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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민복의 <말랑말랑한 힘>
함민복의 <말랑말랑한 힘> ⓒ 문학세계사
'우리에게 바다는 무엇일까' 자문해 본다. 쉼 없이 파도가 출렁이고 있는 그곳은 어쩌면 인간에게 동경의 대상임과 동시에 정복의 대상이다. 인간의 고뇌를 대신 안고 살아가는 듯 출렁이는 그 움직임은 필자와 같은 뭍 태생의 사람에겐 여전히 낯설고 어지러운 풍경이다.

그 바다의 가장자리 뻘밭에 한 시인이 서 있다. 최근 네 번째 시집 <말랑말랑한 힘>을 출간한 함민복 시인이다. 그는 왜 '바다'도, '뭍'도 아닌 '뻘밭'에 서 있는 것일까? 무엇이 그를 '뻘밭'에 서 있게 했던 것일까?

그의 몸이 처음 세상과 마주한 곳이 내륙의 한복판이니 그에게 어쩌면 '바다'는 원초적으로 낯선 풍경인지도 모른다. 뭍사람이 그 낯선 '바다'를 노래한다는 것은 '바다'를 정복한다는 것처럼 여겨졌던 것일까, 이 뭍 태생의 시인은 섣불리 다가서지 않는다. 그래서 바다를 노래하는 그의 작업은 관망으로부터 시작된다.

물울타리를 둘렀다

울타리가 가장 낮다

울타리가 모두 길이다

- <섬> 전문


시인이 이 짧은 석 줄의 시를 쓰고 있었을 풍경을 상상해 본다. 화려하지 않은 '섬'이 먼저 존재했을 것이고 그곳에 시인이 다가섰을 것이다. 그는 섬을 둘러보고 바다를 둘러본다. 바다가 아니면 '섬'이란 이름의 또 다른 땅이 존재한다.

'길이 길을 넘어가는 육교 바닥도 / 척척 접히는 계단 길 에스컬리이트도 / …' - <감촉여행> 중

모두가 딱딱한 그 뭍생활에 못 이겨 섬으로 온 시인에게 '섬'을 이루고 있는 '딱딱한' 흙에는 관심이 갈 리 없다. 자연스레 망망대해를 바라본다. 그를, 섬을 둘러싼 울타리가 있으니 '물울타리'이고 그것은 그가 체험한 울타리 중 가장 낮은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바다는 그 뭍사람을 배척하지 않는다. 그 높이가 낮으니 그에게는 그 울타리를 관통하는 길이 하나 보인다. 이제 그는 섬에서 삶을 꾸릴 수 있을 것 같다. 바다에게 갈 수 있을 것 같다.

청둥오리 알 품었다 하기에
규호 씨네 축사로 구경갔드랬습니다
- '청둥오리' 중에서

서럽다고
혼자
핀 복사꽃

이마로 지붕을 짚고
손으로 지붕처럼
기운 세월을 짚고
- '폐가' 중에서



낮은 울타리에게서 배운 겸손함 때문만은 아닐 것이고 환경이 바뀌었으니 그에게 모든 것은 낯설기만 하다. 실제로 아무런 연고도 없는 강화도 동막리의 한 '폐가'에 새 터전을 마련한 그에게 섬생활은 얼마나 신기하기만 한 것이었을까. '청둥오리'에서 보이듯 그 섬사람들에게는 흔해빠진 풍경일 법한데 그에게는 신기한 구경거리이다.

또 '폐가'의 경우는 어떠한가. 바닷가 한 폐가에 머무르고 있는 그, 뭍생활에서 느낀 온갖 서러움은 어미의 품에 안긴 아이가 토해내는 울음처럼 서럽기만 하다. 그 서러움에 시인은 홀로 바다로 밀려 왔던 것이다. 누구의 이마라도 짚어주고 싶지만 혼자 그곳에 온 그는 차라리 지붕을 짚고 기운 세월을 짚는다.

바다로 온 것이 아니 그곳으로 밀려온 것이 그의 운명이었든지 우연이었든지 바다는 그의 서러움을 치유해준다. 바다가 그의 마음을 치유하고 바다의 사람들이 그를 치유해준다. 또 그 바다의 '말랑말랑한 힘'에 의해 시인은 감화하여 온전한 바닷사람이 되는 듯하다.

말랑말랑한 흙이 말랑말랑 발을 잡아준다.
말랑말랑한 흙이 말랑말랑 가는 길을 잡아준다.

말랑말랑한 힘
말랑말랑한 힘
- '뻘' 전문

거대한 반죽 뻘은 큰 말씀이다
쉽게 만들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물컹물컹한 말씀이다
- '딱딱한 발기만 하는 문명에게' 중에서


시인은 뻘밭에 서서 바다에서만 느낄 수 있는 흙의 말랑말랑함에 매료된다. 그 말랑말랑한 흙이 그의 발을 잡아주고 가는 길을 접어주니 이제 흙은 그에게 선생이다. 그의 시 속에서는 흙 선생도 있고 <구름선생>도 있다. 자연이 곧 그의 스승이 된다.

그 바다의 뻘은 '큰 말씀'을 건넨다. 마치 불교에서 큰 스님의 법어처럼 경건하게 뻘은 '쉽게 만들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물컹물컹한 말씀'을 전해준다. '딱딱한 발기만 하는 문명에게'라는 그 시의 제목에서 알 수 있듯 그 말씀은 자연이 문명에게 하는 말씀이고, 자연이 문명에 찌든 시인에게 하는 말이다.

그러나 아직 시인은 온전한 바닷사람이 못 되었다. '귀향' '뿌리의 힘'에서는 아직도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이 남아 있다. '천만 결 물살에도 배 그림자 지워지지 않는다'(- '그리움' 전문)는 또 어떤가. 이 고향을 동경하는 마음은 시를 창작하게 하는 힘이 되는 긍정적 작용을 하면서도 그를 아직 진정한 바닷사람으로 거듭나지 못하게 한다. 그러니 그의 노래는 '뻘밭에 선 뭍사람의 노래'인 것이다.

말랑말랑한 힘 - 제3의 시

함민복 지음, 문학세계사(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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