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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보다 적금통장이 좋다(?)는 소리에 귀가 솔깃했던 것은 지난 여름이었다. 쇼핑퀸이었던 그가 작정하고 돈 모으기에 돌입하여 3년 만에 1억을 모았다던 바로 그 이야기. 물론 액수의 차이는 많지만, 일정 기간 내 친구들과 비교했을 때, 나도 자랑스런(?) 적금 통장을 가진 후였기에 굳이 나까지 읽을 필요가 있을까 하고 몇 장을 넘기다 덮어버린 책이었다.

이제 막 사회에 진출한 사회초년생들이 한 번 쯤 읽어두면 좋을 책의 범주에 넣어 두는 것에 동의하며, 내심 쇼핑퀸의 조짐을 보이고 있는 동생이 이 책을 좀 읽어주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동생이 책을 읽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렇게까지 하면서 돈을 모으고 싶지 않다는 것이 동생의 지론이었기에 나는 더 이상 이야기하지 않았다. 한 뱃속에 나서도 돈에 대한 가치관은 아직도 너무 다르다. 서로의 의견을 존중하되, 서로의 생각에는 여전히 변화가 없는 것 같다.

저자는 직장생활 5년 후 통잔 잔액이 겨우 700만원임에 경악하며, 돈을 모으기 시작한다. 일을 늘리고 적게 쓰며, 부동산이나 주식 같은 방법이 아닌 오로지 은행에 적금을 붓는 것으로만 돈을 모았다.

하루 4시간의 수면, 주말에도 쉬지 못하면서까지 돈을 버는 것은 좀 너무했다 싶지만, 한편으로는 목표 달성을 위해 매진하는, 나에게는 없는 그의 '깡'이 부럽기도 했다.

저자는 방송작가라는 이름에 걸맞은 입담으로 독자를 이끌었다. 연신 웃음을 터뜨리며 가벼운 마음으로 읽을 수 있는 이 책은 결국 많이 버는 것보다는 어떻게 쓰느냐의 문제를 이야기하고 있었다. 아무리 많이 벌어도 지출이 많으면, 적게 벌어서 많이 저축하는 사람을 당할 재간이 없는 것이다.

이 책으로 말미암아 서랍 속에서 잠자고 있던 통장을 한 번 꺼내 보게 되었다. 보통 예금 통장의 잔액은 얼마인지, 정기예금의 만기일과 이자액은 얼마인지 다시 확인해보며 저축액을 늘리고 싶은 욕구가 일기도 했다.

나는 3년 8개월의 직장 생활을 하면서 월급의 70% 이상을 저축했다. 저축하고 남은 돈을 용돈으로 쓰고, 그래도 돈이 남을 땐 언제든 저축할 수 있는 소액의 적금을 들었다. 그렇게 저축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아마도 일이 힘들어서였을 것이다. 지나고 보니, 엄살이 심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언제인가 나는 비슷한 시기 사회에 진출한 선배에게 직장생활의 스트레스에 대해 이야기했더니, 그 선배는 나에게 적당한 스트레스는 건강에 이롭다는 이야기로 나를 위로했다. 그런데 그 위로는 내가 듣고 싶었던 이야기가 아니었기에 별 도움이 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렇게 쉽지 않게 번 돈이었기에 마음껏 쓸 수 없었고, 대신 저축을 택했나 보다.

처음 직장생활을 시작하고 줄곧 내 통장은 내가 관리했고, 대신 통장의 잔액이 얼마인지 부모님께서 궁금하실까 이야기만 해드리는 정도였다. 내가 번 돈을 내가 관리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라 생각했다.

간혹 부모님께 월급을 맡기고, 용돈을 얻어 쓰는 친구도 있지만 그것은 특별한 경우였다. 이를테면, 대책없이 돈을 쓰는 바람에 강제적으로 부모님이 관리해 주시는 경우가 바로 그것이다.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돈. 그러나 몸을 상하게 만들면서까지 무리하거나, 여가를 즐길 시간도 없이 일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지나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열심히 돈을 벌고, 적게 쓰고, 대신 저축을 늘이는 것으로 위안을 삼으면 좋을 것 같다.

"이미 사랑을 경험한 여자는 더 이상 사랑 없이는 살 수가 없듯이 하루하루 잔고가 늘어나는 통장을 보는 재미에 단단히 맛이 들린 내게 중도하차란 꿈조차 꿀 수 없는 노릇이었다"고 고백하는 저자처럼 통장 잔액이 늘어가는 기쁨과 함께 적게 쓰고도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을 찾는 일로 행복한 봄이 되었으면 한다.

덧붙이는 글 | *<대구경북 오마이뉴스> 바로가기→dg.ohmynews.com


나는 '남자'보다 '적금통장'이 좋다

강서재 지음, 위즈덤하우스(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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