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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간에도 여전히 담배와의 치열한 전투를 벌이고 있을 모든 전사에게 이 글을 씁니다.

'길고 지난했던 담배와의 전투에서 이길 수 있었던 요인은 무엇이었을까?' 결론적으로 말한다면 그것은 거듭되는 금연 시도 속에 걸려든 우연한 행운이었는지도 모릅니다. 마치 그물질을 더 자주 하는 어부에게 고기가 걸리듯, 더 많은 금연 시도 속에서 성공 확률도 점차 높아진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금연을 시도하면서 겪어야 할 고통과 더불어 거듭되는 실패에서 맛 보게 되는 씁쓰레함까지도 지속적으로 인내할 수 있을 때 금연도 성공할 수 있겠지요.

담배를 끊고자 했던 수많은 전사들의 경험담에서 드러나듯 흡연 욕구는 시간과 장소를 불문하고 우리를 유혹합니다. 그렇게 끈끈하고도 달콤한 유혹이 또 있을까요. 거부하면 할수록 우리를 더욱 더 깊숙한 흡연의 늪으로 끌어들이는 금단의 시간들. 그러나 유혹이 큰 만큼 금연을 통해 또 한 번의 '새로운 인생'을 시작할 수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 작지만 강한 유혹 덩어리
ⓒ 김영태
담배를 피는 사람에게 인생은 두 시기로 나누어진다고 합니다. 지금까지가 담배와 함께 한 시간이었다면 이후로는 담배 없는 삶이 시작된다는 것이지요. 그러나 흡연자들에게 담배 없는 삶에 대한 상상은 한편으론 두려움을 가져오기도 합니다. 나 역시 담배 없이 사는 일상의 무미건조함을 상상하며 담배와의 전쟁에서 전의를 상실한 경험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금연에 성공한 사람들이 금연 이후의 시간들이 더욱 더 행복하다고들 하는 말을 듣다보면 금연에 대한 욕구 또한 만만치 않은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담배 없는 행복한 삶을 준비하기 위해서는 출산을 앞둔 산모의 고통에 버금가는 힘겹고 처절한 시간을 이겨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막연히 건강을 위해 금연을 결심할 때만 해도 담배에 관한 나의 손익계산서에는 장단기적으로 엄청난 순이익만 기록될 뿐 그 어떤 방향에서도 손실은 예측할 수 없었습니다. 금연에 관련된 대차대조표에서 이익쪽에 기입될 사항들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가슴에 고인 가래를 뱉는 불결한 수고로움을 덜 수 있는 것부터 시작해서 가족들의 눈치에서 자유롭고, 담배값에 대한 경제적 부담에서 벗어날 수 있으며 장기적으로는 건강한 삶까지 보장받을 수 있다는 사실이 어렵지 않게 기록되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간단하면서도 효과적인 건강 보호법이 '금연'이라니 웬만한 애연가가 아니고서는 흡연하는 사람 누구나 한 번쯤은 시도해 볼 가치가 있는 거지요.

그러나 누구나 알고 있듯이 금연의 결심은 쉬울망정 그 실천은 악전고투에 다름 아닙니다. '나 담배 끊었어요'하고 결심한 순간부터 짧게는 반 시간도 못되어 내가 왜 그런 엉뚱하면서도 무모한 약속을 스스로에게 했을까, 하는 후회부터 시작해서 이후로 매 순간마다 간단없이 찾아드는 흡연 욕구 앞에서 나는 흡사 거대한 파도 앞에 선 해초마냥 흔들리기 십상이었습니다.

순간 순간이 시험의 연속이라면 과장된 말일까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담배를 입에서 뗀 순간부터 일정기간 동안 내 머릿속은 오직 '담배'와 연상된 사고로만 가득차 있었으니까요. 전봇대까지 담배로 보이는 경험을 했다면 거짓말일까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하긴 그럴만도 하겠지요. 10년이 넘게 고락을 같이 한 절친한 친구를 그렇게 쉽게 떠나보낼 수 있겠는지요. 과거의 시간 속에서 담배연기와 함께 내 마음 속 깊숙이 간직되어 있는 기쁨과 슬픔의 시간들을 어떻게 잊을 수 있겠습니까. 또 담배연기에 한 움큼 추억으로 남아있는 애잔한 그리움이라든가 아쉬움, 혹은 무료함과 어색함을 달래주던 흡연의 기억들은 또 어떻구요.

담배와의 추억을 감싸고 있는 잊을 수 없는 순간만 헤아려봐도 그렇습니다. 시험을 앞둔 긴장된 순간에 나에게 여유를 준 것도 담배였고, 첫 사랑을 보내며 가장 먼저 찾은 것도 담배였으며 결혼식을 끝내고 설레는 마음을 간신히 억누를 수 있었던 것도 역시 담배였답니다. 어디 이만한 인연이 또 있을까요. 이렇게까지 나에게 끈끈한 정을 나누었던 추억의 물건이 또 있을까요. 더구나 내 뼛속까지 깊이 각인되어 있어 이미 몸의 일부가 된 사물을 또 어디에서 찾을 수 있겠습니까.

사실 금연 결심을 사정 없이 뒤흔들어 놓는 요인이 바로 이런 것이었습니다. 니코틴의 중독성만큼이나 담배와의 결별을 어렵게 하는 것이 바로 담배에 얽힌 경험들이지요. 그리고 이런 경험은 다시 흡연 습관이나 혹은 중독성과 상승작용을 일으켜 나도 모르게 추억 아닌 추억으로 승화되기도 합니다.

니코틴 중독에 습관의 무서움까지 곁들여진 상태에서 담배연기와 함께 연상되는 달콤한 추억까지 가미된다면 거기에 대항하기란 쉽지 않겠지요. 더구나 오랜 시간동안 우리의 호홉과도 같이 자연스럽게 느껴지던 흡연습관을 그렇게 쉽게 없앨 수 있겠는지요.

여기에 따른 결론은 단 하나인 듯합니다. 담배와의 단호한 결별을 위해서는 역시 그만큼 우리의 정신을 단호하게 단련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겁니다. 그러나 저같이 의지박약한 사람이 금연에 몇 년이나마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이러한 강철같은 의지의 단련만으로는 설명이 되지 않습니다.

내가 몇 차례 거듭되는 금연 시도에 실패하고 난 이후에 깨달은 것이 있다면 금연을 결심한 순간부터 단지 담배를 피우지 않는다는 생각보다는 금연 이후의 습관이나 행동을 하나 하나 만들어 가는 것이 필요하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습관이나 행동은 단지 껌을 씹거나, 물을 마시는 것보다 더 적극적이며 건설적인 것이어야 한다는 생각이었습니다.

이를 위해서 나는 담배를 피우지 않겠다는 소극적 결심보다는 담배를 피우지 않기 위해서 내가 해야 할 최대한의 것들을 시도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텃밭가꾸기나 혹은 마라톤이었습니다. 얼핏 생각하기에도 이렇게 대단한 시도를 금연과 연관시켜 꾸준히 실천해 나간다면 금연에 대한 결심이 쉽게 무너지지는 않으리라는 판단이 들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무모하면서도 기특한 발상이었습니다. 사람은 때론 자신의 용기에 놀란다는 말이 있는데 아마 그때 당시 저에게 어울리는 말이 아니었나 합니다.

어쨌든 아침에 일어나 맹목적으로 흡연의 유혹을 견디기보다는 근처에 노는 땅을 찾아 잡초를 제거하는 시간 속에서 자연스럽게 흡연의 욕구를 잊고자 하는 한편 시간이 날 때면 마라톤 동호회원들이 연습하는 코스를 따라 나도 힘겹게 달리기 연습을 함으로써 담배와의 단절을 강화시켜 나가고자 했습니다.

물론 이런 과정이 어디 말처럼 그렇게 쉽게 실천되기나 했겠는지요. 그러나 일단 이러한 적극적인 실천이 며칠만 반복되면 흡연욕구만큼 금연 의지도 힘을 얻는 게 사실입니다. 이 정도로 각오하고 실천했는데 여기에서 무너지면 이제 또 무슨 방법이 있을까, 하는 생각은 의외로 담배와의 전투의욕을 왕성하게 하는 힘을 갖고 있습니다. 배수의 진을 친다고나 할까요.

그러나 지금 곰곰이 생각해 보면 금연 성공 이유를 어디 이 방법에서만 찾을 수 있겠는지요. 앞서도 말했듯이 금연 성공이란 그저 거듭되는 시도와 실패 속에서 맛 볼 수밖에 없는 갖가지 씁쓰레한 기억들-실망감, 자격지심, 의지박약, 나아가 죄책감까지-을 가슴 한 가득 담고서 그래도 금연을 하겠다는 사람에게나 찾아오는 우연한 행운 같은 게 아닐까 합니다.

따라서 나의 금연에 대한 성공 요인은 '그래, 지금까지 실패했으니 이번에는 성공할 수 있겠지'라는 한 가닥 기대와 확률 속에서 우연히 얻은 것이라고 보면 정확합니다. 결과적으로 나는 금연에 대한 성공여부도 행운이나 확률로 보고 있습니다. 그저 많이 시도할수록 성공률도 높다는 게 금연에 대한 나의 생각이라고나 할까요.

자, 설날의 금연 맹세가 지금쯤 깨져 버렸다면 지금 다시 시도를 해 보세요. 이번에는 성공할 수 있을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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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만 들어도 가슴이 벌렁거리는 '기자'라는 낱말에 오래전부터 유혹을 느꼈었지요. 그렇지만 그 자질과 능력면에서 기자의 일을 수행할 수 있을까 하는 자신에 대한 의구심으로 많은 시간을 망설였답니다. 그러나 그런 고민끝에 내린 결정은 일단은 사회적 목소리를 들으면서 거기에 대해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내생각도 이야기 하는 게 그나마 건전한 사회를 만들어 가는 데 필요치 않을까, 하는 판단이었습니다. 그저 글이란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진솔하고 책임감있게 표현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신 있는 글쓰기 분야가 무엇인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일상의 흔적을 남기고자 자주 써온 일기를 생각할 때 그저 간단한 수필정도가 아닐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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