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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비벼서 잡수실 거지요.”
아내가 열무김치를 대접에 담습니다. 밥을 한 그릇 대접에 붓습니다. 참기름을 듬뿍 넣고는 비비기 시작합니다. 아내는 아이들을 부르지 않습니다. 제게 무슨 말인가를 할 모양입니다. 아마도 큰아이에 관련된 얘기일 겁니다.
“새하는 3학년이에요. 그런데 산하보다도 수학을 못해요. 자기 못하는 건 생각 안하고 저렇게 화만 내고 있어요.”
“너무 신경 쓰지마. 그만할 때는 다 그런 거야. 대신 새하는 글을 잘 쓰잖아. 창원시에서 주최하는 글짓기대회에서도 상을 타고 그랬잖아.”
말은 그렇게 했지만 제 마음도 편치 않았습니다. 큰아이 새하는 수학만 보면 겁부터 냈습니다. 아내는 수학을 가르치면서 몇 번씩이나 가슴을 치곤 했습니다. 때로는 큰소리를 내기도 했습니다. 그럴수록 큰아이는 더 주눅이 들었습니다.
“마음 편하게 생각하자고. 수학 못하면 어때. 새하가 수학만 빼고는 다 잘하잖아. 책도 얼마나 많이 읽는데.”
“하긴 그래요. 우리 새하만큼 책을 많이 읽는 아이도 없을 거예요. 마음도 착하잖아요. 당신, 빨리 식사해야지요.”
저는 열무비빔밥을 먹기 시작합니다. 참기름을 많이 넣어서 그런지 여간 고소한 게 아닙니다. 저는 순식간에 한 그릇을 비웠습니다. 아내가 후식으로 방울토마토를 내옵니다. 저는 방울토마토를 입에 넣습니다. 달착지근합니다.
“봄만 되면 토마토 때문에 의사들이 울상을 짓는다지.”
“왜요?”
“봄에는 토마토가 많이 나잖아. 사람 몸에 토마토가 그렇게 좋다는 거야. 아픈 사람이 없는데 병원이 잘 되겠어. 그래서 의사가 울상을 짓는다 그거지.”
아내가 피식 웃습니다. 저는 거실 소파로 갑니다. 소파에 앉고는 몸을 한껏 뒤로 젖힙니다. 텔레비전을 틉니다. 특별히 볼만한 게 없습니다. 아내는 아이들한테 갑니다. 큰아이를 도와줄 모양입니다. 얼마나 지났을까요. 갑자기 큰아이가 비명을 지릅니다.
“엄마, 제가 인형에 옷을 입혔어요. 제가 수학문제를 맞혔단 말이에요.”
그런데 아이의 비명소리가 자꾸만 멀어지는 것이었습니다. 텔레비전 소리도 아득하게 들리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설핏 잠에 빠져들고 있습니다. 더없이 아늑한 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