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 그림 아이완
그후 꼬박 2년을 주는 밥 먹고 봉투 작업만 하다가 퇴소했다. 그 무렵 개인 통장을 보니 24만 원이 들어 있었다. 다시는 그런 곳에 들어가고 싶지 않다고 울음을 터트리던 오씨 아저씨는 이후로도 몇 차례 경찰차에 실려 쉼터로 들어오곤 했다. 가끔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려는 듯 당신 이름 석 자를 그림 그리듯 쓰는 오씨 아저씨의 떨리는 손을 보면 가슴이 먹먹해졌다.

그렇게 오씨 아저씨의 고단했던 과거를 조금씩 알아가던 어느 날, 고철과 폐지를 수집해서 돈을 벌게 된 오씨 아저씨를 모시고 은행에 다녀오면서 나는 쉼터에 온 뒤 처음으로 보람을 느꼈다. 오씨 아저씨도 난생 처음 적금이란 걸 들어 본다며 흐뭇하게 웃었다. 그때 나는 썰렁한 농담도 건넸다.

“이제 결혼하는 일만 남으셨네요. 앞으로 돈 많이 모으면 저한테도 빌려 주셔요.”

이런 상황이 언제까지 갈지 내심 걱정도 됐지만 그래도 그 순간만큼은 무척 기뻤다. 건설 일용일도 달랑거리는 겨울철, 쉼터에 계신 분들의 벌이를 걱정하고 있을 때 반가운 소식이 들렸다. 서울시에 분산되어 있는 노숙인 쉼터 실무자들을 대상으로 붕어빵 노점사업 설명회를 연다는 것이었다.

설명회의 내용을 꼼꼼히 받아 적은 노트를 정리하며, 나부터 각오를 다지지 않으면 안 되는 일임을 느꼈다. 목 좋은 자리를 확보하는 일부터, 노점 단속반들에 대한 대책까지. 괜한 욕심만 가지고 시작했다가 오씨 아저씨에게 설움만 더 보태는 것은 아닌지…. 그래도 달리 선택할 길이 그리 많지 않은 오씨 아저씨가 겨울 내내 열심히 일해 얼마간 목돈을 쥘 수 있다면…. 오씨 아저씨가 구운 붕어빵을 맛볼 그날을 생각하며 설명회 내내 오씨 아저씨의 얼굴을 떠올렸다. 그리고 얼마 후 오씨 아저씨는 붕어빵 노점을 시작했다.

그로부터 3년이 흐른 2004년. 노숙인에 대한 사회적 인식과 현장의 풍경은 예전과 달라진 게 별로 없다. 서울역에서 거리 생활을 하는 최씨 아저씨도 기구한 사연을 가진 분이다. 주민등록 나이는 43세지만, 실제는 50세가 넘을 듯한 최씨 아저씨는 대한민국 고아원 역사의 산 증인이다.

대구, 부산, 경주, 서울, 원주 등 전국에 있는 고아원을 두루 거쳤다. 고아원에 더는 있을 수 없는 나이가 되었을 때는 양계장이나 축사, 연탄보급소 등에서 기숙했다. 그곳에서는 급여조차 받지 못하고 그저 숙식을 제공받는 대가로 십수 년을 일했다고 한다.

최근까지 최씨 아저씨는 거리 생활을 해 오면서 필요한 생활비를 이른바 '뺑뺑이'(교회와 같은 종교시설을 돌며 예배에 참석하고 예배 후 100~1000원 정도의 현금을 받는 행위)를 통해 충당해 왔다. 수급자가 되어 쪽방생활을 하고 있는 지금도 일주일에 최소 3~4일은 뺑뺑이를 돌며 부족한 방값과 생활비를 모은다.

대부분의 일반인들은 노숙인들이 일은 않고 하루 일과를 술로 시작해 술로 끝내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는 일부의 경우이며 술과 연관된 단면일 뿐이다. 최씨 아저씨와 함께 뺑뺑이를 며칠만 돌아본다면 거리생활에도 최소한의 생활비(물품보관을 위한 사물함 사용료, 담배값, 간식비, 교통비, 정보를 주고받는 동료와의 관계 형성에 소요되는 경비)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이를 마련하기 위해서는 나름의 경제활동을 해야 하고, 거리 생활에 필요한 정보를 얻기 위해 부지런히 노력해야 하는 것들이 많다. 나 역시 최씨 아저씨를 처음 만났을 때만 해도 일종의 구걸행위인 뺑뺑이를 부정적 시각으로 바라보았다.

최씨 아저씨는 새벽 첫 지하철을 타고 나가서 저녁 7시까지 뺑뺑이를 돌며 5년 이상 거리 생활을 지속해 왔다. 게다가 시력도 좋지 않고 방향 감각도 없어 항상 누군가와 동행하지 않으면 길을 잃어버린다. 당시엔 일주일에 5~6일은 이른바 뺑뺑이를 돌았다.

그가 그런 고생을 자처하는 이유는 성인이 될 때까지 거쳐 온 몇몇 시설에 대한 좋지 않은 기억과 급여조차 받지 못하고 혹사당했던 경험, 그동안 함께 뺑뺑이를 돌며 친숙해진 주변 동료들과의 끈끈한 정 때문이다.

최씨 아저씨처럼 거리에서 고단하게 생활을 하는 사람들은 그런 생활을 선택하고 유지할 수밖에 없는 절박한 사연이 있다. 일종의 재난 상황인 거리 생활은 절대로 자유롭거나 자연스런 과정이 아니다. 그런 그들과 가까이 하면 할수록 나는 오늘도 내가 있어야 할 자리를 생각하게 되고, 우리 사회가 책임져야 할 인간의 존엄성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국가인권위원회가 발간하는 월간 <인권> 2월호에 실려 있습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국가인권위원회에서 발행하는 <월간 인권>의 주요기사를 오마이뉴스에 게재하고, 우리 사회 주요 인권현안에 대한 인권위의 의견 등을 네티즌들에게 전달하기 위해... 꾸벅...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