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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8부 능선 쯤에 쌓인 눈.
산 8부 능선 쯤에 쌓인 눈. ⓒ 안병기
나 어렸을 적 우리나라 산들을 가리키는 보통명사는 '민둥산'이었다. 이 벌거숭이산들은 1961년 군사정부가 대대적으로 추진했던 사방공사 결과 거의 자취를 감추었다.

그러나 아직도 이 민둥산이란 이름을 자신의 고유명사로 지니고 있는 산이 있다. 강원도 정선군 남면 무릉2리에 위치한 민둥산이 바로 그 산이다. 억새밭으로 유명한 산이다.

평야지대라곤 거의 없는 강원도 사람들에겐 산이란 처절한 삶의 터전이었다. 산에다 불을 놓아 화전을 일구기도 하고 나무를 팔아 생계를 유지하기도 했다. 민둥산이 지금처럼 광활한 억새밭이 된 이유는 각종 산나물이 잘 자랄 수 있도록 매년 한 번씩 불을 놓았기 때문이었다.

민둥산이란 이름의 유래

정선아라리에는 이런 가사가 나온다.

"한치뒷산에 곤드레 딱주기 임의 맛만 같으면/ 고것만 뜯어먹어도 봄 살어나지."

이 가사에 나오는 한치뒷산은 어디인가. 헷갈리게도 정선 땅에는 한치마을이라 불리는 곳이 두 군데가 있다. 동면 몰운리 한치마을과 남면 유평리에 있는 한치마을.

이 두 동네는 정선아라리에 나오는 한치라는 이름이 자기 동네라고 우긴다. 그도 그럴 것이 두 동네 모두 곤드레, 딱주기 나물이 많이 나는 마을이기 때문이다.

지도를 보면 남면 한치 마을의 뒷산은 민둥산이고 동면 한치 마을의 뒷산은 지억산이다. 두 산은 마치 지붕마루처럼 능선으로 사이좋게 이어져 있다. 그러니까 민둥산의 옛 이름은 한치뒷산인 것이다.

지난 6일 산행의 목적지는 남면에 있는 민둥산과 동면 한치마을 위에 있는 몰운대다. 민둥산은 억새밭이 은빛으로 출렁거리는 가을에 가야 제 맛이지 무슨 겨울에 가느냐고 묻는 사람이 있을는지 모르겠다.

며칠 전 일이었다. 쌓아놓은 음반들을 뒤적거리다 보니 한양대 음대 교수인 이종구가 작곡하고 이정지라는 가수가 부른 '신동엽과 김지하를 노래하는 이정지'라는 음반이 눈에 띄었다. 예전에는 자주 들었지만 까마득히 잊고 있었던 음반이었다.

아무도 더는 오르지 않는 산 저 빈 산
해와 바람이 부딪쳐 우는
저 외로운 벌거숭이 산
이제는 우리가 죽어 없어져도
상여로도 떠나지 못할 아득한 산 빈 산

아무도 더는 찾지도 않는 산 저 빈 산
한 줌 흙을 쥐고 울부짖는
아 고달픈 나의 사람아
지금은 침묵한 저 산에
네가 죽을 저 흙속에
끝없이 죽어 끝없이 죽어
내일은 한 그루 새푸른 솔잎일 줄도 몰라라
저 산 저 빈산에


김지하의 시 '빈산'을 바탕으로 하긴 했지만 노래 가사는 원시(原詩)와는 약간 차이가 있다. 내력을 확인할 길이 없는 이정지라는 가수가 진양 장단으로 부르는 이 노래는 듣는 이의 가슴을 단숨에 황량하게 만들어 버린다.

다소 장황하기는 하지만 월간중앙에 연재된 '김지하 회고록'을 통해 이 노래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기로 하자.

이종구의 '빈산'은 1970, 80년대 전시기의 저항 속에서 태어난 유일한 '클래식'으로 일관되어온 작품이라는 것. 이것은 내가 아니라 김민기의 평가다.
그리고 '빈산'은 아아, 참으로 나의 지친 영혼이, 죽음을 앞에 두고 부르는 영가(靈歌)요, 생사를 넘어선 결심이라는 것. 여러 평론가들의 일치된 견해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불현듯 빈산이 보고 싶어졌다. 나무 한 그루 없이 순백의 눈 속에 덮여 있는 그런 산에 가서 지친 영혼을 위로받고 싶었다. 나의 민둥산행은 그렇게 해서 결정되었다.

3월 6일 (일요일) 오전 11시 30분, 증산역에서 기차를 내렸다. 우선 발구덕 마을까지의 오리(五里) 길을 목표로 삼아 길을 간다. 증산초등학교 정문에 다다르자 건너편에 짧은 콘크리트 다리가 있고 '민둥산 오르는 길'이라 쓰인 팻말이 보인다.

산을 오른다. 강원도에 적설량이 일 미터가 넘는 많은 눈이 내렸다는데 이곳은 생각보다 눈이 덜 쌓였다. 하지만 길은 매우 미끄러웠다. 몇 번이나 눈길에 미끄러지면서 허위허위 산길을 올라간다. 20여분 쯤 올라갔을까. 정상으로 가는 빠르지만 가파른 길과 완만한 산행 사이에서 선택하라는 이정표가 길을 막아선다.

발구덕 마을로 가는 완만한 길을 택했다. 소나무 숲 사이로 난 호젓한 오솔길을 걸어간다. 소나무들이 장난을 건다. 겨우내 제 귓구멍 속에 넣어두었던 바람을 꺼내어 가지 위에 쌓인 눈들을 날려 보내고 있다. 길이 순간적으로 부옇게 흐려진다. 내 두 귀는 소나무들이 꺼내놓은 바람소리를 주워 담느라 나름대로 분주하다.

발구덕 마을의 한 귀퉁이가 보일락 말락 모습을 드러낸다. 마음은 한시바삐 닿고 싶어 하지만 걸음이 제대로 옮겨지지 않는다. 발이 눈 속으로 점점 깊게 빠진다. 눈이 무릎까지 차오른다.

발구덕 마을 첫 번째 집 이옥매 할머니 집
발구덕 마을 첫 번째 집 이옥매 할머니 집 ⓒ 안병기

마을이 고립되니 사람 사이는 더욱 긴밀해진다

간신히 발구덕 마을의 첫 집에 도착했다. 해발 800미터 지점이다. 인기척 소리에 집주인 할머니가 방문을 열고 나오시더니 들어와 커피나 한 잔 마시고 가라 한다. 길이 끊기니 사람과 사람 사이가 오히려 긴밀해지나 보다.

그냥 툇마루에 걸터앉아 할머니가 끓여주신 커피를 마신다. 커피 잔에 서린 김이 차가운 공기 속으로 흩어지는 걸 바라보노라니 마음이 그지없이 평화롭다.

툇마루에 선 이옥매 할머니. 연세에 비해 아직도 고우시다.
툇마루에 선 이옥매 할머니. 연세에 비해 아직도 고우시다. ⓒ 안병기
집주인이신 이옥매 할머니(75세)는 이곳에서 3킬로미터 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능전이 고향이다. 대전과 태백 등 외지에서 살다가 여기 들어와 사신 지 4년 되셨다 한다.

현재 마을엔 딱 두 집이 산다. 할머니 집에서 200여 미터가량 떨어진 곳에 외딴집 한 채가 있는데 할머니 한 분이 아들과 함께 산다고 한다. 겨울이면 이옥매 할머니는 아예 그 집에서 살다시피 하신단다.

바로 지척에 빈집 두어 채가 눈에 띄기에 무슨 집이냐 여쭸더니 여름에 고랭지 배추 재배를 위해 올라오는 사람들이 여름 동안에만 쓰는 집이라고 하신다.

발구덕 마을은 우리나라의 전형적인 카르스트 지형이다. 카르스트란 화학적으로 암석이 용해 침식되어 형성되는 지형(地形)의 총칭이다. 이 지형은 특히 석회암 지역에서 잘 나타난다.

이산화탄소를 포함한 빗물이 석회암 지반의 갈라진 틈 사이로 스며들어 탄산칼슘이 주성분인 석회암을 녹인다. 마을에는 이렇게 해서 생긴 구덩이가 여덟 개가 있는데 이를 두고 마을 사람들은 '팔구뎅이'이라 부르는데 지금은 눈에 덮여 보이지 않는다.

처마 끝에 창처럼 매달린 고드름을 바라본다. 그 날카로운 수정체가 내 마음의 한끝을 찌르고 간다.

"고드름 고드름 수정고드름/ 고드름 따다가 발을 엮어서/ 각시방 영창에 달아놓아요."

이 동요를 즐겨 부르던 시절은 도대체 어디로 사라져버린 걸까.

할머니 집 앞에서 올려다 본 민둥산
할머니 집 앞에서 올려다 본 민둥산 ⓒ 안병기

슬픔을 털어버리듯 자리에서 일어서서 민둥산을 슬쩍 곁눈질해본다. 경주 대릉원 고분같이 둥글게 생긴 산이다. 할머니께 인사를 드리고 길을 떠난다. 이제부터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될 것이다.

성황당 옆으로 난 임도를 따라간다. 발이 푹푹 빠져든다. 빠지는 게 아니라 숫제 눈 속에 잠겨버린다. 지켜보던 할머니께서 두 사람이 앞서 갔으니 얼른 뒤따라 가보라고 하신다.

민둥산 정상은 1117미터이다. 그러니까 수직으로 거리를 따진다면 300여 미터에 지나지 않지만 실제거리로는 2.5킬로미터나 된다. 이 눈길을 지나서 정상까지 가는데 시간이 얼마나 걸릴는지 짐작하기 어려운 일이다.

내가 가는 길은 뒤에 오는 사람들의 이정표

앞서 갔던 사람들이 밟고 갔던 자리만 골라서 발을 딛는다. 서산대사의 오언절구가 떠오른다.

비록 눈이 내린 들판을 가더라도 발걸음을 흐트러뜨리지 말지니, 오늘 내가 가는 길은 바로 뒤에 오는 사람들의 이정표가 될 것이니라.(踏雪野中去 不須胡亂行 今日我行跡 遂作後人程)

임도를 벗어나 오른쪽으로 난 산길로 접어든다. 산허리에 올라서자 증산리가 한눈에 내려다 보인다. 어쩌면 우리가 쓰는 폭설이란 표현은 눈들의 입장에서 보면 부당한 것인지도 모른다. 눈이 내리면 마을들이 저렇게 평화로운데 말이다.

물결 같이 구비치는 눈덮인 하얀 산들
물결 같이 구비치는 눈덮인 하얀 산들 ⓒ 안병기
동쪽으로 눈을 돌리니 산과 산이 물결처럼 파도치고 있다. 그 물결이 내 마음의 여울에 와 굽이친다. 지금 이 순간 눈 맛이 시원한 것인지 마음 한 자락이 시원한 것인지 알 수 없다.

무릎까지 눈에 빠지는데 산길은 점점 가팔라진다. 고갯길이란 말하자면 산의 자존심 같은 것일 게다. 잡목 사이로 좁다랗게 난 길을 돌아서 산마루에 올라서니 모가지 떨어진 억새들이 빼곡히 들어찬 평원이 드러난다. 아마도 8부 능선쯤 되지 않을까 싶다.

참억새는 벼과에 속하는 다년생 식물이다. 이곳에 형성된 참억새군락은 과거 산불에 의해 초지가 조성된 이후 반복적인 산불과 높은 고도(高度)에 의해 이루어진 식생이다. 가을만은 못하지만 빼어난 경관이 아닐 수 없다.

억새의 말 시인의 말

이재무 시인의 '억새꽃'이란 시가 떠오른다.


차창 너머 능선이나 계곡
허옇게, 머리칼 나풀거리며
초겨울 속으로 걸어가는 그대
그대의 메마른 피부
굽은 등 위에 분분한,
마분지 같은 오후의 햇살 눈물 난다
무성했던 여름 그대와 함께 였던
날벌레, 길벌레들 땅, 나무 껍질 속으로
동면 취하러 간 지 오래고
억새꽃, 그대만이 지금 맨가슴으로
폭풍이 물러간 바다 보고 있다
문득 건초같이 물기 없는 문장이
눈시울 젖게 하던 기억 눈을 때린다
생의 무게는 결코 화려한 수사만으로
감당할 수 없는 것
담백했던, 그날 그 책의 감동
저기 저렇듯 하얗게 다시 나붓기고
먼 곳에서 그리운 사람아
우리가 저 수묵 같은 억새꽃의
한 생애로 온전히 저물 수 있다면
지난 날 서로에게 상처였던 무수한 과오인들
어찌 허물일 수밖에만 없겠는가
불어오는 바람에 저를 맡기며 걷는
억새꽃, 나의 내일이여

- 이재무 시 '억새꽃' 전문


억새의 말이건 시인의 말이건 간에 "생의 무게는 결코 화려한 수사만으로 /감당할 수 없는 것"이라는 점은 누구도 부인하지 못한다.

억새들이 바람의 소리를 연주한다. 때로는 느린 중모리 가락으로, 어느 때는 질풍 같은 휘모리로. 음악을 탄주하는 억새들의 몸놀림이 빨라질수록 내 가냘픈 몸이 출렁거린다. 이제 보니 내 생의 무게란 게 실상은 이렇게 가벼운 것이었구나.

정상 아래에 있는 억새 쉼터
정상 아래에 있는 억새 쉼터 ⓒ 안병기
전방에 선사시대 움집 같은 집 두 채가 나타난다. 억새로 지은 집인데 비바람을 피해가라는 쉼터인 모양이다. 한 번 들어가 쉬었다 가고 싶은 마음 애써 도리질하고 부지런히 발길을 옮긴다.

이젠 허벅지 중간까지 눈 속에 빠진다. 코앞에 있는 정상까지의 거리가 멀게만 느껴진다. 앞서간 두 사람이 자리만 골라 밟건만 사정은 나아질 줄 모른다.

정상에 있는 감시초소가 보인다
정상에 있는 감시초소가 보인다 ⓒ 안병기
그래도 산불감시 초소의 형태가 점점 커지기는 걸 보니 앞으로 가긴 가고 있는 모양이다. 드디어 정상에 올라섰다.

억새들이 연주하는 바람의 소리가 포르티시모를 향해 상승한다. 내 몸이 통째로 날아갈 것만 같다. 정선 노두산악회가 세운 표지석과 이정표가 업무분담에 원만하게 합의한 듯 다정하게 서 있다.

화암약수 쪽으로 난  길. 발을 디뎌보니 눈이 배꼽까지 차올랐다.
화암약수 쪽으로 난 길. 발을 디뎌보니 눈이 배꼽까지 차올랐다. ⓒ 안병기
이정표는 삼내약수와 화암약수 방향으로 내려가는 길과 발구덕 마을로 내려가는 길을 표시해주고 있다. 내가 가고자 하는 방향은 화암약수 쪽이다. 가다가 보면 중간 어딘가에서 몰운대로 가는 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앞서간 사람들의 발자국이 발구덕 마을 쪽으로 나 있다.

내가 가고자 하는 화암약수 쪽은 사람이 지나간 흔적도 전혀 보이지 않는데다 눈이 얼마나 깊이 쌓여 있는 것인지 도대체 눈대중조차 되지 않는다. 눈치를 살피기 위해 한 발을 슬쩍 눈 속으로 들이밀어 보았다. 아아, 허리까지 눈 속에 빠진다. 그래도 몰운대까지 기어이 가야겠다는 생각을 예서 포기할 수는 없다.

다시 한 걸음을 내디뎠다. 역시 허리까지 빠진다. 그렇게 200여 미터나 갔을 것이다. 한 순간 갑자기 두려움이 엄습한다. 어쩔 수 없이 왔던 길을 되돌아가서 '발구덕 마을로 하산 해야겠다'고 생각을 바꾼다. 되돌아가는 길은 오르막이라 더 힘들다. 난 왜 이리 매사에 무모한 것일까.

발구덕 마을로 난 하산 길에서 바라본 민둥산
발구덕 마을로 난 하산 길에서 바라본 민둥산 ⓒ 안병기
더 이상 가지 못하고 다시 발구덕 마을로

간신히 정상으로 돌아왔다. 발구덕 쪽으로 내려가는 길의 경사가 만만치 않다. 할 수 없이 아이젠을 묶는다. 조심조심 미끄러지듯 산길을 내려간다. 나무 몇 그루가 드문드문 서 있는 휑한 산길을 지나자 길은 소나무 숲 사이로 접어든다.

마을 외진 곳에 뼈대만 남은 비닐하우스
마을 외진 곳에 뼈대만 남은 비닐하우스 ⓒ 안병기
소나무 사이로 언뜻 바라보이는 뼈대만 남은 앙상한 비닐하우스가 안쓰럽게 느껴진다. 저 비닐하우스는 제 자신이 고립돼 있다는 걸 알지 못할 것이다.

산길을 내려와 마을 고샅길로 접어든다. 이옥매 할머니의 친구 분이 사시는 집 앞을 지날 때 개가 나를 쳐다보더니 사납게 짖어댔다. 감정파악이 쉽지 않은 녀석이다. 반갑다는 것인지, 아니면 집 앞에서 얼씬거리지 말고 그냥 네 갈 길이나 가라는 것인지 알 수 없다.

이옥매 할머니 집 앞을 지나는데 할머니가 나와 서 계신다. 할머니는 앞선 두 사람이 지나간 지 얼마 되지 않았다며 따라잡으라고 하신다. "9월에 억새꽃 필 때 한번 와요." "네" 하고 크게 대답하고 걸음을 서두른다.

소나무 사이로 비껴드는 오후의 햇살이 따사롭다. 방금 전에 내려온 산정에 비하면 안방 아랫목 같은 길을 지나간다. 산길을 완전히 내려서자 증산초등학교 운동장에 두 사람이 서 있다. 내 앞서간 사람들이 이 분들인 모양이다.

"방금 산에서 내려오셨어요?"
"예"
"감사합니다. 두 분이 길을 닦아주시는 바람에 산행이 훨씬 수월했네요."

충주에서 왔다는 두 사람은 가을에도 민둥산을 왔다갔지만 나무 없이 하얗게 눈만 쌓인 산이 보고 싶어 또 왔다고 했다. 나와 어딘지 모르게 상통하는 부분이 있다.

그들이 먼저 차를 타고 떠났다. 그제야 신발을 내려다보니 온통 젖었다. 차를 타고 몰운대로 갈 것인가, 아니면 여기서 곧장 집으로 갈 것인가. 시간이 벌써 오후 4시를 가리키고 있다.

오후 4시란 언제 어디서나 어중간한 시간이다. 내 뒤를 따라오는 그림자만 유독 길게 느껴진다.

덧붙이는 글 | 민둥산 가는 길_①중앙고속도로 서제천IC~5번국도~영월 방면 38번 국도~석항리~59번 국도~별어곡~증산초교 
②청량리에서 강릉 가는 기차를 타고 가다 증산역에서 하차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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