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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룡의 묘비
김창룡의 묘비 ⓒ 이규봉
국립현충원은 ‘국가와 민족을 위해 고귀한 삶을 희생하고 아울러 국가발전에 커다란 발자취를 남긴 분들의 충의와 위훈을 후손들에게 영구히 보존·계승시키기 위해 또는 조국과 민족을 위해 장렬히 산화하신 호국영령 및 순국선열을 모시고 그분들의 생전의 업적을 추모하기 위해’ 설립되었다고 한다.

지극히 당연한 말이다. 그런데, 그런 성스러운 자리에 묻혀서는 안 될 자의 묘가 대전국립현충원에 있다. 그는 바로 김창룡(장군1묘역 69번)이다. 그는 일제시대 때 일본 관동군 헌병대에서 밀정으로 있으면서 항일 독립투사들을 잡아들이는데 큰 공을 세워 헌병오장(하사급)으로 특진되었다.

해방 후 친일죄로 사형선고를 받았으나 탈옥에 성공하여 월남하였다. 그 후 육사 3기생으로 장교가 되어 육군특무부대를 창설하고 동해안반란사건, 뉴델리밀담설 등 각종 사건을 조작하여 이승만의 정적을 제거하므로 이승만 독재정권의 초석을 다졌을 뿐 아니라 양민학살에 앞장섰으며, 군부 내 각종 비리 의혹사건에도 연루되었다.

그뿐 아니라 민족지도자이신 백범 김구 선생님의 암살 배후자로 지목되는 등 갖은 반민족 행위를 저질렀으며 결국 1956년 부하에게 암살당하였다. 그가 죽은 지 42년 후인 1998년, 정권의 교체기에 그의 묘가 슬그머니 대전국립묘지의 장군묘역으로 이장되었다.

백범 모친 곽낙원 여사 묘비
백범 모친 곽낙원 여사 묘비 ⓒ 이규봉
바로 옆 애국지사 묘역에는 백범 김구 선생님의 모친 곽낙원 여사(애국지사2묘역 771번)와 아들 김인 선생(애국지사2묘역 772번)의 묘가 있다. 어떻게 애국지사와 그들을 핍박한 자의 묘가 함께 있을 수 있는가?

이것은 국립현충원에 대한 모독이며 아울러 전 국민에 대한 모독이 아닐 수 없다. 이것은 우리 국민을 욕보이고 역사를 욕보일 뿐만 아니라, 이곳에 고이 잠들어 계시는 애국지사들과 순국선열을 능멸하는 것이다.

또한 이는 자라나는 세대에게 올바른 역사 교육을 할 수 없게 만든다. 우리 국민은 전국의 국립묘지에서 감히 애국지사와 같이 누워 편한 잠을 자고 있는 모든 민족반역자들을 이 신성한 곳에서 추방해야 한다. 그리하여 반민족행위자들은 죽어서도 절대 대접받지 못한다는 추상같은 원칙을 세워야 할 것이다.

참으로 비통한 마음 금할 길이 없다. 당장 파내라. 그의 묘는 이곳에 있어서는 안 된다.

덧붙이는 글 | 이규봉 기자는 민족문제연구소 대전지부장입니다. 

이 글은 3월 5일자 <중도일보> 독자투고란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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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을 통해 사회를 분석한 <오지랖 넓은 수학의 여행>, 역사가 담긴 자전거기행문 <미안해요! 베트남>, <체게바를 따라 무작정 쿠바횡단>, <장준하 구국장정6천리 따라 자전거기행> 출간. 전 대전환경운동연합 의장, 전 민족문제연구소 운영위원장, 현 배재대 명예교수, 피리와 클라리넷 연주자로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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