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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개 천하를 위하여 일하는 자는 진실로 인민에게 이롭고 나라에 도움이 될 일이라면, 비록 그 법이 오랑캐에게서 나온 것일지라도 이를 취하여 본받는 것인데, 하물며 3대 이후의 성제. 명왕과 한, 당, 송, 명의 고유한 옛것이야 어떻겠는가.'

▲ <열하일기>
ⓒ 솔
조선의 유학자가 오랑캐 땅을 찾았다. 소중화인이라는 문화적 자존심으로 굳게 무장한 조선의 지식인이 성인의 도가 이미 까마득히 사라지고 무지한 오랑캐만 날뛰는 세상을 여행하면서 느낀 점은 문화적 종주국의 지위를 빼앗긴 한족에 대한 비애인가? 성인의 도를 작은 변방에서 지금껏 살리고 있다는 자부심인가? 오랑캐 만주족에 대한 적개심인가? 그도 아니면 명나라에 대한 눈물겨운 의리인가?

박지원은 스스로 말하듯 상등의 선비도, 중등의 선비도 되지 못하고 하류의 선비 시각으로 청나라를 바라본다. 그러나 그가 보는 사물은 예사롭지 않다.

'그들의 장관은 기왓조각에 있고, 또 똥부스러기에 있다.'

공맹의 도를 익힌 한 유학자가 조선 지식인의 영원한 마음의 고향인 성인의 나라에서 보고 배워야할 점으로 기껏 기왓조각과 똥부스러기에 주목하고 있다니, 가히 충격적이다.

박지원은 당시의 지식인들이라면 당연히 들먹거리는 인, 의를 좀처럼 입에 올리지 않는다. 대신 백성의 생활과 직접 연관되어 있는 부뚜막, 화덕, 굴뚝, 벽돌, 수레, 물차두레박 등을 열을 올려 바라보고 그 모습을 생생하게 묘사한다.

그는 여행내내 현실적이며 실용적인 태도를 일관되게 견지하고 있다. 그리고 이런 태도는 글쓰기 양식에서도 그대로 표현되어 글의 내용 또한 간결하면서도 사실적이다.

인민의 시각에서 사물을 보다

지식인이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은 넓게 열린 듯 하지만 그 끝은 언제나 한곳으로 집중된다. 지식인의 경향성이라고나 해야 될까. 그가 끼고 있는 색안경에 맞춰 다양한 사물들을 하나로 채색한다. 어찌보면 비판받아 마땅한 이런 자세는 그러나 우리들로 하여금 사물에 대한 인식을 정돈하게 하고 주변을 안정되게 받아들이게끔 하는 역할을 한다.

끊임없이 변화는 세계에 살고 있는 인간이 안정성을 갖기 위해서는 가지런한 세계인식이 필수이다. 지식인은 바로 사람들로 하여금 좀 더 안정되게 살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주변 사물을 정돈하는 일을 하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지식인의 삶의 태도는 대단히 보수적이다. 왜냐하면 그가 이미 형성한 사고 그대로 모든 사물을 바라보며 그들만의 방식으로 세상을 정돈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의 정신세계에서 세상에 새로운 것이란 없다.

한편 한 시대의 주류를 형성하는 지식인 부류가 바라보는 세계인식은 자신뿐만 아니라 세상사람들에게 강압적이며 고정적이다. 그들만의 세상을 유지하기 위해선 틈을 허용하지 말아야 하기 때문이다. 나의 방에 들어와라. 그러나 우리에겐 넘치면 자르고 모자라면 늘릴 힘이 있음을 명심하라.

박지원 역시 자신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그러나 그의 눈은 인민에게로 향하고 있다. 그리고 인민의 시각에서 사물을 해석한다. 주류에 편입되지 않은 시선은 따라서 당대의 지식인과는 다른 곳에 닿아 있다. 그러하기에 청나라 문물을 보면서 조선의 비루한 문물을 끊임없이 환기시키는 반면, 자신의 시선에 반대되는 주류적 지식인에 대한 비판이 가득차 있다.

'윤인이니 여인이니 거인이니 주인이니 하며 떠들지만, 끝내 그것을 만드는 기술이나 움직이는 방법에 대해서는 도무지 연구하지 않으니, 한갓 글만 읽을 뿐이지 참된 학문에는 무슨 이익이 있겠는가?…뜻있는 이가 잘 연구하여 그 제도를 본받는다면 우리 나라 백성들의 극도에 달한 가난도 거의 물리칠 수 있을 것이다.'

후생이 된 연후에 정덕이 된다

모든 여행자가 그렇듯 박지원 역시 처음보는 세상에 대한 호기심을 좀처럼 억제하지 못한다. 졸음 때문에 낙타를 볼 기회를 놓치자, ' 이 다음에는 처음 보는 물건이 있거든 아무리 졸 때나 식사할 때일지라도 알려야 한다'라는 말을 하는 대목에서 가히 어린애 같은 왕성한 호기심을 느낄 수 있다. 그러하기에 틈만나면 여행지의 사람들의 삶에 끼어든다.

그러다 '기상새설'과 같은 웃음을 자아내기도 한다. 그래서 근엄한 선비의 모습이 그의 호기심 앞에서는 쉽게 허물어진다는 인상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호기심이 일시적 궁금증의 차원에 머물고 있는 것은 아니다. 조선 인민의 삶의 방식과 청국의 문물을 상호 비교하면서 인민의 삶을 윤택하게 할 방법을 강구한다. 호기심의 근원은 어디까지나 실생활의 개선에 있다.

인민의 생활과 유리된 고루한 당시의 지배적 학풍에 물들지 않고 이렇듯 철저하게 현실적인 시각을 갖고 있는 박지원이기에 거름더미를 보면서도 인민의 삶의 방식을 생각하는 것이다.

박지원 역시 유교적 덕목을 중시하는 중세의 지식인이지만 당대의 지식인 집단과는 그 강조점을 다른 곳에 두고 있다. 그러하기에 다음과 같은 그의 탄식은 매우 설득력이 있다.

'외양간이나 돼지우리까지도 보기 좋게 해놓은 품이 마치 그림 같았다. 아, 이러한 연후에 비고소 이용이라 할 수 있겠다. 이용이 있는 연후에 후생이 될 것이요, 후생이 된 연후에야 정덕이 될 것이다.…생활이 제각기 넉넉하지 못한데, 어찌 그 마음을 바로 지닐 수 있겠는가.'


덕의 실현(왕도정치)이라는 하나의 이념이 힘을 갖기 위해선 이념을 떠받치고 있는 기반을 계속해서 강화해야만 한다. 살아있는 이념은 사회유지를 위해 자신의 태반과 지속적으로 의사를 소통한다. 혁신적인 이념은 때론 자신의 태반을 근본적으로 해체하며 보수적 이념은 그것을 강화한다. 그러나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는 이념은 의사소통의 통로를 찾지 못하고 그 기반을 강압적으로 유지하려 한다. 이럴 경우 이념의 수호자인 지식인 집단과 기층 민중은 사회적으로 분리된다.

박지원이 보기에 당대 조선은 이념이 제 기능을 수행하지 못하는 사회였다. 이는 지식인의 무능 때문이며 제대로 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선 백성의 실생활을 개선할 수 있는 실용적 학문이 있어야만 했다. <열하일기>는 이러한 박지원의 학문적 사상을 경험적으로 증명해주는 내용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기에 박제가가 쓴 <북학의>의 서문에서 '그렇다면 그래 이것들을 우리 두 사람이 직접 가서 보고서야 비로소 알게 됐단 말인가? 아니다. 그런 것이 아니고, 이들 문제는 바로 우리가 비오는 지붕 밑에서, 눈 내리는 처마 밑에서 연구하고 슬을 데우며, 등잔의 불똥을 따면서 손바닥을 치면서 이야기 했던 것들이다. 여기다가 다시 직접 눈으로 경험했을 뿐이다'라고 했다. <열하일기>의 전편을 일관하고 있는 것은 바로 이러한 실용성이다.

물론 박지원 역시 중세적 가치관을 지닌 지식인이었기에 때론 중국적 사고 중심으로 사물을 해석하기도 하지만 그러함에도 그 이면에는 학자로서의 성실성과 실용성이 있음을 우리는 <열하일기>에서 다시금 확인할 수 있다. 우리가 열하일기를 읽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덧붙이는 글 | 연암 서거 200주년을 맞는 올해 도서출판 '보리'에서는 1955년 북한 문예출판사에서 펴낸 <열하일기>(리상호 옮김)완역본을 상·중·하 세 권으로 내놓았다.


세계 최고의 여행기 열하일기 - 상 - 개정신판

박지원 지음, 길진숙.고미숙.김풍기 옮김, 북드라망(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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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만 들어도 가슴이 벌렁거리는 '기자'라는 낱말에 오래전부터 유혹을 느꼈었지요. 그렇지만 그 자질과 능력면에서 기자의 일을 수행할 수 있을까 하는 자신에 대한 의구심으로 많은 시간을 망설였답니다. 그러나 그런 고민끝에 내린 결정은 일단은 사회적 목소리를 들으면서 거기에 대해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내생각도 이야기 하는 게 그나마 건전한 사회를 만들어 가는 데 필요치 않을까, 하는 판단이었습니다. 그저 글이란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진솔하고 책임감있게 표현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신 있는 글쓰기 분야가 무엇인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일상의 흔적을 남기고자 자주 써온 일기를 생각할 때 그저 간단한 수필정도가 아닐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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