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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해 전부터 귀향을 결심하고 아내 동의를 구하는 데는 어렵지 않았다. 결혼한 지 5년 됐지만 아파트 옆을 지날 때마다 “우리도 청약통장을 꺼내 써야 되는 것 아니냐?”며 욕심을 버리지 않던 아내에게 드디어 내려갈 날을 못 박자 아파트 장만에 대한 미련은 포기했다.
어찌 보면 짧은 기간인 1년 밖에 남지 않아서인지 최근 아내는 무척 궁금한 것이 더 많아졌다. “우리는 어디 사느냐? 자신도 거기서 일을 해야 하는가? 음식은 어떻게 준비할 것인가? 다니던 직장은 어디로 하는 게 좋은가? 너무 멀지 않은가” 등 부지런을 떤다.
거리 문제는 산채원이 정식 개장할 2~3년 후에 호남고속철도가 뚫리면 광주까지 2시간대로 주파가 가능하고 호남고속도로 장성-담양 간 우회로가 개통되니까 최소 20~30분 절약되어 2시간 30분 내에 서울에서 도착할 수 있고, 주 5일제 근무로 크게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더군다나 포장 문제만 개선이 된다면 날로 혁신되고 있는 물류와 유통으로도 물건이 상하지 않게 할 수 있다.
다니던 직장은 공무원이라는 특혜를 활용하여 다닐 수 있을 때, 다니고 싶을 때까지는 계속 다니는 게 좋겠다는 의견을 말했다. 얼마 전 희망근무지역을 신청하라고 했을 때 나는 광주와 순천쯤으로 하는 게 좋다고 했다.
내 고향인 화순 북면 백아산에서 공히 25분이면 광주나 순천까지 어김없이 도착을 하니 걱정할 게 없다고 했다. 호남고속도로 옥과 톨게이트에서 불과 10km 밖에 떨어져 있지 않으니 이 또한 혜택이다.
결국 산채원을 만들면 외지 사람들이 와서 먹고 자고 할 것인데 먹는 문제는 현지 아주머니들을 직원으로 써서 해결하면 된다. 직장에 더 적성이 맞는 아내는 주말에나 집안일을 거들면 되고 정식 개원을 하더라도 집과 산채원을 엄밀히 구분하여 사업적 마인드로 접근을 하는 것이니 두 가지 문제가 해결된 셈이다.
그렇다면 올 연말이나 내년 초에 서울에서 이삿짐을 싸게 되면 당장 어디서 살 것인가가 걸리게 된다. 나도 오랫동안 그 숙제를 풀지를 못했다. 정말이지 20년 가까이 아내는 장수와 전주, 나는 화순과 담양을 떠나 서울에서 살다시피 했으니 지방물정 잘 모르고 몸마저 도시 생활에 익숙해져 있다.
근육도 쓰지 않은 부분이 많고 부족한 것 투성이인 시골에서 밥 한 끼나 제대로 해먹을 수 있을까 불안감을 떨치지 못하는 게 인지상정이다.
실마리를 풀기 위해 고심하던 차 광주 외곽지역 집값을 알아봤다. 서울에선 4000만원이면 반지하나 옥탑방을 면치 못하지만 광주로 내려가면 아파트 전세도 가능하고 여기에 1~2천만원만 보태면 아예 아파트를 구입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래, 굳이 처음부터 시골에 살 필요가 있을까?” 이게 답이었다. 아내 발령지가 어디가 될지 모르겠지만 광주나 순천에서 고향 집에까지 30분이 걸리지 않는 가까운 곳이라면 2~3년 동안 내가 출퇴근을 하면 되는 것 아닌가?
지방 생활에 익숙해질 때까지는 주말마다 도시에서 나들이 나가듯 편하게 접근하도록 배려하는 것이 내 할 일이다. 아이들도 친구들이 많이 있는 데서 어울리도록 하고 자연에 대한 감수성을 길러주고 아버지가 열심히 일하는 모습을 지켜보도록 훈련하는 것이 급격한 생활 환경의 변화에서 오는 혼란을 막을 수 있다.
나에게도 느긋한 접근이 유리한 데가 있다. 자칫 사람들과 유리되는 단점을 극복할 수 있고 도시사람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감을 잃지 않는 기회이기도 하다. 귀향 또는 귀농, 낙향을 한답시고 가진 돈 절반을 넘게 땅 사는데 투자하고 집부터 짓다보면 3년을 버티지 못하고 쫄딱 말아먹고 도망쳐오듯 빠져나온다는 사례를 수도 없이 보아왔지 않은가.
더디 가도 고향으로 가는 것이고 1~2년 늦춘들 고향이 어디 사라지기나 하는 건가. 오가며 사람들을 만나서 조언을 듣고 행여 산채원에 불이라도 나면 내 일이라 생각하고 뛰어올 사람 가까운데 사귀어두면 얼마나 든든하겠는가.
도시에서 살면서 날마다 작업복을 입고 나갈 때 동네 사람들이 “김규환씨 날마다 어디 가십니까?” 하면 “예, 산채원 만들러 내 고향 백아산에 갑니다. 언제 한번 같이 가실래요?” 하면 그냥 약초나 캐러 다니는 사람으로 여기지도 않을 것 아닌가.
정리하자면 나는 고향에 뼈를 묻기 위해서 가는 것이지 잠시 쉬러 가지 않는다. 노닥거리며 풍류를 읊기는 열심히 일한 다음에 자연스레 얻을 것이니 젊은 날 아까운 시간을 허비할 못난이가 아니다.
이제 내 생의 절반도 살지 못한 나는 우리 고향에 다시 그립던 친구들이 돌아오도록 유도하고 도시생활에 지친 방랑자들과 도시에서 사귄 사람들이 맘 놓고 와서 즐길 터전을 마련하는 막중한 책임이 있다. 그러니 한 치의 오차가 없도록 꼼꼼히 챙기려면 황소걸음으로 걷는 자세가 필요하다.
영원한 동반자 아내는 그냥 옆에만 있어도 든든하다. 그와 함께 산채원을 오래 거닐고 싶다. 불안감 해소는 필수사항 아닌가.
덧붙이는 글 | 김규환 기자는 <잃어버린 고향풍경1>을 냈다. 홍어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모임(cafe.daum.net/hongaclub) 대표이며 전남 화순 백아산 고향으로 귀향하여 산채원(山菜園)을 만들 꿈을 꾸고 있다. 산채원에 관심있는 분들은 cafe.daum.net/sanchaewon에 들러 동참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