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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에 지다>
<칼에 지다> ⓒ 북하우스
<철도원> <지하철> 등의 작품으로도 잘 알려진 아사다 지로의 <칼에 지다>는 사무라이, 더 나아가 무사도 정신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던진다. '수전노'라는 소리를 들으면서까지 돈을 모으려 했던 사무라이 요시무라 간이치로의 삶을 그리고 있는 이 작품은 요시무라 간이치로가 할복을 명 받는 장면에서부터 시작한다.

“나는…… 죽고 싶지 않아. 조금만 더 이러고 있어볼까. 그러면 혹시라도 히지카타 선생이 찌렁찌렁한 고함을 내지르며 나를 구하러 와주실지도 모르니. 정말 와주실지도 몰라. 요시무라. 무얼 하고 있는 게야, 어서 에도로 돌아가자고! 그러시면서.”
- <칼에 지다>(상) 중에서


<칼에 지다>의 처음에서 죽기를 주저하는 요시무라 간이치로의 모습을 본 순간 사람들은 생각할 것이다. 이런 사무라이의 모습이 도대체 무슨 이유로 주목을 받는지, 작가의 명성에 기댔다 할지라도 어째서 이 작품이 일본에서 100만부 이상이 팔려나가며 베스트셀러가 됐는지 말이다. 궁금할 수밖에 없다. 도대체 요시무라 간이치로를 통해 아사다 지로는 무엇을 이야기하려 했던 것일까?

<칼에 지다>는 두개의 시각으로 구성되어 있다. 첫번째는 요시무라 간이치로 본인의 시각이다. 할복을 명 받고 홀로 방안에 남겨진 사무라이의 회상과 회한이 중점을 이루고 있다.

두번째 시각은 이 작품이 태어날 수 있는 원동력을 제시하는 후세의 기록에서 비롯되고 있다. 작가 본인으로 볼 수도 있는 글쟁이가 어떤 이유에서인지 요시무라 간이치로라는 사무라이를 알고 있는 마을 사람들이나 같이 활동했던 신센구미 사무라이들을 찾아다니면서 요시무라 간이치로의 일생을 기록한 것이 그것이다.

첫번째와 두번째 시각은 수수께끼를 풀어가 듯이 애처롭게 보이는 사무라이의 모습으로 향하고 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요시무라 간이치로의 삶에 숨겨진 ‘진실’이 나타난다. 수전노, 의를 버린 사무라이에게 돌팔매질이 아니라 정을 줘야 한다는 진실 말이다.

작품이 후반부에 이르렀을 때 더 이상 요시무라 간이치로는 사무라이로 보이지 않는다. 모진 세상 속에서 가족을 지키고, 먹여 살리기 위해서 자존심까지 버렸던 아버지이자 가장의 모습만이 남겨질 뿐이다.

피바람 가득한 전장에서도 고향을 그리워했던 남자, 동료들과 이야기를 할 때면 자식 자랑과 아내 자랑밖에 할 줄 몰랐던 남자. 이 남자 요시무라 간이치로는 세상이 말하는 사무라이의 의는 없을지언정 가정을 지키려했던 아버지의 모습의 갖고 있다.

죽는 순간에도 고향에서 자신을 기다리는 아내와 자식을 위해 동전을 내놓게까지 만드는 아버지의 모습이 요시무라 간이치로의 삶 전체를 간직하게 있었던 것이다.

"나의 주군은 난부 나리님이 아니었어. 조장님도 아니었어. 너희야말로 나의 주군이었어. 아비는 그때 그것을 똑똑하게 깨달았다. 왜냐. 나는 너희를 위해서라면 언제 어느 때든 목숨을 버릴 수 있었으니. 어떤 각오도 필요 없어, 무사도니 대의 따위 필요 없이, 너희가 죽으라고 한다면 아비는 기꺼이 목숨을 버릴 수 있었으니. 그러니 너희야말로 틀림없는 나의 주군이라고 생각했다. 아내에게 충성을 바치다니, 남들이 들으면 웃겠지. 그러나 나는 진심으로 감사했다. 고마웠다."
- <칼에 지다>(하) 중에서


‘무사도를 위해 목숨을 버려야 한다’는 사무라이보다 ‘가족을 위해 어떻게든 살아야한다’는 아버지 요시무라 간이치로. 그 삶은 어떤 유명한 사무라이들의 삶에 비해서 비난 받을 이유가 없다. 오히려 진정한 ‘의’와 ‘무사도’에 새로운 해석을 던져 줄 만큼 그 삶은 인상적이다.

칼 한자루를 들고 돈벌이에 나섰던 사무라이의 모습을 그리고 있는 아사다 지로의 <칼에 지다>. 진정한 ‘의’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것과 동시에 차가운 무사도 정신 속에서 따스한 가정을 떠올리게 하는 호소력 짙은 역작이다.

덧붙이는 글 | 칼에 지다 / 아사다 지로 지음, 양윤옥 옮김/ 북하우스 펴냄/ 판매가 1만2000원


칼에 지다 - 상

아사다 지로 지음, 양윤옥 옮김, 북하우스(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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