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신 : 18일 오후 5시 35분]
양극화 해법, 학계도 딜레마에 빠지다
비용을 줄이면 양극화가 확대되고, 그렇다고 비용을 높이면 경쟁력이 약화되고….
양극화 해법을 둘러싼 '딜레마'가 진보 학계의 새로운 고민거리로 등장했다. 한쪽을 누르면 한쪽이 부풀어오르는, 마치 풍선 효과를 연상케 하는 골치 아픈 화두로 양극화 해법이 자리잡을 듯 보인다.
18일 오후 1시부터 서울 남대문 대우재단빌딩에서 개최된 서울사회경제연구소(이사장 변형윤 서울대 명예교수) 제12차 심포지엄에서 '양극화 대책의 평가'라는 주제로 발제를 맡은 유철규 교수도 그 고민의 한 복판에 서있었다.
양극화로 나타난 결과를 근거로 양극화의 원인과 문제점을 짚은 유 교수는 우선 정부가 양극화 해소에 도움이 되지 않는 복고풍의 방식으로 양극화에 대응해 나가고 있다는 진단을 내렸다.
물론 재벌체제 자체가 양극화를 부르는 경제시스템이긴 하지만 최근 정부나 대기업의 복고적 대응방식은 우려할 만한 수준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복고적 대응방식이라는 의미는 비용절감 위주의 구조조정 방식이나 조립공정 기술을 확보를 통한 경쟁력 제고방안을 의미한다.
유 교수는 재벌들이 80∼90년대부터 절감을 요구해 왔던 이른바 4고 가운데 즉 인건비, 금융비용, 지가(임차료)가 하락해 수익성이 높아진 결과, 양극화라는 사회·경제적 병폐를 낳았다고 주장했다. 이를 증명하듯 외환위기 이후 주요 비용곡선은 하락했지만 지니계수(소득분배의 불균형 수치)는 오히려 높아지는 경향을 보였다. 유 교수는 "만약 두 가지 원인이 대칭적으로 나타나 정말 답이 없어진다"고 난감한 심경을 토로했다.
재벌 요구대로 인건비, 금융비, 임차료 낮췄더니 양극화는 심화
결국 유 교수는 접근방식의 혁신적 전환이 수반돼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1890년대 공황과 1930년대 공황을 다른 방식으로 극복해낸 미국의 역사적 선택에 주목했다. 미국은 1890년대 공황을 제국주의화(외연확장)를 통해 이겨냈고, 1930년대 공황은 복지국가(내수기반 확충) 모델로 헤쳐나간 바있다. 유 교수는 여기에 착안, 대안을 모색해 볼 것을 제안했다.
유 교수가 제안한 대안적 모델은 유휴 자본의 해외진출이다. 국민국가의 경계선 내부만을 고려해 답을 찾으려 해 봐야 해답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이 지점에서 유 교수는 "왜 우리는 들어오는 자본을 통제하려는 고민은 하지만 나가는 우리 자본을 통합 관리할 고민은 하지 않느냐"는 물음을 던졌다.
'놀고 있는' 자본의 외연확장을 돕고, 이를 적절한 수준에서 통합 관리함으로써 해법을 찾자는 의미에서다. 반복적으로 국내에서의 비용절감에만 '공력'을 퍼붓는다면 부동산 투기나 비정규직 확산으로 인한 양극화는 더욱 심화될 것이 자명하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유 교수 본인도 인정하듯 아직 구체적 실천 프로그램을 제시되지는 못했다. 후행 연구가 불가피한 대목이다.
"저임금 노동 수입한다고 극복되나?"...국내자본 해외유출로 양극화 대안 모색
토론자로 나선 전성인 홍익대 교수도 같은 맥락에서 '자본유출론'에 방점을 찍었다. 복고풍의 비용억압적 방식으로 경쟁력을 확보하는 건 이미 한계에 다다랐기 때문에 유휴 자본의 영토확장을 고민할 수순이라는 것이 전 교수의 주장이다.
전 교수는 몇 가지 경우의 수를 들며 자본유출론의 불가피성을 역설했다. 그 첫 번째는 미숙련 노동의 수입. '블랑카'로 대표되는 미숙련 해외노동을 대거 들여옴으로써 또 한번의 비용절감을 시도해 봐야 양극화는 해소되지 못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어차피 경쟁력이 낮은 산업군으로 편입될 수밖에 없어 양극화는 온존될 것이라는 것이 전 교수의 판단이었다.
그렇다고 급격히 증가하고 있는 노년층을 투입한다고 해서 양극화가 풀릴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왜냐하면 노년층은 축적을 위한 인센티브가 높지 않기 때문에 생산성이 그리 높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차라리 노년층이 지닌 자본을 유출시켜 부의 창출을 꾀하는 것이 나은 대안이라고 했다.
아울러 전 교수는 "기술축적의 용의나 능력이 있는 젊은 노동자들을 어떻게 먹여 살릴 것인지 답이 나와야 양극화가 풀린다"고 결론 내리면서 "인적자본이 축적될 수 있도록 교육제도를 강화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반론도 없지는 않았다. 김기원 방송통신대 교수는 비용과 양극화의 상관관계를 단선적으로 접근한 것 아니냐고 따져 물었다. "적어도 선진국들은 모두 높은 비용을 지불하는 국가들인데 분배의 결과는 다르지 않느냐"는 얘기다.
한편, 이날 심포지엄에는 청와대 빈부격차차별시정위원회 위원장인 이정우 교수도 참석해 토론내용을 경청했다.
[1신 : 18일 오전 11시 50분]
정부·대기업, 비용절감 위주의 전략에서 벗어나야
외환위기 이후 구조조정의 일환으로 진행돼왔던 대기업의 과소투자와 인건비 절약 등의 비용재조정 전략이 결과적으로 한국사회의 양극화를 전면화시켰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유철규 성공회대 교수는 18일 오후 서울사회경제연구소(이사장 변형윤 서울대 명예교수) 주최로 개최된 '한국경제의 전망' 심포지엄에서 외환위기 이후 산업자본의 구조조정 정책을 다양한 정부 통계를 통해 분석한 뒤 이같은 결론을 내놔 관심을 모았다.
유 교수는 이날 발표 논문에서 ▲투자처를 찾지 못한 자본의 과소투자 ▲투자의 생산유발계수 하락, 수입유발계수 증가 ▲인건비와 중소기업 단가 절감에 초점이 맞춰진 비용절감 정책 등이 결과적으로 한국사회의 양극화를 낳았다고 주장했다.
이를 근거로 유 교수는 5대 재벌중심의 집중화된 산업구조를 안고 있는 한국 정부가 이같은 '복고형' 비용축소 중심의 구조조정을 지속시키는 방식으로는 심화되고 있는 양극화에 제동을 걸 수 없다고 말했다. 이미 양적인 산업화의 달성 이후 특히 87년을 계기로 임금경쟁력에 기초한 내수 억압형 불균형 산업전략의 한계가 뚜렷해졌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정부나 대기업들은 비용절감 위주의 '복고풍' 산업화 전략에 여전히 강한 애착을 보이고 있는 것 같다고 유 교수는 지적했다. 예를 들면 비정규직 확대를 통한 인건비 절감, 중소기업 단가 인하를 통한 비용절감 전략이 그것이다.
유 교수는 소수 기업·지역에 집중된 경쟁력의 분산정책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그는 "산업의 정책적 고려와 양극화 문제는 분리해서 접근할 문제가 아니다"라며 "양극화의 해소는 다변화된 산업구조, 소수기업과 지역에 집중된 경쟁력의 분산에 의해서만 접근해갈 수 있는 문제"라고 말했다.
한편 이날 심포지엄에서 이일영 한신대 교수는 '노무현 정부의 동북아 구상과 정책'을, 김형기 경북대 교수는 '국가균형발전정책의 평가와 과제'를 각각 발표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