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와 울산을 잇는 7번 국도변. 막연히 ‘구정동방형분’이라 불리는 이 고분은 통일신라시대 말기 것으로, 출토된 유물과 무덤의 내부구조 그리고 무덤의 외양을 짐작하여 왕족이거나 상당한 권력을 가진 귀족일 것이라는 것만 추정되고 있다.
1920년 일본인들의 학술조사에서 내부구조가 밝혀졌지만 이미 도굴을 당한 뒤라 훼손이 심하였고, 1965년도 복원 뒤에도 제대로 관리되지 않은 듯해 고분연구의 학술적 가치가 많이 희석되어 안타깝다.
1964년 복원시에는 남쪽의 지대석은 전부 없어졌고, 동쪽 서쪽 북쪽 일부만이 잔존하고 있는 실정이었다. 다행히 호석인 십이지상은 일부 파손된 부분을 제외하곤 원형 그대로 남아 있었다고 한다.
당시 북쪽부분의 지대석 및 면석, 갑석이 대체로 양호하게 남아 있는 상황이어서 북쪽부터 작업을 시작하여 서편, 동편쪽으로 작업은 진행되었고, 남쪽은 맨 나중에 복원되었다.
현재의 모습은 1965년 복원공사 이후의 것이다. 봉분은 평면형태가 정사각형으로 한 변의 길이 9.5m, 높이 약2m이며, 봉분 아래에는 십이지신상을 이용하여 호석을 설치하였다.
이와 같은 네모 무덤은 신라고분으로는 유일한 것으로 당시의 석탑양식을 모방한 것으로 생각되며, 그 구조와 함께 통일신라시대 얼마 안 되는 십이지신상을 갖춘 고분으로서 학술적으로 중요하다.
본래는 앞쪽이 막혀 있었지만 복원 후에 무덤 속을 관람할 수 있도록 앞을 터놓았다. 무덤 안쪽의 쌍여닫이 돌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면 한 변 길이 2.7m 돌 방이 나타난다.
돌 방 높이는 1.8m인데 밑에서 1m쯤부터 벽면을 안쪽으로 차츰 경사지게 하여, 천정의 면적을 좁혀서 그 위에 긴 돌들을 덮은 특이한 구조로 되어 있다.
처음에는 벽과 천정에 하얗게 회를 발라 벽화를 그려놓은 삼국시대의 고분과 흡사할 것으로 추정되나 지금은 회가 거의 다 떨어지고 흔적만 조금 남아 있을 뿐이다.
돌방의 서쪽에는 시체나 널을 놓았던 돌 받침대(屍床臺)가 있는데, 동쪽 면에는 상(床)다리 모양을 새긴 안상(眼象)무늬가 있어 죽은 이의 신분이 높았음을 짐작할 수 있다.
무덤 내부가 돌 방 모양으로 만들어지는 것은 삼국 통일 이후에 나타나는 통일 신라 시대의 지배 계층의 무덤 양식으로 알려져 있다.
방형분의 12지상은 남쪽의 말(午像)은 앞을 보고 있고 북쪽의 쥐(子)부터 동쪽으로 돌아가면서 소(丑), 범(寅), 토끼(卯), 용(辰), 뱀(巳)은 머리를 오른 쪽으로 돌리고 있고, 양(未), 원숭이(申), 닭(酉), 개(戌), 돼지(亥)는 말을 향하여 얼굴을 왼편으로 돌리고 있다.
가족과 함께 나들이할 겸 신라 지배계급의 무덤들을 들러보는 것도 좋은 볼거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구정동방형봉의 무덤 내부를 보기 위해선 기어서 들어가야 한다. 때문에 손전등이 있으면 유용하게 관람할 수 있다. 따뜻한 가족 나들이, 이제는 한 가지만이라도 테마를 가지고 나서보자.
덧붙이는 글 | 구정동 방형분: 사적 제27호. 한변이 9.5m, 높이 2m의 사각형이며, 구정동역 앞의 평지에 있다. 내부는 남북 2.7m, 동서 2.4m로 남쪽 벽에 입구가 있고, 현실 동쪽에 판석 관대(板石棺臺)가 있다. 기부(基部)에는 3단으로 쌓은 장대석을 돌려서 위에 갑석(甲石)으로 누르고, 다시 각 면에 3개의 탱석(撑石)을 같은 간격으로 세워 탱주(撑柱)로 삼고, 탱석 외면에는 십이지신상(十二支神像)을 1구씩 부조(浮彫)한 특이한 형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