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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앗을 직접 받아와서 금둔사에 심은 지허스님, 홍매화를 어루만지며 그때를 떠올린다
씨앗을 직접 받아와서 금둔사에 심은 지허스님, 홍매화를 어루만지며 그때를 떠올린다 ⓒ 서정일
"차 한 잔 하세요."

손님을 맞이하는 지허 스님의 마음이 찻잔 속에 녹아들어 따스함이 더한다. 긴 설명이 구차스러울 정도인 지허 스님, 선암사의 주지였으며 우리의 차를 소개하고 발전시킨 주인공으로 세간엔 널리 알려진 스님이다. 고령의 나이 탓인 듯, 태어난 곳을 향한 그리움인 듯 지금은 벌교 땅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금둔 사에서 차밭을 일구며 조용히 참선에 정진하고 있다.

지허 스님만큼 전라도를 사랑한 이도 드물 것이다. 절터만 남아 그 누구도 거들떠보지 않던 곳에 돌 하나 얹어놓고 나무 하나 바로 잡으며 정성을 다한 곳이 지금의 금둔사. 폐허가 되다시피 한 금둔사를 두고 발길이 떨어지지 않아 1984년 복원 중창하게 된다.

아직은 여리디 여린 금둔사의 홍매화 나무,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가장 빨리 꽃망울을 터트리는 것으로 유명하다.
아직은 여리디 여린 금둔사의 홍매화 나무,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가장 빨리 꽃망울을 터트리는 것으로 유명하다. ⓒ 서정일
순천시 낙안면 상송리에 있는 금둔사엔 이미 잘 알려진 대로 보물 제 945호의 금둔사지 삼층석탑과 보물 제 946호 금둔사지 석불입상이 있다. 그러나 꽃을 좋아하는 사람들과 사진인 들은 금둔사 하면 '홍매화'를 먼저 떠올린다.

이르면 12월부터 피기 시작해서 3월이면 만개하는데 금둔사의 홍매화가 유명한 이유는 바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빨리 매화꽃이 핀다'는 데 있다. 가끔 홍매화를 보기 위해 이곳을 방문한 사람 중 실망하는 이가 있다. 거대한 나무줄기나 하늘을 덮을 만큼 무성한 가지를 상상하고 온 사람들 때문인데 아직은 여리디 여린 나무다.

3월중순이지만 아직도 꽃망울을 머금고 있다. 예전에 비해 만개일자가 더딘 것은 싸늘한 날씨탓으로 보인다
3월중순이지만 아직도 꽃망울을 머금고 있다. 예전에 비해 만개일자가 더딘 것은 싸늘한 날씨탓으로 보인다 ⓒ 서정일
"여기 홍매화의 조상은 낙안읍성내에 있었던 토종 홍매화지요."

지허 스님은 낙안읍성에 있었던 멋들어진 홍매화 나무를 떠올린다. 그 씨앗을 직접 받아와 이곳에 심은 주인공이기도 한데 수명을 다하고 고사한 매화나무이기에 적어도 수백 년은 족히 되었을 거라 말한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되고 잘생긴 매화는 선암사 칠전선원앞에 있는 620년에서 700년쯤 된 매화나무라고 한다. 매화도 색깔에 따라 백매, 홍매, 청매 등 다양하고 토종과 개량종으로 분류하는데 토종은 열매가 빈약하고 꽃도 듬성듬성 피지만 일본에서 들어온 개량종은 꽃이 많고 열매 또한 탐스럽다고 한다. 하지만 수명은 토종이 훨씬 길다.

법당 뒷편에서 은은하게 향기를 머금고 있는 홍매화가 바람에 흩날리고 있다.
법당 뒷편에서 은은하게 향기를 머금고 있는 홍매화가 바람에 흩날리고 있다. ⓒ 서정일
"하늘에서 내려와 핀 것 같더군요." 지허 스님은 지난달 눈이 홍매화 위에 앉은 모습을 보면서 홍색과 백색의 조화가 눈부시도록 아름다웠다면서 땅에서 핀 꽃이 아닌 하늘에서 핀 꽃 같았다고 홍매화를 극찬했다. 그리고 눈이 녹을 때 홍매화도 덩달아 하늘로 올라가 버릴 것만 같아 안타까웠다는 시적인 표현으로 눈 속에 핀 홍매화 이야기를 마감했다.

지허 스님의 손에서 씨앗 하나가 떨어져 하얀 눈 속에서 연분홍 꽃을 피우고 천년동안 향기를 뿜어낼 금둔사의 홍매화, 두고두고 사랑받을 소중한 우리의 토종 홍매화임에 틀림없다.

덧붙이는 글 | 금둔사는 낙안읍성 뒤 금전산 자락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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