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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영희 전 한양대 대우교수가 최근 자신의 삶과 사상을 육성으로 담은 구술 회고록 <대화>를 펴냈다.
ⓒ 오마이뉴스 신미희
연행 아홉번, 구금 다섯번, 재판 세번을 받는 동안 1012일간 옥고를 치르고 언론계와 대학에서 각각 두번씩 모두 네차례 강제로 쫓겨났던 리영희(76) 전 한양대 대우교수.

최근 자신의 삶과 사상을 육성으로 담은 구술 회고록 <대화>(대담 임헌영. 한길사 출판)를 펴낸 그를 15일 경기도 군포시 자택에서 만났다. 2000년 뇌출혈로 쓰러져 글쓰기를 중단한 채 병마와 싸웠던 그는 비교적 건강한 모습으로 "별거 아닌데 이렇게 많이 와줘서 고맙다"며 기자들을 맞았다.

1929년 일제 식민지 조선의 소년으로 태어나 해방과 분단, 미군정기, 한국전쟁, 4.19혁명과 5.16쿠데타, 광주민주화운동, 87년 민주화투쟁 등을 거친 그의 활동 시기는 한국 근현대사와 정확히 일치한다. '야만의 시대'로 불렸던 시기를 살면서 가장 힘들었던 때를 묻자 그는 주저 없이 전두환 군사정권 기간을 꼽았다.

"박정희 정권 때도 그랬지만 자유로운 사상이나 가치추구, 집필, 연구조차 탄압했던 전두환 군사정권 때 가장 힘들었다. 내일이 오늘보다 조금도 나아질 징조가 보이지 않던 당시 절망밖에 없으니 자살을 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이같은 극단의 시기에 그의 이름은 많은 청년, 학생, 지식인들에 의해 '사상의 은사'로 불렸다. 그럴수록 '야만의 권력'은 그에게 '의식화의 원흉'이라는 굴레를 씌웠다.

그러나 그의 삶에는 가시밭길만 있지 않았다. 99년 말 <연세대학원신문>이 실시한 '20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학자와 저작'에 관한 설문조사에서 국내 학자 가운데 으뜸으로 뽑혔다.

스스로 '60% 저널리스트(언론인), 40% 아카데미션(학자)'이라고 말하는 그의 글이 사람들 의식을 깨우치며 삶을 통째로 뒤흔들었던 까닭은 새로운 담론을 제시해서가 아니다. 한국 현대사의 온갖 질곡 앞에서도 진실을 있는 그대로 글로 옮기며 참된 지식인으로 살고자 했기 때문이다.

그는 모든 글쓰기의 처음이자 마지막이라 할, '온전한 진실을 써내려간다'는 사명을 실천하기 위해 목숨을 걸어야 했다. 이 의무를 회피하지 않고 맞서는 것이야말로 지식인의 진정한 역할이라고 여겼다. 그래서 살아있는 동안 두권의 평전이 헌정되는 흔하지 않은 영예를 얻기도 했다.

그렇듯 그가 <대화>에서 풀어놓은 70년에 걸친 체험과 이야기는 그 자체가 한국 현대사의 증언이자 살아있는 역사 교과서이다. 그는 이 책을 통해 이 땅에서 지식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어떤 일인지를 생생하게 들려준다.

최근 '식민지배 축복 발언' 등으로 세간의 비판의 받는 일부 지식인과 전혀 다른 모습이다. 그는 일부 인사들의 이같은 발언에 대해 어떻게 보고 있는지를 묻자 "오늘은 책에 대한 얘기만 하겠다, 시국 얘기는 나중에 하자"면서 뒤로 미뤘다. 그러나 그가 <대화>에서 밝힌 지식인에 대한 정의는 이번 질문에 대한 정답이 아닐까 싶다.

"인간은 누구나, 더욱이 진정한 '지식인'은 본질적으로 '자유인'인 까닭에 자기 삶을 선택하고, 그 결정에 대해 책임이 있을 뿐 아니라 자신이 존재하는 사회에 대해서도 책임이 있다고 믿는다.

이 이념에 따라 나는 언제나 내 앞에 던져진 현실 상황을 묵인하거나 회피하거나 또는 상황과의 관계설정을 기권으로 얼버무리는 태도를 '지식인'으로서 책임져야 하는 사회에 대한 배신일 뿐 아니라 그에 앞서 자신에 대산 배신이라고 여겨왔다."


▲ 리영희 전 한양대 대우교수의 구술 회고록 <대화> (대담 임헌영)
ⓒ 한길사
미군정기와 이승만 정부부터 지금 노무현 정부까지 모두 거친 그는 역대정권을 어떻게 평가할까. 특히 지식인으로서 그의 신념을 확인하는 계기가 됐다는 박정희 정권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그는 "말로써, 글로써 다 할 수 없는 핍박을 받다 보니까 그렇게 좋은 평가를 하고 싶은 생각이 없다"면서 말문을 열었다.

그는 "절대 악도 절대 선도 없고 박정희 전 대통령 역시 그렇다"고 전제했지만 "그 사람을 신으로 모시는 일부 수혜자들이 지금까지도 모든 것을 그 사람의 업적처럼 여기는 태도는 못 마땅하다"고 못박았다.

그는 "박정희의 경제개발 업적은 미국의 반공정책과 패권주의 수단으로 이뤄졌다"며 "미국이 북한과의 투쟁에서 독재개발 체제를 만들지 않고는 안되겠다고 생각, 박정희를 내세워 경제개발과 정치독재를 시킨 것"이라고 일갈했다.

그는 "그(경제개발 성과) 자체가 대단한 것도 아니지만, 몇 푼의 물자로 우리 제도가 비뚤어지고 부패타락이 방치된 채 희생된 것은 너무 크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지금까지 박정희 주술에서 박정희 신앙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들은 하루 빨리 꿈에서 깨어나 진실에 접근하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과격, 조급, 비타협, 아집 등 변해야"
리 전 교수가 70·80년대 '청년학생'에 보내는 당부

<전환시대의 논리>, <우상과 이성>, <8억인과의 대화>, <분단을 넘어서>, <베트남 전쟁>,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 등 리 전 교수의 저서 대부분은 70·80년대 많은 지식인·학생·청년들의 의식을 깨우치며 삶의 전환이 됐던 일종의 '사상 지침서'이기도 했다. 그는 이중 가장 애착이 가는 책으로 <전환시대의 논리>와 <우상과 이성>을 꼽았다. 깜깜하게 모르고 있던 사람들에게 진실이 뭔가를 전해줬고, '청천벽력'처럼 읽혀졌다고 그는 회고했다.

70년대 초 중앙정보부가 작성한 '대학생들이 영향을 받는 저서' 50권에 따르면 <전환시대의 논리>와 <8억인과의 대화>가 1·2위였고, 박현채 교수의 <민족경제론>과 송건호 선생의 <한국 민족주의의 탐구>가 3·4위, <우상과 이성>이 5위를 차지했다고 한다. 그는 "당국이 많은 사람 잡아다가 캔 정보에서 나온 순번인 셈인데, 결과적으로 보람있던 책이 아니었던가 싶다"며 웃었다.

당시 그의 저서나 담론, 이론에 몰입했던 청년 세대들은 학생운동기, 사회변혁기를 거쳐 김영삼 정부부터 김대중 정부, 노무현 정부에 이르기까지 개혁주도 세력으로 부상했다. 이들에게 그는 어떤 당부를 하고 싶을까.

그는 먼저 "인간행위는 항상 상대적인 것이기 때문에 (개혁주도) 세대들이 투쟁했던 대상물과 대상의 상황도 상당히 바뀌었다"면서 "목적을 추구하는 행위방식과 철학이 다소 달라져야 한다"고 권고했다.

그는 "두고두고 뜻을 지니는, 의의 깊은 변화는 단시일에 이루고자 해서도 안되고 이뤄지는 것도 아니다"며 "과격한 것, 조급한 것, 일절 타협을 배격하는 것, 자기만이 옳다는 것 등 지난날 운동 방식에서 더 지혜로워졌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또 자주적인 외교정책과 관련, 노무현 정부에 뼈있는 지적도 잊지 않았다. 그는 노 대통령에 대해 "이분이 처음 미국 가서 '웃기는 소리'를 하길래 싫은 소리를 쓴 일이 있다"고 회고한 뒤 "이라크 파병을 적극 반대했지만 결국 보냈으니 민족이익을 취할 수 있는 주체적 입장을 가지는 방향으로 임해달라"고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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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언론운동협의회(현 민언련) 사무차장, 미디어오늘 차장, 오마이뉴스 사회부장 역임. 참여정부 청와대 홍보수석실 행정관을 거쳐 현재 노무현재단 홍보출판부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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