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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하에서 인형극 관람은 예정에 없었다. 유럽 안내책자에 볼 만한 코스로 프라하의 인형극을 소개해 놓았지만, 인형극이 오페라 형식을 빌리고 있어 그 장르에 대한 문화적 소양도 없거니와 관심도 없었다.

여권을 잃어버리고 예정에도 없이 이틀을 프라하에 더 있게 되면서 다른 일정을 희생하고 있는 만큼 뭐라도 하나 건져봐야겠다는 보상심리가 작용했다. '무엇을 할까' 궁리하다가 아이들에게 교육적 효과도 있을 것 같아서(누가 한국의 학부모 아니랄까봐) 앉아있기만 해도 지적인(?) 관광객이 될 것 같은 인형극 오페라 <돈 조반니>를 보기로 했다.

그런데 극장앞에서 표를 사지 않고 표만 전문적으로 파는 곳에서 표를 구입하는 바람에 극장을 찾느라고 애를 먹었다. 매표창구의 아주머니는 극장을 찾는데 전혀 문제가 없을 것처럼 쉽게 일러주었는데 아무리 돌아다녀도 5분 거리라며 손을 펴고 "파이브 미닛"을 외치던 극장은 나타나지 않았다. 저녁의 거리를 즐기려는 인파만 늘어나 점점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혹시 시간에 늦게 도착해서 무슨 음악회처럼 입장도 안 시켜줘 돈만 날리게 되는 건 아닌가 하는 걱정을 할 무렵 겨우 물어물어 극장에 도착했다. 아직 문을 열지 않아 모두들 길게 줄을 서 있는데 조금 과장하면 절반이 한국 사람들이었다.

▲ 연극이 끝난 후..극장앞에서
ⓒ 유원진
그 사람들을 보며, "한국에서 연극해서 밥먹고 살기 힘들다"고 술자리에서 푸념하던 연극하는 후배가 떠올랐다. 잠깐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다. 한국에서는 1년에 연극 한 편도 제대로 안 보는 주제에 유럽까지 와서 무슨 오페라 인형극인가. 완전히 문화사대주의 내지는 그저 그거 보고 왔다는 관광 이력 수준에 다름 아닐 터였다. 지금 생각해도 한심한 관람 동기였다.

하여튼 입장을 해서 앉아 있는데 사람들이 계속 들어와 가파른 경사로 이루어진 약 이백여석의 좌석은 입추의 여지없이 꽉 찼다. 결국 계단에 방석을 까는 형태의 임시석도 꽉 채우고서야 막이 올랐다. 나는 계단에 비좁게 쪼그리고 앉은 사람들을 보며 서두르길 잘 했다는 생각과 함께 이 정도로 열광하는 작품이라면 누가 봐도 괜찮은 가보다 하는 막연한 기대감에 가슴까지 설레었다.

필자는 외국산 오페라나 뮤지컬을 좋아할 수 있는 문화적 기본 소양이 없는 관계로 알아들을 수도 없는 그것들을 사람들이 진지하게 듣고 앉아 있는 이유를 솔직히 알지 못한다. 다만 음악적 소양이 깊거나 혹은 이탈리아어를 들을 줄 아는 그것도 아니면 이미 여러 번 보아 내용을 잘 알고 있는 마니아들일 것이라고 짐작만 할 뿐이다.

비슷한 형태의 여성국극이나 명성황후 같은 오페라는 그래도 한국말이라 알아듣고 공감대를 가질텐데 커뮤니케이션 자체가 안되는데 무슨 수로 감동을 하랴. 그래도 사람들은 숨소리 하나 없이 감동 그 자체라는 표정으로 인형극을 보고 있었다.

지금도 유럽여행 중에 무지하게 돈이 아까웠던 기억으로 그 인형극을 떠올린다. 앞서 이야기했듯 나 자신이 문화적 소양이 없는 연유로 내용이나 음악에 만족을 얻지 못한 것은 오롯이 내 무식의 소치일뿐 극단 측을 비난할 생각은 없다.

처음에 음악이 시작되고 무성의하기 이를 데 없는 인형소품들이 조악하고 조잡하게 만들어진 무대에서 세련되지 못한 동작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연극이나 인형극에 전문가가 아닌 누구라도 그 무대의 세트나 주인공들의 의상 등 너무나 성의가 없고 그 인형을 조종하는 솜씨 또한 형편없는 것임을 쉽게 눈치챘을 것이다.

인형들은 너저분한 옷들을 입고 인간들의 폭거에 속수무책 유린당하는 꼴이었다. 음악이야 우람한 몸집의 그 유명한 가수가 부른 것을 테이프로 틀어주니 들을 만하다지만 그야말로 인형극을 보러온 전 세계에서 모인 사람들에게 그네들은 그야말로 무성의하고 오만한 삼류극단이지 싶었다.

고등학교 시절 그림에 소양이 있는 친구에게 소위 ‘그림보는 법’을 물은 적이 있다. 당시는 무슨 신화처럼 인상파가 어떠니 초현실주의가 어떠니 하고 주워들은 대로 치기를 부리던 시절이었다. 이런 저런 얘기는 기억이 안나지만 그냥 자꾸 보다 보면 좋아지고 알게 된다는 요지였다. 미술선생님도 그림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는 것이 오히려 감상에 도움을 준다고 하여 ‘그림보는 법’ 배우기를 포기하였다. 저것이 누구의 그림이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저 그림이 내게 주는 감흥이 중요하다는 것만 배운 셈이다.

▲ 프라하 화약탑
ⓒ 유원진
염소가 하늘을 날아다니는 샤갈의 황당한 그림이 이발소에 걸려있던 사진 같이 잘 그린 그림보다 객관적으로 왜 좋은 그림인지를 모르고 나이를 먹어갔다. 자주는 아니더라도 문화에게 따돌림을 당하고 있다는 소외 의식이 들 때면 미술관이나 전람회도 가끔 찾아가곤 했다.

어느날인가 고흐의 그림 앞에 서서 잔잔한 충만감을 느끼면서 모기 눈물만큼의 기쁨을 맛보았을 때 삼십 년을 뛰어넘어 그 목소리가 들렸었다. ‘그냥 보고 좋으면 되는거지’ 제주도에 가서 이중섭미술관을 방문했을 때는 드디어 그림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왜 갈증이라는 표현까지 쓰는 줄도 어렴풋이 짐작이 되었었다.

하여튼 음악이든 미술이든, 혹은 연극이든 감상할 줄 모른다는 것과 누가 보기에도 격이 떨어진다는 것은 다른 것이다. 필자의 무식함이 완성도 높은 작품을 폄하한다는 시비를 피하기 위한 장황한 이야기 였으나, 모든 고급 예술의 기본이 심혈을 기울이는 치열함에 있다고 한다면 필자가 본 인형극 <돈 조반니>는 아니올시다 였다는 것이다. 단 필자가 본 것만이라는 단서는 달아야겠다.

한국에서 인형극을 두어 차례 본 적이 있다. 아이들이 유치원에 다닐 때 같이 가서 보았는데 아기자기한 재미가 있어서 참 볼만하구나 했던 기억이 있다. 그때 그 인형들이 입고 있던 옷들과 신발, 무대세트가 정성스럽게 꾸며졌던 게 기억이 난다.

어떻게 관객들을 계단에 까지 앉혀 놓고 저렇게 성의없이 공연을 하는지 싶어 화가 났으나, 그냥저냥 앉아있다보니 극이 끝났다. 공연하던 이들이 두 번씩이나 관객들의 앙코르를 받고, 기립박수를 받는 것을 보니 참으로 모를 일이라 생각했다. 박수는커녕 환불받고 싶은 지경이었으나 내 무식의 소치로 알고 참기로 하였다.

아이들이 열심히 박수를 치길래 재미있었느냐고 물으니 그저 그렇다고 한다. 다른 사람들도 그냥 본 것으로 만족하고, 박수만은 열심히 치기로 한 것 같아 속으로 웃음이 나왔다. 혹시 극단 측도 우뢰와 같이 박수를 치는 관중들을 보면서 속으로 웃지는 않았을까. 한국에 돌아가면 아이들과 함께 인형극을 한편 꼭 보리라 마음먹은 것으로나마 위안으로 삼았다.

프라하에서 <돈 조반니>라는 인형극을 여러 극단에서 한다고 하니 기왕에 보려면 우리 같이 형편없는 극단이 아닌 곳을 찾아 보라고 권유하고 싶다. 사람들이 그렇게 많이 모인 극단의 수준이 그러하다면, 그 위 수준이라고 해봐야 뻔하지 않을까 싶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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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는 것을 직업으로 삼고 싶었으나 꿈으로만 가지고 세월을 보냈다. 스스로 늘 치열하게 살았다고 생각해왔으나 그역시 요즘은 '글쎄'가 되었다. 그리 많이 남지 않은 것 같기는 해도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나' 많이 고민한다. 오마이에 글쓰기는 그 고민중의 하나가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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