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좁은 차 안에서 발도 제대로 뻗지 못하고 잤는데도 화창한 하늘 만큼이나 몸이 개운했다. 모두 씻지를 못해서 꾀죄죄하기는 했으나 상쾌한 얼굴들이다. 한 번 잠들면 업어가도 모르는 필자와는 달리 잠귀가 밝은 아내는 밤새 아이들이 뒤척일 때마다 침낭을 덮어주느라 잠을 설쳤을 것이다. 그런데도 기분 좋은 얼굴이다.

사람의 감정은 전염된다. 특히 같이 붙어사는 가족의 경우 전염성은 더욱 강하다. 아침에 일어나서 하는 첫인사가 하루의 시작을 길잡이 하는 것은 물론이다. 더욱이 매일매일 새로운 환경과 도전의 연속인 자동차 캠핑여행에 있어서 아침의 분위기는 아주 중요하다. 컨디션의 난조로, 불쾌라는 전염병이 퍼지기 전에 굿모닝 백신주사를 가족들에게 놓아야한다. 물론 그것은 팀장의 책임이기도 하고 팀장 자신을 위한 일이기도 하다. 오늘은 그 주사가 필요없을 정도로 상태가 좋은 것 같다.

▲ BMW본사
ⓒ 유원진
간밤의 폭우가 무색하리만치 능선을 따라 잘 뻗은 국도는 사진속의 풍경처럼 아름다웠다. ‘길 자체도 아름다울 수가 있구나’ 하고 생각하며 이 길따라 무조건 가볼까 하는 엉뚱한 생각이 들 때쯤 11시 방향 아래쪽으로 고속도로가 보였다.

지도를 펴놓고 일정을 의논했다. 일박을 귀곡산장에서 보냈으니 프랑크프루트와 뉘른베르그를 빼고 그냥 뮌헨으로 갔다가 프라하로 가기로 했다. 서울서 부산 가는 거리보다 조금 먼 것 같았으나 길이 좋은데다 이른 아침이라 시간적으로도 여유가 있었고 무엇보다 날씨가 좋아서 독일의 아우토반을 몇 시간 동안 달려보고 싶었다.

우리 가족은 모두 자동차 여행을 좋아한다. 단지 필자는 운전하는 것보다 옆에 타는 것을 더 좋아하는 까닭에 그럴 기회가 전혀 없는 게 약간 억울할 뿐이다. 그래도 아우토반이라니까 운전하는 것도 괜찮겠다 싶었다.

고속도로에 진입하자마자 바로 휴게소가 보였다. 기름을 넣고 유료화장실에 가서 간단하게 눈꼽만 떼는 세수를 하고 자판기에서 커피를 뽑았다. 커피 역시 마니아가 아니어서 그런지는 모르지만 어디를 가 봐도 우리 나라 삼백원짜리 프림설탕커피가 제일 맛있다.

유럽에 간다니까 누가 이탈리아에 가서 환상적인 카푸치노를 맛보라 하기에 가는 데마다 들러서 카푸치노를 뽑아 먹었는데 비싸기만 하고(1유로) 내 입맛에는 그저 프림설탕이 최고였다. 촌놈이 그렇지 뭐. 커피를 마시고 있는데 ‘아버지 저것 좀 봐요’ 하는 소리에 돌아보니 희한한 자동차인지 오토바인지가 출발을 하려고 시동을 걸고 있었다.

바퀴가 두 개뿐이니 오토바이는 맞는데 앞뒤로 좌석이 따로 두개가 있는데다가 전투기 조종석처럼 유리 덮개가 씌워져 있고 옆에도 자동차처럼 문이 달려 있었다. 앞에는 할아버지가, 뒤에는 그의 부인인 듯한 할머니가 타더니 문을 닫고 엔진음도 요란하게 출발을 했다. 전투기가 날개를 다 떼고 동체 밑에 앞뒤로 바퀴를 달고 달리는 형국이었는데 날렵한 것이 멋있었다. 너무 빨리 일어난 일들이라 기름을 넣고 휴게소 한쪽에 세워둔 자동차로 카메라를 가지러 갈 사이도 없었다.

평소에 사진을 찍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는 않지만 하도 기이하고 멋지게 생겨서 아쉬움이 남았다. 자동차 회사나 오토바이 회사에서 대량생산 된 것 같지는 않고 주인이 직접 제작한 듯이 보였다. 그런데 바퀴 두 개로 어떻게 주차해 놓았을까가 지금도 궁금하다.

▲ 독일 뮌헨 슈바빙 거리
ⓒ 유원진
우리 나라에서는 최고로 달릴 수 있는 법정속도가 110km/h 이다. 물론 경부나 중부고속도로에 가면 120km/h는 보통이고 드물지 않게 140km/h 이상으로 달리는 차들도 보이지만 사실상 140km/h 이상으로 달려보면 일부 구간을 제외하고는 속도감에 신경이 쓰인다. 지형상 곡선도로가 많고 차선이 좁기 때문이리라.

아우토반에 들어서서 심호흡을 하고 달리기 시작했는데 웬일인지 속도계는 140km/h를 가리키고 있는데 그리 빠르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그래도 아직은 이, 삼차선에서 달리고 있는데 일차선의 차들은 예측하지 못할 정도로 엄청난 속도로 달리고 있었다.

한 삼십여분 130, 140 사이에서 달려보다가 우리 차가 180km/h까지는 쉽게 나가는 것을 확인하고 쭉 뻗은 내리막길에서 과감히 일차선으로 진입을 시도하였다. 마침 이차선에서 우리 앞을 달리던 차가 언덕 정상 직전에서 속도가 줄어 추월의 핑계를 제공해 주었다.

아주 완만한 언덕을 넘어서는 순간 눈앞에는 끝이 안보이는 일직선의 도로가 아득한 지평선 끝과 맞닿아 차가 똑바로 가기만 한다면 핸들을 묶어 놓고 잠을 자도 될 정도로 시원하게 뚫려 있었다. 거짓말 같이 눈앞으로 보이는 끝까지 자동차가 한 대도 없었다. 갑자기 아지못할 흥분과 희열이 온몸을 감싸왔다. 크게 심호흡을 하였다.

내리막 길에서 차가 탄력을 받았을 때 액셀러레이터를 끝까지 밟았다. 계기판이 올라가고 소음이 조금 커지자 무심하게 창밖의 풍경을 보고 있던 아내가 ‘천천히 가’하고 참견을 한다. 나는 둘째와 눈을 맞추며 ‘천천히 가는 거야’ 하고 태연히 말했다.

그러나 끝까지 밟았음에도 푸조의 파트너는 190km/h까지가 최고 속도였다. 계기판에는 분명히 220km/h로 되어 있었는데 새차라 그런지 더 이상 나가지 않았다. 그러나 그거라도 어디냐. 내가 어디서 190km/h 로 달려볼 것이냐. 짜릿한 몇 분이 흘렀다. 액셀러레이터를 끝까지 밟고 있었는데 속도감은 그리 느껴지지 않았다.

그러나 일차선의 독주는 오분여를 채 못 넘겼다. 더 이상 안나가는 것을 확인하고 여유가 생겨 뒷거울을 보는데 뒤에서 전조등을 깜빡이며 차 하나가 바싹 붙어 있었다. 유럽애들이 매너가 즣은데 무슨 경우래 하면서 얼른 이차선으로 비켜 났다. 총알 같이 우리 차를 추월하는 차는 벤츠였는데 순식간에 우리 시야에서 멀어졌으니 아무리 낮게 잡아도 이백이십은 넘겼을 것이다.

우리는 일차선 주행을 포기하였다. 이차선도 백삼십은 달리니 가끔 가다가 독일 할아버지들만 추월하면서 달리는 게 아우토반에서 민폐를 덜 끼치는 것이라 판단했기 때문이다. 길이 너무 잘 닦여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빨리 달려도 전혀 위험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길 하나는 너무 부러웠다. 그러나 다음 이야기를 들으면 정작 부러운 사람들은 따로 있을 것이다.

우리 나라에서는 오토바이가 고속도로에 진입하지 못한다. 그래서 피끓는 젊음들이 한밤의 시내 넓은 도로를 질주하는 것으로 속도의 쾌감을 느끼려는 행위들이 소위 폭주족들일 것이다. 바퀴 달린 모든 것들의 본능은 속도라는 어느 광고 문구처럼 오토바이 위에 앉아 봐야 왜 젊음들이 미치도록 속도를 그리워하는지 알게 된다.

▲ 뮌헨의 성당
ⓒ 유원진
유럽의 고속도로는 오토바이에게도 개방이 되어있어 심심치 않게 오토바이들이 눈에 띄었다. 이차선으로 달리고 있는데 무엇이 뿅하고 옆을 총알 같이 지나가서 깜짝 놀라 우리 계기판을 보면 160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러니 오토바이는 시속 이백킬로미터로 달리고 있는 것이 된다. 그리고 그렇듯 바람 같은 속도로 나르고 있는 오토바이의 뒤에는 하나 같이 남자의 등에 바짝 붙어 있는 여자들이 있었다.

하나 같이 헬멧을 쓰고 있었어도 몸매로 보나 붙어 있는 모양새로 보나 여자라는 것은 짐작하기가 어렵지 않다. 하기야 같이 달리고 있었으니 보이지 길에서 지나가는 것을 보았다면 그냥 바람이 쌩하고 지나가는 형국이었을 것이다. 필자는 둘째를 보고 ‘우리 나라 폭주족들 정말 불쌍하다, 그치?’ 하며 웃었는데 둘째는 심각한 표정으로 ‘그러게요’ 해서 한 번 더 웃고 말았다.

지금도 생각하거니와 오토바이들의 고속도로 진입이 그리 위험할까? 사실 자동차들(이륜차 포함)의 위험이란 그 자체의 형태 때문이라고 보기보다는 그것을 움직이는 사람들에게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겠는가. 오히려 오토바이의 고속도로 진입을 허용하면 국토가 좁고 산악지형이 많아 만성적인 도로 정체에 시달리는 우리 나라 같은 경우, 실보다는 득이 많으리라 생각된다.

유럽의 오토바이들은 하나의 자동차로 대우받으며 고속도로를 질주하고, 차선 옆으로 그냥 '꼽사리' 껴서 달리는 존재라는 우리의 통념을 깨고 차선 하나를 당당히 차지하면서 네 바퀴가 부러워할 정도로 속도감을 즐기고 있었다. 나는 우리 옆을 총알 같이 스쳐지나가는 오토바이를 보며 둘째에게 말했다.

“태민아, 너 이담에 오토바이 타면 여기에 아빠 데리고 와서 뒤에 좀 태워주라. 진짜 재미있겠다.”

아니나 다를까 아내가 가만 있을리가 없다.

“오토바이는 위험해서 안 된다니까. 벌써부터 바람을 넣어요, 아주! 너 오토바이는 꿈도 꾸지 마, 알았지?”

우리는 마주보고 웃고 있는데 아내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한쌍의 폭주족이 바람을 가르며 단속 카메라도, 경찰도, 그리고 제한속도 표지판도 없는 하늘 같은 길을 따라 지평선을 향해 내달리고 있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글쓰는 것을 직업으로 삼고 싶었으나 꿈으로만 가지고 세월을 보냈다. 스스로 늘 치열하게 살았다고 생각해왔으나 그역시 요즘은 '글쎄'가 되었다. 그리 많이 남지 않은 것 같기는 해도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나' 많이 고민한다. 오마이에 글쓰기는 그 고민중의 하나가 아닐까 한다.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