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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어느 기자에게서 전화를 받았다. 전원에 사는 몇몇 작가들의 작업실을 탐방해서 기획 기사를 쓰려고 하는데, 나에게도 작업실이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는 것이다.
가능하면 내 작업실에서 사진을 찍었으면 한다는 요청이었다. 그러나 나는 기자가 말하는 그곳을 작업실로 쓰고 있지 않으며, 학교 연구실에서 주로 글을 쓴다고 대답했다. 전원에 묻혀 사는 작가의 이미지가 내 실제의 삶과 거리가 멀 뿐 아니라 그렇게 비치는 것을 원치 않는다고 분명히 밝히며 그 기사에 나를 다루지 말아 달라고 부탁까지 했다.
물론 어떤 고마운 분이 광주 근교의 농가를 무료로 빌려 주어서 얼마간 그 집을 들락거린 적은 있다. 그러나 그 집에 한달에 한두번 들르기도 어려운 처지라서 이내 마당에는 풀이 무성해졌고 여름 내 말벌집 때문에 골치를 앓아야 했다. 모처럼 들러서 청소하고 풀 뽑다 보면 한나절이 지나 버리고 날이 저물면 서둘러 돌아와야 하는 나에게 전원 속의 작업실이란 그야말로 그림의 떡에 불과한 것이었다. 게다가 내 소유도 아닌 집을 매체에 등장시키는 것이 그곳을 빌려 준 주인에게도 결례가 되는 일이라 여겨졌다.
그런데 며칠 후 그 기사에 내 작업실에 대한 언급도 있다는 사실을 누군가 귀띔해 주었다. 기사를 보니 다른 작가들이 입방아를 찧어 댄 얘기까지 곁들여져 있었다. 나는 화가 나서 그 기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분명히 취재를 거절했고 그 작업실을 쓰지 않는다고 했는데, 왜 내 의사를 무시하고 마음대로 기사를 썼느냐고 항의했다.
그때 돌아온 대답은 이랬다. 작가도 공인인데, 매체나 사람들 입에 그 정도 오르내리는 것은 감수해야 하는 것 아니냐. 기자는 미안해 하기보다는 자신의 취재권과 기사 작성의 권리를 정당하게 사용했을 뿐이라는 태도였다. 전화를 끊고 나서도 ‘작가는 공인’이라는 말이 오랫동안 머릿속에 맴돌았다.
과연 작가는 공인인가? ‘공인(公人)’이라는 말을 새삼 사전에서 찾아 보았더니 ‘국가 또는 사회를 위하여 일하는 사람’ 또는 ‘공직에 있는 사람’이라고 되어 있다. 작가가 쓰는 글이 사회에 일정한 영향을 주고, 그 영향이 정서적인 순화나 해방 등에 있다고 한다면 공인으로서의 역할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작가란 동시에 국가나 제도가 길들일 수 없는 정신의 영역을 추구하고, 가장 사인화(私人化)한 세계에 살고 있는 존재가 아닌가. 그리고 그 자유가 훼손되거나 억압 받지 않는 곳에서 가장 풍요로운 문학은 꽃을 피우게 마련이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글의 공공성을 강조하면서 작가의 사적인 자유와 권리에 대해서는 그리 존중하지 않는다. 최소한의 공공성을 지녀야 하는 것은 글이지 작가 개인이 아니다. 작가도 공인이라는 기자의 말은 그 둘을 혼동하고 있는 데서 나온 것이다. 사실 작업실이 있느냐 없느냐는 그리 중요한 문제도 아니고, 그것만으로 심각한 인권 침해라고는 할 수 없다. 그러나 내가 항의할 필요를 느낀 것은 그런 혼동과 몰이해 속에 잠재된 폭력성 때문이다.
실제로 작가들의 은밀한 사생활이 작품과 무관하게 잡지나 신문에 오르내리는 경우가 적지 않다. 자신의 사적 영역을 공개하지 않을 권리마저 공인이라는 이름으로, 유명세라는 구실로 지켜지지 않는 현실은 작가에 국한된 얘기가 아니다.
정치인이나 연예인들의 경우는 그 부침이 더욱 심하다. 그 이야기들은 대체로 사실 여부가 제대로 확인되지 않았거나 지나치게 미화 또는 과장된 것들이다. 아주 치명적인 경우는 아니더라도 기사나 인터뷰 내용이 자신의 발언과 무관하게 삭제, 첨가, 왜곡되는 경험을 해보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또한 어떤 말을 전후의 맥락을 제거한 채 인용하거나 부각시킴으로써 정반대의 상황을 연출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이러한 말의 위험에 고스란히 노출되어 있으면서도 작가는 한편의 글이 자신과 세계를 구원할 수 있을 거라고 믿는 존재들이다. 또한 작가는 사회의 공공성과 개인의 사유지를 드나들며 새로운 정신의 영토를 만들어 내는 역할을 한다. 그 양가적인 특성 때문에 작가의 인권은 자주 잊히고 밟힌다. 말하고 싶은 것을 말할 수 있고, 말하고 싶지 않은 것을 말하지 않을 수 있는 권리, 작가에게 가장 절실한 인권은 바로 이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국가인권위원회가 발간하는 월간 <인권> 2월호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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