면 어렵지 않으리라. 또 홍콩이나 싱가포르면 비행시간도 지나치지 않아서 지루할 만하면 내리게 되니 장거리 비행기의 끔찍한 고통도 덜 수 있어 일석 이조라 하겠다.
짐은 최종 목적지인 런던에서 찾아도 된다기에 우리는 필요한 물건만 따로 배낭에 넣어서 들고 내렸는데 하기야 만약 짐까지 가지고 내려야 했다면 공짜고 뭐고 공항에서 자야할 판이었다.
비행기표를 싸게 샀다고 만족하면서 여행사에 가서 카드결제를 하는데 창구에서‘나리타 호텔에서 일박과 조식이 제공됩니다’하는 소리를 처음 들었을 때 나는 내 귀를 의심하고 다시 물었다.
'이게 웬 떡이냐? 진짜 공짜도 있구나. 텐트를 메고 가면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호텔에서 자게 되는게 아닌가.'
“특급호텔인가요?” 역시 수준차이는 못 말린다. 여직원이 올려다 보며 "예"한다. 속으로 웃었을 것이다. ‘촌놈’이라고.
“정말 공짜에요? ”
염불보다 젯밥이라더니 가기는 유럽여행을 간다면서 그 당시 창구에서 공짜라는 말을 듣는 순간 정신은 온통 공짜 일본여행에 쏠려 있었다. 경유지 여행의 에피소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