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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나라에서 열린 이종격투기 경기 현장.
ⓒ 최문훈
몇 해 전 TV 채널을 우연히 돌리다 충격적인 장면을 목격했다.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권투 장갑을 끼고 시합을 하는데 권투가 아니었다. 주먹으로 싸우다가 갑자기 발차기가 올라가더니 무릎으로 상대방의 얼굴을 강타하는 장면들이 여과 없이 방송되고 있었다.

이마가 찢어지고 피가 튀어도 관중들은 열광했다. 5만이 넘는 관중들은 선수들의 동작 하나하나에 탄성을 내지르고 있었다. 도대체 이것이 무엇이란 말인가? 저기는 어디지? 이런 궁금증에 인터넷을 뒤져보니 벌써 많은 팬들이 이 스포츠에 매료되어 있었다. 벌써 수많은 팬클럽 사이트가 운영 중에 있었다.

이 경기는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이종격투기 종목 중 하나인 K-1이었다. K-1은 킥복싱(Kickboxing), 가라테(Karate), 쿵후(Kung-fu), 권법(Kenpo) 등 입식 타격기에 공통으로 들어가는 알파벳 K를 따서 만든 스포츠 경기다. 일본에서 93년부터 시작된 이 경기가 공중파 방송을 타고 와 한반도를 강타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뒤부터는 K-1 마니아가 될 수밖에 없었다. 팬 카페에 가입하기도 하고 경기를 중계하는 방송을 빠짐없이 챙겨보았다. 경기를 보면서 묘한 쾌감을 느껴가고 있었다. 경기는 선수들이 하고 있지만 나도 모르게 그들의 동작을 머릿속으로 따라하고 있었다.

특히 내가 좋아하는 선수인 "미르코 크로캅"이 시합을 하는 날이면 몇 번이고 동작을 분석했다. 그의 왼발 하이킥은 나풀대며 날아가는 나비처럼 가벼웠지만 그 뒤에는 상대방을 제압하는 독을 숨기고 있었다.

체조선수처럼 부드럽지만 그 속에 담긴 강인함은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것이다. 그의 왼발 하이킥이 터지는 날은 관중석은 난리가 난다. 그 자체가 너무나 아름답기 때문이다.

그 모습을 본 뒤 그에게 푹 빠져들고 말았다. 나의 심리는 보는 데서만 끝나지 않았다. 직접 K-1을 하고 싶은 충동이 너무나 강하게 들었다. 아름다운 발차기를 하고 싶은 충동이 너무나 강하게 밀려왔다. K-1을 가르쳐 주는 체육관이라도 있다면 언제라도 달려갈 판이다.

어느날 아내에게 K-1 도장에 등록하면 안되겠냐고 질문했더니 벌쩍 뛰며 반대를 한다. 멀쩡한 신랑이 저런 잔인한 경기에 빠져 있다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는 모양이다.

하지만 아내가 모르는 사실이 있었다. 나는 이미 93년도에 K-1과 비슷한 무도를 경험해 본 적 있다. 당시에는 이름도 생소한 "공권도" 라는 무술이다. 당시 너무나 우연하게 이 무술을 접하게 되었다.

따분한 대학생활을 보내고 있는데 친한 친구가 이상한 운동을 하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 친구는 고등학교 때 경쟁적으로 웨이트트레이닝을 같이 했던 친구였다.

" 상민아 너 요즘 운동한다며? 무슨 운동이냐?"
" 어 '공권도'라는 거야."
" 공권도? 그게 뭔데?"
" 쉽게 설명은 안되는데 유도, 태권도, 가라데 이런 것을 섞어 놓은 거야."

충격적이었다. 내가 평소 매력적으로 생각하는 운동을 다 모아 놓은 것이었다. 나는 초중고 시절 유도, 태권도 등을 이미 접한 적이 있었다.

태권도는 초등학교 시절에 배운 적이 있었고 그 뒤로도 계속된 발 차기 연습덕분으로 웬만한 자세는 갖추고 있었다. 중학교 때는 유도가 정식 교과과목으로 지정되어 있어 유도의 기본틀을 배울 수 있었다. 또한 다리를 160도쯤 벌려 가슴을 바닥에 닿을 수 있는 유연함도 있었다(현재까지 가능하다).

즉시 친구와 같이 공권도 도장에 등록했다. 도장에 들어서니 매캐한 땀 냄새와 강한 기합소리가 들려왔다. 그 냄새와 소리가 너무나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등록하자 마자 배운 것이 무릎으로 가격하는 니킥(knee kick)이었다. 무술도장에서 니킥을 배운다는 사실이 너무나 충격적이었다. 그 후 로우킥, 니킥, 복싱기술 등 실전형 기술들을 배우기 시작했다.

난 이 무술의 매력에 푹 빠지기 시작했다. 정말 맹렬하게 연습했던 것 같다. 거의 매일 도장 동료들과 시합을 벌였고 별로 패배하지 않았다. 발차기로 상대방의 얼굴을 가격했을 때의 쾌감은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것이었다. 문대성 선수처럼 멋진 발차기는 아니지만 나의 다리도 꽤나 올라갔던 것 같다.

상대방과 밀착되었을 때에는 숨겨진 유도실력으로 제압할 수 있었다. 무술이 온몸으로 체득되기 시작한 것이다.

어느 날은 시합을 하다 명치를 가격 당해 쓰러진 적도 있었다. 하지만 그 조차도 즐거웠다. 가격 당한 원인을 분석하며 실력을 키워나갔다.

어느날 더욱 이 무술에 빠져들게 하는 일을 발생했다. 그 날은 평소 배운 실력을 겨뤄보는 도장 시합일이었다. 그런데 범상치 않은 모습의 한 사람이 태권도 도복을 입고 도장을 찾아왔다. 연습 삼아 하는 발차기가 장난이 아니었다.

발을 한번 휘저을 때마다 붕붕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때 사범이 우리에게 그 분을 소개해주었다.

" 여러분들 이분은 군대에서 휴가 나오신 분이다. 태권도가 4단이고 대회에서 입상한 경력도 있는 분이다. 오늘 같이 운동하러 오셨으니 잘 지내라."

그 분은 우리 도장의 기합소리를 듣고 들어왔다고 했다. 소개를 마치고 한 명씩 시합을 벌여 나갔다. 그런데 내 차례는 돌아오지 않았다. 불안한 예감이 밀려왔다. 모두 시합을 마치고 새로 온 그 분과 나만 남아 있었다.

그때였다. 사범이 나를 불렀다.
" 진한이는 저 분과 시합을 해보도록 해라."
" 제가요? 초보인 제가 어떻게 해요? "
" 괜찮아, 해봐."

난 재능은 있었지만 공권도는 초보에 불과했다. 시작한 지 몇 달도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시합은 시작되었다. 그는 맹렬히 나를 쏘아보고 있었다. 난 주눅이 들어 얼굴을 제대로 쳐다볼 수도 없었다.

상대방의 자신감 있는 기합소리가 들려왔다. 나를 매섭게 째려보고 있었다. 긴장된 순간이 지속되고 "부웅" 하는 소리와 함께 발차기가 날아오기 시작했다. 정말 주먹보다 더 빠른 속도인 것 같았다. 한방 맞으면 그대로 KO 될 판이었다.

표범이 먹이를 낚아채듯 발차기가 계속해서 날아왔다. 무서웠다. 태권도 특유의 연속 발차기는 과히 위력적이었다.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계속 수비에만 치중하며 틈을 보고 있었다. 초반에는 계속해서 밀렸다.

하지만 공권도에는 태권도가 할 수 없는 기술들을 가지고 있었다. 발차기가 날아오는 틈을 이용해 상대방을 붙잡았다. 그리고는 상대방을 유도기술을 넘어뜨리며 가슴에다 니킥을 넣을 수 있었다.

"욱"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기술이 제대로 들어 간 것이다. 한번 기술을 집어넣으니 자신감이 생기기 시작했다. 태권도는 근접거리에서 아무런 기술을 쓸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았다. 다시 일어서서 시합을 재개했다. 이번에는 본격적으로 근거리 공격을 벌였다. 상대방이 발차기를 할 수 없을 정도로 붙었다.

무릎으로 상대방의 허벅지를 공격했다. 그리고는 로우킥을 날리기 시작했다. 체중과 힘 면에서는 훨씬 더 우위에 있었기 때문에 근거리 공격에는 훨씬 더 유리했다. 상대방은 나의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긴장된 상태로 인해 힘 조절도 되지 않았다. 친선 경기였지만 가지고 있는 모든 힘을 동원해 상대방을 공격했다. 상대방을 넘길 때에는 체중을 최대한 이용해 타격을 주었다. 유도기술이 들어갈 때에 태권도는 그야말로 무용지물에 불과했다.

상대방은 변변한 발 차기 한번 해보지 못하고 시합이 끝나고 말았다. 나의 무릎기술에 이리저리 타격도 많이 받은 것 같았다. 친선 시합이라 경기결과는 나오지 않았지만 나의 승리가 분명했다. 태권도에서 허용되지 않는 기술을 사용할 수 있었기 때문에 이런 시합결과가 나온 것이었다

하지만 공권도를 배운지 몇 개월밖에 되지 않는 초보가 태권도 4단을 이긴 것은 놀라운 일이었다. 사범도 나에게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나 자신의 능력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그 뒤로 군에 입대하기 전까지 운동에 푹 빠져 살았던 것 같다.

▲ 최홍만 선수의 소식을 전하고 있는 K-1공식 홈페이지
ⓒ http://www
그 후 10년이 넘게 그 운동을 잊고 있었다. 여전히 집에서 발차기 연습을 하고 있었지만 다시 그런 운동을 할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하지만 방송에서 "K-1, PRIDE-FC "와 같은 이종격투기를 접한 후 나의 본능이 춤추기 시작했다. 12년 전에 내가 배운 운동이 이종격투기와 비슷한 운동이었다는 것이 너무 신기했다.

그때 저런 시합들이 있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계속해서 들었다. 그러나 추억으로 묻어버리기는 아직 젊다는 생각이 든다.

왜냐하면 여전히 이종격투기의 매력에 빠져있기 때문이다. 특히 작은 선수가 거대한 선수를 KO 로 이길 때 모습은 세상의 어떤 것보다 흥분된다. 그 모습을 보면 나도 모르게 소리지리고 열광한다. 왜 소리 지르고 있는지 스스로 놀랄 때가 한두번이 아니다. 아마도 어릴적 부터 큰 덩치를 지니고 있는 친구에게 느꼈던 열등감을 이종격투기로 통해 풀려 하고 있는지 모른다. 그 감정은 실제로 운동을 하고 싶다는 욕구까지 자극하고 있다.

다시 한번 맹렬하게 땀을 흘리고 싶은 충동이 계속해서 들고 있다. 특히 한국에서도 이종격투기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서 더욱 그런 충동이 강해지기 시작했다. 한국 시합에 출전하는 선수들의 실력이 올라가지 못할 나무 같지는 않아 보였다.

내가 저들과 한판 붙으면 어떨까? 이런 충동이 계속해서 온몸 깊숙이 들고 있다. 아내가 허락해 준다면 도장을 등록해 다시 한번 실력을 닦고 싶은 충동이 계속해서 밀려온다. 요즘도 틈만 나면 링 위에 있는 내 모습을 상상해 본다. 몸이 불어 예전처럼 날렵하지도 않지만 마음만은 예전 그대로이다.

요즘도 이종격투기를 하는 날이면 아내의 싸늘한 눈빛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시합에 집중한다. 그리고 육중한 선수들의 모습 속에 내 모습을 대입시켜 보곤 한다. 이룰 수 없는 꿈인지는 모르지만 링 위에 서 있을 내 모습을 생각하면 다시 어린이가 된 것처럼 신나고 즐겁다.

오늘도 이종격투기 시합을 보며 즐거운 상상에 빠져들고 있다.

"왼발 하이킥의 대가 전진한 선수를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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