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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2월 8일 어머니가 접으신 백조 두마리
2005년 2월 8일 어머니가 접으신 백조 두마리 ⓒ 노태영
작은 항아리가 어머니의 첫 번째 작품이었다. 울긋불긋한 이 항아리는 기교를 부리지는 않았지만 안정감을 주는 도자기처럼 단아한 멋을 풍긴다. 신문 속에 들어있는 간지나 현관문에 붙어 있는 광고전단으로 만든 이 항아리는 고급스럽지는 않지만 애정이가고 귀엽다. 그리고 앙증맞다. 그래서 애정이 더 간다.

어머니의 종이접기는 오래되었다. 어머니가 고향을 떠나 인천으로 가신 90년대 초에 어머니는 종이접기를 시작하셨다. 벌써 10년이 넘어서고 있다. 이젠 능숙한 손놀림과 머릿속에 숙지된 다양한 기법을 활용하여, 기존의 틀을 벗어나 응용과 창조의 나래를 펼치기 시작할 정도다. 어머니가 종이접기를 하시는 모습을 보면 마치 무아지경의 경지에 빠지신 것처럼 보인다.

옆에서 구경만하시던 아버지도 이젠 거들기 시작하셨다. 예전에 아버지의 손재주는 동네에서 알아주었었다. 가마니를 짜거나 지게를 만들거나 소쿠리를 엮으실 때 아버지의 손재주는 그대로 드러나셨다. 그러나 아버지는 종이접기는 선뜻 하시지 않으셨다. 아마 종이접기는 남자가 할 것이 못된다고 생각하시는 것 같다.

그러나 어쩌시겠는가. 종이접기를 하시지 않으면 어머니와 할말이 없으시니 말이다. 아버지도 심심하시고 어머니도 심심하시니 별 수 없으셨다. 노인정에도 자주 가셨지만 노인정에서는 술과 담배 그리고 놀이 화투를 많이 하시기 때문에 아버지는 별로 좋아하시지 않으셨다.

그래서 종이접기로 어머니를 돕기 시작하신 것 같다. 지금은 두 분의 손놀림이 척척 맞아 능률이 훨씬 높아지셨다. 잔심부름은 아버지가 거의 도맡아 하신다. 특히, 종이를 칼로 자르거나 가위로 자르는 일은 아버지의 일이시다. 그리고 풀이나 접착제를 사용하는 일은 아버지의 일이시다.

종이접기는 어머니와 같은 연세가 많으신 분에게 많은 이점이 있다. 우선 손과 머리를 계속 사용한다는 점이다. 손을 자주 사용하기 때문에 치매예방에 매우 좋다. 작은 색종이나 광고전단지를 손으로 접는 작업은 힘들지는 않아도 섬세한 손놀림이 필요하다. 원래 어머니는 꼼꼼하신 성격을 가지셨다. 그래서 일을 하실 때 보면 매우 꼼꼼하게 하신다. 이런 어머니의 성격과 종이접기는 잘 맞는 것처럼 보인다.

화투가 치매를 예방효과에 좋다는 웃지 못할 뉴스도 있었지만 화투보다는 종이접기가 치매예방효과는 더 클 것이다. 화투보다는 노인들에게 종이접기를 권장하는 것이 교육적으로도 좋을 것 같다. 종이접기는 아이들과 함께 할 수도 있기 때문에 아이를 돌보는 구실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종이접기는 치매예방은 말할 것도 없고 고부간의 갈등도 종이접기를 통해 어느 정도 해소할 수도 있는 것처럼 보인다. 어머니와 형수님은 완전히 구세대와 신세대의 차이만큼이 나이차가 크다고 할 수 있다.

어머니는 1929년 기사년 뱀띠이고, 형수님이 1959년 기해년 돼지띠니까 30년의 나이차가 난다. 이런 나이차에도 큰 갈등 없이 한 집에서 살면서 어려움을 극복하고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은 아마 종이접기의 역할이 컸다고 생각된다.

10여년이 넘는 인천에서 생활하는 동안 어머니는 종이접기를 취미삼아서 여가삼아 하셨다. 작년에 고향으로 내려올 때에는 쓰다 남은 종이를 모아오셨을 정도니까 종이접기에 대한 어머니의 각별한 애정을 짐작할 수 있다. 여름 내내 농사일을 하셔야 했기 때문에 종이접기는 엄두도 내지 못하셨다.

그러나 다소 한가한 겨울철이 되자 다시 종이접기를 시작하신 것이다. 짐작컨대 여름철에도 종이접기를 하시고 싶으셨을 것이다. 그러나 농사일이 힘드셨기 때문에 할 수가 없으셨을 것이다.

고향 동네에서 어머니의 종이접기는 겨울철 농번기 취미와 건전한 놀이로 큰 역할을 하고 있다. 대부분의 동네 사람들이 연세가 많으시기 때문에 겨울철에는 거의 할일이 없으시다. 그렇다고 아는 사람들끼리 매일 모여서 화투를 치는 것도 별로 좋아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동네 사람들은 마을회관에 모여 저 혼자 앞서가는 세월을 불러놓고 농담하고 삿대질도 하시다가, 때가 되면 라면이나 국수로 허전함을 달래시고, 밥 때가 되면 밥 한 공기에 묵은 김치 한 사발로 허기를 때우는 것이 하루 일과이다. 이런 분들에게 종이접기는 의미 있는 여가거리가 아닐 수 없다.

어머니는 동네 어르신들에게 종이접기를 가르치시고 함께 모여서 시간을 보내면서 길고 추운 정월달을 보내고 계신다. 정신 건강에도 좋고 이웃간의 사이도 좋아질 수밖에 없다. 한 해 겨울을 보내시는 어머니는 어느새 많은 백조와 항아리를 접어 동네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고 계셨다. 어머니는 심심하지 않으실 뿐만 아니라 동네 사람들과 친하게 지낼 수 있어서 좋고, 추운 겨울 여러분이 모이니까 따뜻해서 좋고 여러모로 좋은 일들이 많다. 모두가 종이접기 탓이다.

어머니가 만드신 백조와 항아리
어머니가 만드신 백조와 항아리 ⓒ 노태영
어머니의 종이접기는 거의 대부분이 폐품을 활용하신다. 인천에 계시는 형수님 내외는 광고전단지를 모아서 시골에 내려올 때마다 가지고 온다. 그리고 하얀 제품포장지나 A4용지 폐지는 어머니의 훌륭한 종이접기 재료다. 바로 백조를 만드실 때 사용하시는 거다. 백조 눈알은 문구점에서 사서 붙이신다. 빨간 눈으로 빤히 나를 쳐다보는 백조를 볼 때마다 어머니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신문이나 현관문에 붙어 있는 광고지는 항아리를 만드실 때 사용하신다. 여러 가지 색깔이 섞여서 화려한 꽃무늬처럼 진한 감동을 준다.

어머니는 종이접기를 해서 자식들에게도 많이 나누어 주셨다. 어머니를 찾아 뵐 때마다 어머니는 어머니의 종이접기 작품을 여러 개씩 내 손에 들려주셨다. 우리 집에도 여러 점이 있다. 각 방마다 백조와 항아리가 있고 거실과 주방에도 어머니의 작품은 다소곳이 자리를 잡고 있다. 어머니가 자주 주시기 때문에 나와 친하게 지내는 이웃사람들에게도 하나씩 나누어 주곤 했다. 7남매에 이렇게 나누어 주시고 손주들에게도 나누어 주시다보니, 어머니가 만드신 종이접기 작품은 이미 전국적으로 퍼져 어머니는 유명종이접기 작가(?)가 된 것이다.

고향으로 내려오신 후 다시 손에 잡으신 종이접기는 어머니의 농한기 훌륭한 소일거리가 된 것이다. 예전에 시골에 계실 때는 겨울철에는 길쌈(삼베짜기)을 많이 하셨다. 어머니의 길쌈 솜씨는 근방에 소문이 날 정도였다. 그래서 어머니가 짜신 삼베는 미리 예약되어 팔릴 정도였다. 그 만큼 어머니의 손 솜씨는 뛰어나셨다.

이제 새로 시작한 종이접기는 어머니에겐 훌륭한 생활의 동반자가 되신 것이다. 아버지도 함께 종이접기를 하시면서 더 금슬이 좋은 부부가 되셨다. 어머니가 스무 살 때(1947년 10월 14일) 아버지에게 시집을 오셨으니, 내 후년이면 결혼 60주년이 되신다. 얼마 남지 않은 회혼식(금강석혼식)을 건강하게 맞이하시는데 종이접기와 귀향은 훌륭한 역할을 할 것으로 믿는다. 60여년을 함께 하신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종이접기는 앞으로 70년 80년의 생활을 보장해주는 가장 믿을 만한 징검돌 역할을 할 것으로 믿는다.

다정하게 앉아 종이접기를 하시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보면 거의 80년이라는 세월이 이렇게 소박하게 마주 앉아 있는 느낌이 정말 살갑게 다가온다. 종이접기라는 취미 때문에 어머니와 아버지와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으니 이 또한 고맙고 즐거운 일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할머니를 닮아서 인지 아들 현진이는 틈만 나면 종이접기를 했었다. 요즈음 블록쌓기에 정신이 팔려 종이접기 상자는 책상 밑에서 깊은 잠을 자고 있지만, 현진이가 머지않아 다시 종이접기를 시작할 것이라는 확신이 선다. 이래저래 종이접기는 우리가족에게는 즐거운 오락이자 취미가 되어버렸다.

덧붙이는 글 | 노태영 기자는 남성고 기자이고 이 글은 http://family1004.netian.com에도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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