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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아이들에게 배워야 한다>
책 <아이들에게 배워야 한다> ⓒ 도서출판 길
2003년 세상을 떠난 이오덕 선생님은 우리 문학과 언어 연구의 한 획을 그은 분이다. 그의 글을 대하다 보면 자그마한 몸에서 뿜어 나오는 힘차고 올바른 정신에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나도 이 분의 뜻을 조금이나마 이룰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이오덕 선생님의 글은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동화가, 한국일보에 수필이 당선될 정도로 문학적 감수성도 뛰어나다. 한글 사랑을 구호로 외치는 것이 아니라 직접 자신이 쓰는 글을 통해 아름다운 우리말 살리기에 앞장 선 선생님의 마지막 원고. 그 원고가 책으로 묶여 나온 것이 바로 <아이들에게 배워야 한다>다.

이 책은 아이들 교육 이야기라는 점에서 이오덕 선생의 철학과 가치관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는 책의 머리말을 통해 "아이들 교육 이야기는 그저 막연하게 해서는 될 수가 없다"고 단언한다.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교육 관계자들이 막연한 교육 이야기를 늘어놓았는가를 생각해 보면 그의 이 주장은 확실히 설득력이 있다.

"그러니까 사람이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물건을 만들어 내거나 사람이 올바르게 살아가는 데 반드시 해야 할 일을 하는 데서는, 누구든지 모두 저마다 하고 싶은 일을 맡아서 그것을 직업으로 삼아 즐겁게 일하면서, 한편으로 운동이나 노래나 춤 같은 것, 글쓰기 같은 것은 그런 일 속에서 함께 하면서 누구든지 즐길 수 있어야 한다.

곧 일과 놀이와 공부가 하나로 된 삶을 즐기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학교의 교육부터 그렇게 해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고 일과 놀이와 공부가 따로 되고, 그것을 하는 사람조차 따로 있게 되면, 어떤 사람도 다 불행에서 벗어날 수 없다."


하지만 우리의 교육 현실은 어떠한가? 땀 흘려 일하는 노동은 천하게 여기고 책상 머리맡에 앉아 글공부하는 것만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나라. 놀이와 공부가 별개의 것이고, 놀이는 줄여야 하지만 공부는 열심히 해야 할 것으로 생각하는 학교. 그저 머릿속에 지식만 넣어 놓으면 되는 줄 아는 이 현실이 얼마나 한스럽기만 한가.

이오덕 선생님은 이처럼 지나치게 학자와 지식인들만이 많은 나라 현실에 대해 안타까워한다. 세상은 무식한 사람도 필요하고 시골 사람도 필요하고 굳이 학문을 하지 않아도 살 수 있어야 하며 땀 흘려 일하는 사람이 보람을 얻어야 하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 유식한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그 유식한 사람들이 세상을 망쳤다고 본다. 나라 팔아먹은 사람들도 모두 유식한 사람들이었다. 이 나라를 지금까지도 엉망진창으로 만들고 있는 것이 바로 유식한 사람들이 아니고 누구인가? (중략) 자, 그러니까 이 글을 읽는 분들은 이제부터 내가 하는 말이 한 무식쟁이가 떠벌리는 무식한 소리라고 미리 알아주기 바란다."

대단한 학자도 아니고 공부를 많이 한 사람도 아닌 이오덕 선생님이 자신을 '무식쟁이'라고 겸허하게 던지는 교육 이야기. 무식한 농사꾼이 던지는 이 이야기들은 어떠한 유식한 교육가의 말보다 훨씬 더 우리 현실을 제대로 파악한다. 우리의 제도권 교육이 지닌 횡포와 권력 구조를 냉철히 비판하고 긍정적 해결 방법을 제시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방법들은 매우 구체적이다. 무엇이 문제이고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를 쉬운 말로 풀어서 설명하고 독자로 하여금 고개를 끄덕이게 만든다. 아이들이 글쓰기를 싫어하는 이유가 바로 억지 글쓰기 교육 때문이라고 비판하는 것 또한 매우 설득력이 있다.

"아이들이 왜 글쓰기를 싫어하는가? 아이들이 왜 글을 못 쓰는가? 그 까닭을 아이들 편에서 말하면 아주 간단하다. 쓰고 싶은 것을 못 쓰게 하기 때문이다. 자기가 잘 알고 있는 자기의 이야기를 써서는 글이 될 수 없다는 생각을 품게 해놓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1,2학년 어린이들에게도 어려운 과학책을 읽어서 감상문을 몇 장씩 써 오라는 따위로 억지글 거짓 글을 쓰게 하니 쓰기 싫고 못 쓸 수밖에 없다."

"아이들이 쓰고 싶은 것을 마음껏 쓰게 하는 교사는 100명 가운데 한 사람쯤 있을까. 거의 모든 교사들이 이렇게 되어 있었고, 지금도 다르지 않은 줄 안다. 그래서 한 번 선생님한테 야단맞은 아이는 다시는 그런 글을 쓰지 않게 된다. 언제나 선생님이 반가워할 것 같은 것만 일기장에 쓰고, 그런 것이 없으면 그런 이야기를 만들어내 거짓으로 쓰는 일기도 흔히 나온다."


이런 글들을 보면 국어를 가르치는 교사로서 부끄럽지 않을 수 없다. 나 또한 고정적인 글쓰기 방식을 아이들에게 요구해 온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 그리고 또 어린 시절의 내 글쓰기를 생각해 보면 '선생님이 원하는 글쓰기'를 습득해 왔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얼마나 왜곡된 가치관과 학습 방법이 학교에서 이루어지고 있는가.

교육에 몸을 담고 있는 사람들은 한번쯤은 되새겨 반성해 볼 이야기가 아닌가 싶다. 이런 교육 방법이 바로 획일화되고 경직된 사고를 낳는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유난히 창의력이 부족한 것도 이처럼 한쪽으로 치우친 교육 방법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다. '교육 당국'이 원하는 교육을 위해 학교도 학생도 교사도 모두 한쪽으로만 달려가고 있는 것이다.

"나라 사랑이나 겨레 사랑이 그런 점수따기 지식 암기로 어떻게 생겨날 수 있겠는가? 아침마다 애국가 부른다고, 국기를 올리면서 가슴에 손을 얹는다고 나라 사랑하는 마음이 생겨날까? 결코 생겨날 수 없다고 나는 잘라 말하겠다.

언제나 방에 가두어 놓고 서로 남을 미워하게 하고, 서로 위에 올라가려고 남을 깎아내라고 짓밟고 해치면서 지옥 같은 지긋지긋한 낮과 밤을 보내도록 한 그런 학교와 집과 고향과 나라를 어떻게 사랑하겠는가? 그러다가 정작 나라 위해 국방의 의무를 체험하게 하는 군대에 가면 거기서는 온갖 무서운 기합을 받아야 하는 나라, 이런 나라를 어떻게 사랑할 수 있는가?"

"이 참된 사랑을 모든 사람이 갖도록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 길도 아주 훤하다. 어릴 때부터 산과 들에서 즐겁게 뛰놀면서 살게 하는 것이다. 자연 속에서 뛰놀면서 살아가는 것이 공부가 되게 하는 교육이다. 그렇게 해야 내 고향 내 나라 내 겨레를 사랑하는 마음이 온몸에 배게 된다. 그렇게 하지 않고서는 다른 어떤 애국애족 교육도 다 헛되고 거짓인 것이다."


참으로 옳은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이오덕 선생님의 말씀처럼 뛰놀면서 살고, 넘치는 자연을 통해 배우고 가르치는 교육. 이것이야말로 우리나라를 사랑하도록 하고 아름다운 정신을 키우는 교육이 아닌가. 그렇지만 우리 현실은 이와는 거리가 멀다.

우리의 교육 현실이 비록 비참하게 비뚤어졌을지라도, 누군가가 이오덕 선생님처럼 바로잡기 위해 노력한다면 세상은 변하지 않을까? 그래서 지나치게 상하 위계질서에 사로잡히고 단편적이고 지시적인 지식 위주의 교육에 빠져 있던 우리 교육을 바꿀 수만 있다면, 그렇다면 우리 사회도 분명히 달라질 것이다.

"이렇게 해서 학교생활이고 가정생활을 '스스로 하고 싶은 일을 즐겁게 하는 삶'으로 보내게 된다면 학교를 졸업한 다음 어른이 되어도 그대로 살아갈 것이니, 정치고 경제고 산업이고 사회의 모든 일이 잘 풀릴 것이다. 문학과 예술도 비로소 삶과 하나가 될 수밖에 없고, 사람을 짓누르고 아이들을 괴롭히던 글도 살아 있는 말을 적는 글이 될 것이 틀림없다. 이래서 땅은 행복하게 살아가는 사람의 나라가 된다."

이오덕 선생님이 이야기하는 것과 같은 학교가 많이 생겨나고 이런 학교에서 배운 아이들이 어른이 되어 세상이 바뀌는 날. 그런 날이 오길 많은 이들은 소망하고 있다. 이 꿈들이 꿈으로만 끝나지 않고 진정한 변화로 발돋움하는 교육. 이것은 꿈이 아닌 실현 가능한 이상임이 틀림없다. 많은 사람들이 이를 깨닫고 노력한다면 말이다.

아이들에게 배워야 한다 - 이오덕 선생이 우리에게 남긴 마지막 말씀

이오덕 지음, 길(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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