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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아저씨는 왜 지금이라도 메카에 가지 않는 거죠?”

양떼를 팔아 마련한 돈으로 어렵사리 아프리카 땅에 첫발을 디딘 산티아고. 탕헤르에 도착하자마자 사기꾼의 꾐에 그 많던 노잣돈을 다 잃은 그였지만, 그래도 맘 좋은 크리스털 가게 주인을 만나 여행을 지속할 수 있었다. 크리스털 가게를 떠날 즈음 산티아고는 주인에게 묻는다. 왜 그토록 가보고 싶어 하던 메카에 가지 않았느냐고.

“왜냐하면 내 삶을 유지시켜주는 것이 바로 메카이기 때문이지. 이 모든 똑같은 나날들, 진열대 위에 덩그러니 얹혀 있는 저 크리스털 그릇들. 그리고 초라한 식당에서 먹는 점심과 저녁을 견딜 수 있는 힘이 바로 메카에서 나온다네. 난 내 꿈을 실현하고 나면 살아갈 이유가 없어질까 두려워. (중략) 다만 내게 다가올지도 모르는 커다란 절망이 두려워 그냥 꿈으로만 간직하고 있기로 한 거지.”

ⓒ 권기봉
처음 <오마이뉴스>에 글을 올리기 전엔 참 망설였다. 첫 기사를 올리기 전 이미 학보사 기자 생활을 한 바 있었지만, 그때는 발행부수 2만여 부 정도의 매체였다. 이에 비해 <오마이뉴스>는 구독자가 단 1명이 될 수도 수백만 명이 될 수도 있는, 그야말로 기사를 올리면 (생나무로 사장되지 않는 한)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사람들이 내 기사를 볼 수 있는 매체가 아닌가.

3음절에 불과한 이름을 달고 나가는 기사라지만, 솔직히 누구나 읽고 전파할 수 있다는 이유 때문에라도 망설여졌다. 비록 ‘메인서브’나 ‘서브탑’을 쓰고 있던 시절이었을지라도 말이다. 모름지기 글이라는 것은 그 글을 쓴 이를 빼닮는 것이어서, 결국 내 부족함과 철없음도 여실히 드러낼 수밖에 없기 때문이었다.

더군다나 첫 기사를 올렸을 때는 누구나 간다지만 누구도 다시 가고 싶어 하지 않을 군대 시절. 말하기 좋아하고 듣기 좋아하고 편지 쓰기도 좋아했던 나, 오고가는 커뮤니케이션의 즐거움에 목말라 했다. 그도 그럴 것이 항상 필요한 말만을, 그것도 한껏 줄여서 말해야 하는 곳이 군대 아니던가.

그런데 입대 전까지만 해도 학보사 기자랍시고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취재하고 묻고 듣고 이야기했던 그 버릇이 쉽게 사라질리 만무했다. 그런 내게 있어 <오마이뉴스>라는 ‘광장’은 도전의욕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두려운 것도 사실이었다. 지금이야 어떤지 모르지만 내가 군에 있던 2001년~2003년만 하더라도 매주 한번씩 ‘정신교육’을 받을 때였다. 게다가 전방부대인지라 조금이라도 ‘사회’나 익히 알고 있던 ‘상식’에 대해 비판적인 책을 읽을라치면 알게 모르게 부사관의 눈을 의식해야만 했던 터였다. 설상가상으로 당시 <오마이뉴스>는 ‘군 비리 문제’나 권위주의적인 모습 등에 대해서도 적극적인 취재와 비판을 하던 때라, 주위의 직업 군인들 사이에서 종종 화제(?)에 올랐던 매체였다.

그러니 ‘기나긴 훈련 끝의 달콤한 휴식을 빼앗길까?’ 아니면 ‘혹 군기교육대에라도 끌려가는 것은 아닐까?’ 하는 걱정을 했던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 제아무리 여행기라 할지라도 ‘웰빙’ 차원의 주말 여행기는 지양했던지라 괜히 긁어 부스럼 만드는 것은 아닌가 하고 자문하기도 여러 번.

하지만 말호봉의 이등병, 겁을 상실했던 것일까? 부대 도서실 컴퓨터를 이용해 휴가나 외출·외박 때 돌아봤던 폐사지나 궁궐 등에 대한 답사기를 틈틈이 올리기 시작했고, 심지어 ‘권기봉의 문화유산답사’라는 연재기사까지 만들기도 했다. 그렇게 26개월의 군 복무기간을 포함해 근 4년 동안 쓴 기사는 179건, 그 중 메인 탑에 오른 기사 대략 30개. 그동안 ‘올해의 뉴스게릴라상’도 받았고 ‘새 뉴스게릴라상’도 받았다. 그럭저럭 선방한 셈이다. 그러고 보면 군 입대 후 첫 기사를 쓰기까지 6개월여의 고민 기간은 그저 나만의 고민이었을지도 모른다. 코엘료의 말처럼.

“그러다 문득 깨달았다. 자신 역시 그렇게 할 수 있으리라는 사실을. 떠나지 못하게 그를 막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 자신 말고는.”

▲ “그러다 문득 깨달았다. 자신 역시 그렇게 할 수 있으리라는 사실을. 떠나지 못하게 그를 막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 자신 말고는.”
ⓒ 권기봉
하지만 군 생활을 끝낸 지 이미 오래인 지금이라고 해서 고민이 없는 것은 아니다. 다만 고민의 종류가 다를 뿐.

아무리 ‘자뻑’이 시대적 대세라지만, <오마이뉴스>에 글을 올린 후 이런저런 이유로 다른 매체의 인터뷰 섭외나 출판 제의 등을 받을 때면 나도 모르게 ‘자뻑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적지 않았다. 그럴 때마다 홀리지 말자고 마음을 다잡기는 했지만 이제 두려운 것은 자만이었고 나태였다.

뿐만 아니라 언제까지나 ‘초심자의 행운’을 기대할 수는 없는 노릇. 시간이 지날수록 실력 있는 뉴스게릴라들이 <오마이뉴스>에 진출하기 시작했고, 메인톱에 걸리던 내 기사는 어느덧 서브톱으로, 메인서브로 뒤처지기 시작했다.

이런 사태(?)에 다다르자 스스로에 대해서는 더 나은 결과물을 내야 한다는 강박이 엄습해왔다. 이제 중요한 것은 끈기와 용기, 그리고 여유였다. 하긴 사람들은 저마다 자기만의 방식으로 세상과 소통하고 성장하는 것 아니던가. 머리 좋고 글 잘 쓰고 취재 잘 하는 사람들의 방식과 내 것이 같을 수는 없는 일. 비록 느린 걸음일지라도 천천히, 우직하게 내 갈 길을 가면 되는 것 아닌가 하는 자기 최면을 걸기도 수차례. 그래, 처음부터 난 사람 없다 하지 않던가. 비록 부족하기만한 나이지만 꾸준히 노력하고 개선해가면 언젠가는 나 역시 김훈처럼 특유의 감성이 녹아 있는 글을 쓸 수 있을 것 같았다. 고정 독자를 확보할 수도 있으리라 생각했다.

일단은 쓰고 보자는 심산이었고, 쓰면서 고쳐가자는 생각이었다. 지금이니 그나마 ‘어리다’는 이유로 용서받을 수 있지 계속 글쓰기를 미루다가는 영영 기회를 잃을 것 같았다. 실수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컸지만, 파울로 코엘료의 말마따나 어쩌면 내 의지를 꺾는 주범은 바로 나 자신일 수도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 “배움에는 행동을 통해 배우는, 단 한 가지 방법이 있을 뿐이네. 그대가 알아야 할 모든 것들은 여행을 통해 다 배우지 않았나. 이제 남은 건 한 가지뿐이지.”
ⓒ 권기봉
“그래, 무언가를 찾아가는 매순간이 신과 조우하는 순간인 거야. 내 보물을 찾아가는 동안의 모든 날들은 빛나는 시간이었어. 매시간은 보물을 찾고자 하는 꿈의 일부분이라는 걸 나는 알고 있었어. 보물을 찾아가는 길에서, 나는 이전에는 결코 꿈꾸지 못했던 것들을 발견했어. 한낱 양치기에게는 처음부터 불가능한 것처럼 보이는 일들, 그래 그런 것들을 감히 해보겠다는 용기가 없었다면 꿈도 꿀 수 없었을 것들을 말이야.”

산티아고가 고생 끝에 사막을 건너 피라미드를 발견하고 그 과정에서 자아의 신화를 이룬 것처럼, 만 4년 정도의 <오마이뉴스> 뉴스게릴라 생활을 통해 그 동안 불가능했던 여러 경험들을 했던 것 같다. 내게 있어 <오마이뉴스>의 역할은 산티아고가 보물을 찾아가는 데 도움을 준 살렘의 왕이나 오아시스에서 만난 연금술사의 그것이었다.

그동안 관심의 영역이기는 하나 어떻게 접근해야 할 지 모르던 한국의 근·현대 역사문화유산과 관련한 여러 전문가들을 만나 배움을 얻을 수 있었고, 그 과정에서 인식 지평도 비록 조금씩이기는 하지만 넓어져온 것 같기도 하다.

물론 무엇보다도 고마운 것은 <오마이뉴스>를 통해 그동안 머릿속에만 머물렀던 대상들을 직접 두발로 찾아 답사하고 공부할 수 있는 용기를 얻었다는 것. 그리고 비록 모자란 글이긴 하나 내가 쓴 글에 대해 독자들이 댓글로써 피드백을 주었기에 사막에서 피라미드를 찾는 데 적잖은 도움이 되고 있다는 것. 아직 자아의 신화, 그 근처에도 가보지 못한 것 같기는 하지만 앞으로의 발걸음에 큰 힘이 될 것만은 틀림없는 것 같다.

산티아고처럼 자아의 신화를 발견한 것은 아니다. 아직은 나만의 보물을 찾아가는 과정. 연금술사는 산티아고에게 ‘무언가를 찾아가는 도전은 언제나 ‘초심자의 행운’으로 시작하여 반드시 ‘가혹한 시험’으로 끝을 맺는다’고 했던가.

‘사람들은 오아시스의 야자나무들이 지평선에 보일 때 목말라 죽는다’고 경고하는 연금술사의 말처럼, 내게 있어 지금은 지치지 말고 더 힘을 내어 많이 돌아다니고 더 듣고 공부하고 생각하며 배워야할 때 같다. 물론 산티아고가 그랬던 것처럼 나 역시 언젠가는 보물을 찾을 수 있으리라는 믿음을 갖고.

“배움에는 행동을 통해 배우는, 단 한 가지 방법이 있을 뿐이네. 그대가 알아야 할 모든 것들은 여행을 통해 다 배우지 않았나. 이제 남은 건 한 가지뿐이지.” - 연금술사가 산티아고에게.

덧붙이는 글 | [오마이뉴스와 나] www.finland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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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 기억 저편에 존재하는 근현대 문화유산을 찾아 발걸음을 떼고 있습니다. 저서로 <서울을 거닐며 사라져가는 역사를 만나다>(알마, 2008), <다시, 서울을 걷다>(알마, 2012), <권기봉의 도시산책>(알마, 2015)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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