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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오랜만의 외갓집을 찾았다. 대문이 열리자마자 "저 왔어요"라고 큰 목소리를 지르며 집안으로 들어섰다. 겨울 내내 보일러 한 번 켜시지 않은 듯 거실에는 냉기만 가득했다. 거실 중앙에 깔려있는 카펫 위에도 서늘한 기운만 감돌뿐이었다. 손자가 추울까봐 얼른 방으로 들어오라시는 할머니의 재촉에 안방으로 들어갔다.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 두 분께 큰 절을 올리려던 순간이었다. 두 손을 모아 가슴까지 올리는 순간 전화벨이 울린다. 할아버지가 전화기 곁으로 다가서신다. 전화를 받으시고 전화를 건 누군가와 몇 마디가 오간 뒤였다.
"왜 안 아파요. 엊그제도 어지러워서 혼났는데."
순간 전화기를 붙잡고 말씀하고 계신 할아버지의 얼굴을 바라봤다. '할아버지'라는 호칭이 무색할 만큼 나에게 늘 건강하고 젊은 분이셨고, 추운 겨울날에도 산을 오르내리시며 건강을 자랑하던 분이셨는데 어느새 주름이 많이 느신 것 같다.
그 순간 '왜 안 그러시랴, 이제 팔순이신데'라는 생각도 들었다. '할아버지'라는 호칭을 쓰면서도 언제든지 찾아뵐 수 있었고 쩌렁쩌렁한 목소리를 자랑하셨던 분이기에 당신도 늙어가고 있다는 것을 잊고 살았던 것 같다.
'이제 난 뭐라고 안부를 여쭤야하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평소 같으면 "편찮으신 데는 없으시죠?" 혹은 "건강하시죠?"라고 물었던 것이 나의 주된 안부 인사였는데 갑자기 할 말이 없어졌다. 그냥 딴청을 부리다가 한참 후에야 또 똑같은 안부 인사를 건넸다.
내 딴에는 좀 전에 들었던 "어지러워서 혼났다"는 말이 듣고 싶지 않아서였을까 한참 뜸을 들인 뒤에 여쭌 안부였다. 그러나 편찮으신 것은 어쩔 수 없나보다. 웬만큼 건강에 이상이 있지 않고서는 편찮으시다는 말씀 안 하시던 분인데 대답이 신통치 않으시다.
"약 기운에 사는 것이지…."
그 말씀을 듣고 방 한 구석을 보니 약 봉투가 쌓여있다. 순간 눈물이 핑 돌아 "건강하셔야죠"라고 한 마디 던져놓고는 "차에 별 일 없나 나가본다"며 멀쩡히 잘 주차해 놓고 들어온 승용차를 보러 나왔다. 밖에서 바람을 쐬고 있노라니 이런 저런 생각들이 교차했다.
외할아버지는 나에게는 좀 특별한 분이셨다. 어려서부터 맞벌이 부부이셨던 부모님 사정 때문에 나는 줄곧 외가와 친가를 오가며 유년기를 보냈다. 나의 기억이 옳다면 외가에 머물었던 시간들이 더 많았던 것 같다.
그래서 외할아버지 외할머니는 나의 부모 노릇까지 해 주시는 경우가 많았다. 생일이면 손수 케이크를 사 오셔서 생일상도 차려주시고 사진까지 찍어주셨다. 어디 생일뿐이었으랴. 어지간한 부모 노릇은 다 해주셨다.
다시 집 안으로 들어가 할아버지 앞에 앉으니 뭐라 말씀 드릴 것이 마땅치 않아 괜한 TV만 보고 있는데 할아버지가 먼저 말씀을 하신다. "너 올해 몇 살이지?" 순간 나는 또 친척 어른들이 나를 보면 늘어놓는 레퍼토리에 빠질 각오를 해야 했다.
"서른 살에는 장가가야 한다"라는 말씀에 "네"하며 빙그레 웃고만 있는 나를 보곤 성에 차지 않으시는지 일장 연설을 하신다. 말씀인즉 친척 중에 누가 있는데 '서른 살에 아직 괜찮다고 결혼 미뤘다가 이제 마흔인데 아직도 못 가고 있다'는 말씀이셨다.
역시 나의 예상은 빗나가지 않은 듯 했다. 그런데 그 똑같은 말이 달리 들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냥 할아버지의 눈을 바라보고 있으니 손자가 장가 못 가는 것이 걱정되어서가 아니라 손자가 결혼하고 그 자식 녀석 한 번 안아보고 싶으신 욕심이신 것만 같았다.
'할어버지, 제가 장가갈 때까지 건강하셔야죠'라고 말씀을 드리고 싶은데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곧이어 할아버지는 어딘가에 ○○묘지가 있는데 당신이 돌아가시면 거기에 묻히게 될 것이라고 말씀을 하셨다. "왜 그런 말씀을 하세요"라며 또 딴청을 부렸지만 눈물이 날까봐 부려보는 딴청이었다.
손자가 간다고 팔순의 외할아버지 외할머니가 길가에까지 나오셨다. 어서 출발하라고 손을 내저으시는 모습을 차량에 달린 거울에 보인다. 시동을 걸고 앞으로 가면서도 한쪽 거울을 계속 바라다보았다. 어느 순간 두 분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운전을 하며 돌아오는 내내 두 분을 생각했다. 어쩌면 할아버지의 어딘가에는 이미 죽음의 그림자가 다가와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면서도 '내 할아버지는 아직 정정하시다'는 생각으로 쓸데없는 생각들을 지웠다.
한참 국도를 달리고 있는데 신호등 불빛이 주황색에서 빨간색으로 바뀐다. 창밖을 바라보고 있는데 새 한 마리가 시선에 잡혔다. 무슨 일인지 새는 한 자리에 머물러 날갯짓만 계속하고 있었다.
아무리 쳐다봐도 그물 같은 것에 걸린 것 같지는 않고 특별히 그 한 자리에서 계속 머무르며 날개짓을 하는 이유를 통 알 수 없었다. 순간 어쩌면 우리 삶도 그 한 마리의 새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항상 다른 삶을 꿈꾸면서도 욕심 때문에 한 자리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 말이다.
돌아오는 길 내내 여든의 외할아버지에게 해 드릴 수 있는 것이 아직은 없어 조금은 서글펐다. "할아버지, 건강하세요. 손자 결혼식장에는 오셔야죠"라고 혼잣말을 하면서도 외할아버지께 죄송한 마음만 들었다.
'내리사랑'이라 했던가. 손자인 나에게까지 아낌없는 사랑을 주신 외할아버지께 나는 안부전화 한 번 하지 않았다. 이제 전화라도 자주 드려야지 하면서 휴대폰에 멀쩡히 저장되어 있는 외가 전화번호를 다시 확인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