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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사목이 되었어도 위엄있게 몰운대를  지키고 있는  늙은 소나무
고사목이 되었어도 위엄있게 몰운대를 지키고 있는 늙은 소나무 ⓒ 안병기

지난 6일 강원도 정선군의 몰운대를 가려고 증산역 앞에서 버스를 탔다. 길 가운데를 가로지르는 철로가 있는 남면 소재지를 지난다. 몇 번 와봐서 낯익은 곳이라 그런지 오늘따라 그 쓸쓸한 평행선이 정답게 다가온다.

버스는 계곡을 둘러싼 봉우리들이 마치 병풍처럼 펼쳐져 있는 고병계곡을 지나고 쇄재터널의 어둠을 가르며 달려간다. 문인수 시인이 "정선읍 들어설 때는 뒤돌아보지 마라./저 쇄재가 자물통같이 철커덕, 저문다."(詩 「정선一泊」)라고 했던 그 쇄재다.

덕우 삼거리. 정선읍으로 나가는 길과 동면으로 들어가는 길, 증산역으로 가는 길이 만나는  곳이다.
덕우 삼거리. 정선읍으로 나가는 길과 동면으로 들어가는 길, 증산역으로 가는 길이 만나는 곳이다. ⓒ 안병기

59번 도로와 424번 도로가 갈라서기 위해 만나는 곳 덕우 삼거리. 여기서 다시 동면으로 가는 버스를 기다려야 한다. 햇살이 점점 제가 펴놓은 너울들을 거둬들이기 시작하자 여기저기 땅거미가 내려앉는다. 버스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 '정말 싸리골 올동박이 다 떨어져'(정선아리랑의 한 구절)야 올 모양인가 보다.

소금강 풍경. 마을 쪽에서 소금강으로 들어가면서 맞게 되는 첫 번째 풍경이다.
소금강 풍경. 마을 쪽에서 소금강으로 들어가면서 맞게 되는 첫 번째 풍경이다. ⓒ 안병기

한참 후에야 도착한 버스는 화암리 화암약수 터 옆을 지나 소금강으로 접어든다. 제가 품은 설암이랑 비선대랑 온갖 절경은 들여다보지 않은 채 마냥 앞으로만 달려가는 버스를 소금강이 마치 흘겨보는 듯하다.

내를 건너 한치마을과 마주보고 있는 샛둔지 마을.  옹기종기 모인 집들이 다정해 보인다.
내를 건너 한치마을과 마주보고 있는 샛둔지 마을. 옹기종기 모인 집들이 다정해 보인다. ⓒ 안병기

소금강을 벗어나자마자 한치마을이 나온다. 몇 년 전 여름이었던가. 내가 몰운대에 두 번째 왔을 때 일박(一泊)한 적이 있는 곳이다. 행정구역상 몰운1리에 해당하는 이 마을은 조선시대엔 균역법에 의한 세금인 균세(均稅)를 징수하여 보관하던 동창(東倉)이 있었던 마을이다.

한치 계곡 입구. 이 계곡의 끝에 몰운대가 있고 몰운대 아래 건너편에 아주 넓은 너럭바위가 있다.
한치 계곡 입구. 이 계곡의 끝에 몰운대가 있고 몰운대 아래 건너편에 아주 넓은 너럭바위가 있다. ⓒ 안병기

마을을 벗어나기 직전 오른쪽으로 난 길을 따라가면 한치 계곡이 나온다. 여름에도 물이 얼마나 시원한지 발을 담그면 시릴 정도다. 물이 깨끗해서인지 여름밤엔 이 시냇가에서 민물장어도 잡는다고 한다.

가산갱. 지금은 마을 사람들이 자질구레한 살림살이 따위를 넣어두는 곳이다.
가산갱. 지금은 마을 사람들이 자질구레한 살림살이 따위를 넣어두는 곳이다. ⓒ 안병기

왼쪽을 바라보면 '가산갱'이라 쓴 갱도가 있다. 1920년대부터 1990년대 초까지 금을 채취했던 폐광이다. 길을 다니다 보면 일제가 수탈한 흔적은 이렇게 도처에 널려 있건만 '일본 식민 지배는 축복'이라는 망언을 늘어놓는 사람이 있다는 건 불가사의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버스는 '고개고개로 날 넘겨 달라'는 부탁도 없이 그저 숨 가쁘게 고개를 넘어간다. 원래는 창재라 불렀지만 등짐을 지고서 이 고개를 넘어가면 등허리에 땀이 난다 하여 흔히 한치고개라고 부르는 고개다.

고갯마루에서 버스를 내렸다. 오른쪽으로 난 길을 따라가면 맨 끝에 300년이나 면벽수도하다가 선 채로 입적한 노송(老松)이 있는 몰운대가 나온다. 누군가가 지나갔던 흔적이 있긴 하지만 발이 눈 속에 푹 빠지긴 마찬가지다.

몰운대가 품고 있는 시 몇 편

몰운대에서 바라보이는 산과  밭. 저 공터가 아름답게 보이는 것은 생명을 품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몰운대에서 바라보이는 산과 밭. 저 공터가 아름답게 보이는 것은 생명을 품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 안병기

몰운대는 조양강으로 흘러드는 어천 가에 우뚝 솟은 바위산이다. 몰운대에 오르니 석양은 이미 제 붉은 빛깔을 거두어버렸다. 내기 맨 처음 몰운대에 왔을 때는 황동규 시인의 '몰운대행'을 읽고 나서였다.

몰운대는 꽃가루 하나가 강물 위에 떨어지는 소리가 엿보이는 그런 고요한 절벽이었습니다. 그 끝에서 저녁이 깊어가는 것도 잊고 앉아 있었습니다.
새가 하나 날다가 고개 돌려 수상타는 듯이 나를 쳐다보았습니다. 모기들이 이따금씩 쿡쿡 침을 놓았습니다.
(날것이니 침을 놓지!)
온몸이 젖어 앉아 있었습니다.
도무지 혼자 있는 것 같지 않았습니다.

황동규 시 '몰운대행' 일부

그러나 오늘은 문인수 시인의 '몰운대'를 떠올린다. 황동규 시인의 감수성보다는 문인수 시인의 감수성이 내게 더 가깝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나무들의 흰 피가 폭포처럼 걸린다.
아름드리 이 소나무도 결국 현기증으로 죽었다.

어디로든 가고 싶다, 가고 싶지 않다.
그런 물이 바람이 또 새들이
해질 때까지 저 아래 감돌며 있다.

문인수 시 '몰운대' 전문

나 역시 시인처럼 아무 데도 가고 싶지 않았다. 아니 아무 데나 가고 싶었는지 모른다. 어느 누구의 몫이든 삶의 무게는 무겁다. 그러나 정작 그 무게를 채우고 있는 것은 시시껄렁한 일상이다. 역설적으로 삶의 무게가 무거워지는 만큼 존재는, 존재가 껴안고 있는 영혼은 깊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얄팍해져 간다는 점이다. 이 역설이 서러울 때 사람들은 여행을 떠나고 싶어 하는지도 모른다.

몇 년 전 몰운대에 처음 왔다 가고 나서 난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던 친구에게 편지를 썼다. 그러나 나는 친구에게 끝내 편지를 부치지 않았다. 나누어 가질 수 있는 느낌과 나누어 가질 수 없는 느낌이 있다는 사실이 나를 망설이게 했던 것이다.

몰운대 널따란 반석 위에 주저앉아 오래 묵혀 둔 편지를 꺼내 읽는다.

저녁 몰운대에서 부치지 않은 편지를 읽다

언제나 그리운 친구 C에게

언제나 내 소식을 궁금해 하고 있을 네게 이제야 소식 전한다.

네가 염려했던 대로 난 아직도 현실에 안주하며 살고 있단다. '그 밥에 그 나물' 같은 삶을 말이다. 그러던 내가 며칠 전엔 큰 맘 먹고 강원도 여행을 다녀왔단다. 황동규 시인의 시집 <몰운대행>속에 나오는 정선 몰운대로 말이다.

몰운대가 어디 있어요? 안대요? 모른대요? 묻고 물어 가까스로 찾아갔지. 그렇게 몰운대(沒雲臺)_구름이 스러지는 곳_를 찾아 강릉에서 42번 국도를 타고 정선 아라리에 나오는, 장에 간 서방님을 기다리는 아낙의 애간장이 서려 있는 해발 780 미터가 넘는 백봉령 고개를 넘어어서 말야.

우리 댁의 서방님은 잘났던지 못났던지
얽어 매고 찍어 매고 장치다리 곰배팔이
노가지나무 지게에다 엽전 석냥 걸머지고
강릉 삼척으로 소금 사러 가셨는데
백봉령 구비구비 부디 잘 다녀오세요

백봉령, 그 아찔한 고개를 넘고나면 화암약수가 나오고 그 곁을 꺾어지면 바로 소금강이 이어지더라구. 그리고 그 끝에, 바로 거기에 몰운대가 있지.

아아, 어찌나 황홀하던지! 한 세상 거기서 저물고 싶었단다. 어지러운 세상사 비웃으며... 그냥 앉아 있고 싶었지. 일몰! 그 장엄한 생의 에필로그를 생각하면서!

쉬 떠날 줄 모르는 마음을 달래어 또 한 고개를 넘어갔지. 그랬더니 거기 거짓말처럼 무릉 마을, 도원 마을이 있더구나. 그 옛날 중국의 시인 도잠이 말한 이상향인 무릉도원. 난 그 무릉도원이 상상속의 마을이 아니라 실재하는 마을이라는 걸 알고 얼마나 감격했는지 모른단다.

복숭아 꽃 흘러가는 곳, 거기 있는 딴 세상(挑花流水杳然去 別有天地非人間)! 아무리 탄광에서 흘러나오는 새까만 재가 휩쓸어 갔어도 아직 아름다움을 잃지 않은 무릉 과 도원 마을은 여전히 아름다웠지.

정선의 구명은 무릉도원이 아니냐
무릉도원은 어데 가고서 산만 충충하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 고개로 나를 넘겨 주게

그런데 그 순간 문득 곽재구 시인의 시 「사평역에서」를 좋아하는 네가 떠오르더구나. 내가 황동규 시인의 시에 반해서 몰운대를 찾아갔던 것처럼 너 역시 그 시의 무대인 사평역을 찾아가고 싶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지.

만약 네가 원한다면 사평역이 어딘지 가르쳐 줄게. 어떤 사람은 남평역이라 하고, 시를 노래로 만드는 유종화 시인 같은 이는 남광주역이라 주장하는 그 곳….

실체를 알면 그 다음은 환멸이라는 걸 우리들의 경험칙은 말해주고 있지만, 모든 사물은 가까이 가면 밀어내는 법이라는 걸 설마 네가 모르진 않겠지만, 그래도 천생의 궁금증을 참을 수 없어 네가 굳이 사평역을 찾아 가겠다면 그 지름길을 알려주마.

그러나 사평역에 가기 전에 네가 반드시 들러야 할 곳이 있단다. 너, 혹시 국립 국악원 가봤니? 우리가 고등학교 시절에 배웠던 우리나라 최초의 시가라는 「공무도하가」생각나지? 여옥이 남편을 잃은 백수광부의 아내의 슬픔을 노래로 지어 공후인을 연주하며 부른 것이라는 노래 말이야.

국립국악원 박물관에 가면 공후인이라는 악기의 모형을 볼 수 있단다. 몸체만 남고 주법은 잃어버린 측은한 악기지. 네게 이 편지를 쓰는 순간 어쩌면 너나 나는 몸체만 남고 마음을 연주할 줄 모르는 공후인과 다를 게 뭐 있나하는 자조적인 감정이 섞이는 걸 어쩔 수 없구나.

난 네가 사평역에 기어이 가고 싶다면 먼저 네 영혼을 연주하는 법을 되찾아야 할 거라는 말을 하고 싶었다. 동천년로항장곡(桐千年老恒藏曲), 오동나무는 천년을 늙어도 노래를 간직한다는데…. 어렸을 때 간직하고 싶어 했던 노래는, 그 꿈들은 다 어디다 버려두고 우리는 한낱 맹목에 의지해서 삶을 살아가고 있는 걸까.

영혼을 연주하는 법을 되찾은 다음 나를 찾아오면, 그때는 내가 길을 일러주지. 네가 찾고 싶은 곳이 무릉도원이면 무릉도원을 알려주고, 사평역을 알려달라면 사평역을 알려주지.

너나 나나 이미 환멸에 익숙한 나이니까 더 이상 망설일 이유는 없을 거야. 하지만, 문득 이런 생각이 들곤 하지. 우리가 살아가는 곳이 바로 사평역이 아닌가, 무릉도원이 아닌가 하고 말이다.

삶에 지친 사람들이 서로 등대어 기대고 싶은 곳. 상처의 깊이를 알고 서로 위안이 되고 싶은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 거기 부대끼며 살다보면 어느 아침 문득, 너는 사평역이나 무릉도원에 있는 네 자신을 발견하게 될 거라는 말을 네게 해주고 싶었어.

나는 네가 사평역으로 가는 길을 찾을 수 있기를 바라. 그리고 함께 행복해지길 바라. 그래도 끝내 찾지 못한다면 해 저물녘, 몰운대로 가는 거야. 거기 가거든 천 길 낭떠러지 위에 주저앉아서 '단절' 이라는 말의 실체를 껴안아보는 거지. 소외라는 말의 참뜻을 온몸으로 받아 들여 보는 거.

오랜만에 네게 편지를 쓰다 보니 횡설수설이 강을 이루었구나. 그럼, 잘 있어라.


우리가 바라는 세상은 이렇게 온다네

어느 새 날이 저물었다. 몰운대가 자신의 다리 아래 있는 마을의 불빛들을 불러와서 자신만의 저녁을 완성시키고 있었다. 이제 떠날 때가 되었다.

간다네, 이제 우리는 함께 간다네
구비구비 힘겨운 삶의 고갯길을 넘어간다네
누가 알까, 우리의 사랑
우리의 끝없는 그리움
날마다 새롭게 시작되는 우리의 사랑
그대 착한 눈 속엔 고운 미리내 흐르고
그대 어진 눈 속엔 푸른 소나무 한 그루
우리의 가난한 마음 깊은 곳엔 예쁜 해 하나 있어
늘 서로를 따뜻이 비춰준다네
간다네, 이제 우리는 함께 간다네
구비구비 아득한 삶의 고갯길을 넘어간다네
꿋꿋이 꿋꿋이 살아가려네
우리가 바라는 세상을 위해
우리가 바라는 세상은
우리의 조그만 사랑에서부터 시작된다네


버스가 되돌아 나오기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음유시인 백창우의 노래 '간다네'를 흥얼거렸다.

몰운대 가는 길


①자자용_영동고속도로-하진부 교차로 _33번 지방도 _32.5km 남하 _ 나전교 3거리 _
    나전교를 건너 400m지점 _ 42번 국도 8.9km 남하 _정선읍 4거리 _19km _ 동면 화암리_동면사무소 3거리 - 424번 지방도

②정선시외버스터미널에서 시내버스로 동면까지 06:00-20:00중 14회 운행(30분 소요) / 안병기

덧붙이는 글 | 일요일(3월6일), 민둥산을 내려와서 몰운대까지 이어지는 여행 이야기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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