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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 시집을 산 것은 순전히 시집이 활자본이 아니라 시인의 자필을 인쇄한 책이었기 때문이다. 집에 오자마자 시집을 읽으려고 바삐 펼쳤다. 바야흐로 문자향이 방안을 가득 채우는 듯했다. 천천히 시인 자신이 쓴 서문을 읽어나갔다.
대세야 시류를 거스른 이 수제본 시집은 종이 중의 종이인 최고급 한지에 붓으로 써서 전통 오침 제본을 하고 갑으로 감싸 잡아 고리로 잠그는 그야말로 가장 새로운 제책의 전설이요 至心의 표본이다.
부디 거기 쓰여 있는 글자들이 종이의 무한을 덜 손상하고 제본의 품격을 떨어트리지 않기를 바랄 뿐이며(이하 생략)
아니 뭣이라고? 최고급 한지라고? 그리고 시방 내가 읽고 있는 책은 떡제본인데 듣도 보지도 못한 오침 제본이라고? 차분하게 사태를 파악해 나갔다.
알고 보니 내가 산 시집은 최고급 한지에 오침 제본을 한 귀족책의 보급판이었던 것이다. 보급판이면 보급판에 맞게 서문을 새로 쓸 일이지 서문을 왜 수제본과 똑같이 써놔 가지고 사람 헷갈리게 만드느냐 그 말이다.
사정을 좀 더 자세히 알기 위해 신문 기사를 검색해 보기로 했다. 마이데일리라는 인터넷신문의 1월 25일치 배국남 기자가 쓴 "35만 원짜리 가장 비싼 시집에 열띤 관심" 이라는 기사가 나왔다. 기사에는 이 '귀족시집' 탄생에 대한 자초지종이 나와 있었다.
그 기사에 따르면 책값이 비싼 이유는 정현종 시인이 '섬' 등 자작시 30편을 골라 29편을 붓글씨로 직접 쓰고 1편은 직접 육필로 쓴 것을 풍산 한지에 실크 인쇄하고 문화재 복원 기능인이 직접 조선시대 서책 제본 방식인 오침제본을 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나는 그 기사를 그냥 기사가 아니라 일종의 說話(설화)로 읽었다. 세월이 흐르면 사람들은 이렇게 옛 이야기를 할런지 모른다.
"옛날에, 아주 먼 옛날에, 21세기 초에 시집들이 거지반 5000~6000원 할 적에 무려 35만원이나 나가는 시집이 있었지. 그때는 마침 불경기라고 아우성이었대. 생활고를 견디다 못해 사람들이 더러 자살하기도 했다는데 말이야. 그 비싼 시집은 나오자마자 품절이 되었다는구나, 글쎄."
듣자니 주문 제작 방식에다 100권 한정본으로 나온 이 시집은 금세 매진된 모양이다. 시집을 제작한 출판사 간부는 "시가 경원시되는 시대에 시인들을 제대로 평가하고 시의 진정한 가치를 일깨우는 계기를 마련하기 위해 고풍스러운 시집을 내게 됐다”고 출판 동기를 설명했다 한다.
물론 시인이 육필은 소중하고 가치 있는 것이라는 걸 부인하진 않는다. 그러나 "시인들을 제대로 평가하고 시의 진정한 가치를 일깨우는 계기"를 만드는 게 꼭 이렇게 비싼 시집을 내야만 가능한 것일까.
이 희귀한 시집을 산 사람들은 그야말로 '초록 기쁨'(정현종의 시 중 하나)에 출렁거렸을는지 모른다. 그러나 내 기분은 정현종 시인의 시의 한 구절을 약간 비틀어 말하면 마음속에다 느낌표(!) 하나를 걸어놓고 들여다 볼 뿐이다.
여기서 잠깐 나 자신을 소개하자면 나는 시를 쓸 줄도 모르고 읽을 줄만 아는 사람이다. 그래도 30년이 넘는 세월 동안 꾸준히 시집을 소비해 온 사람이다. 국악판에서 창(唱)은 못하고 듣기만 잘하는 사람을 일러 '귀명창'이라 하는데 나야말로 시의 '귀명창'인지도 모른다.
어느 정도로 시의 지독한 애독자라 할 수 있냐면, 1991년도에 <미래사>라는 출판사에서 출간된 102권짜리<한국대표시인100인선>》을 서점에서 한꺼번에 다 구입했을 정도였다.
7년 전만 해도 난 하루에 담배 2갑을 피워대는 체인 스모커였다. 어느 날 갑자기 "담배를 이틀만 안 피면 시집 한 권을 살 수 있는데 이 백해무익한 것을 피고 있구나" 라는 데 생각이 미치자 그토록 좋아했던 담배를 뚝, 끊어버린 사람이다.
시가 가진 무엇이 그토록 나를 잡아끄는지 알 수 없다. 어쩌면 시를 읽으면 마음이 맑아진다는 점이 좋아서인지도 모르겠다. 시를 애호하는 사람으로서, 정현종 시가 가진 많은 결점에도 불구하고 매번 그의 시가 가진 탄력적인 감수성에 매혹당하고 마는 정현종 시의 애독자로서도 이번 고가의 시집은 고개를 갸웃거리게 한다.
시인들을 제대로 평가하고 시의 진정한 가치를 일깨우는 것이 시집의 가격을 높이는 것만으로 가능한 것일까. 시가 가진 리얼리티와 삶에 대한 치열한 진정성이 시의 가치를 높이는 것은 아닐까.
김수영 시인의 산문 한 구절이 생각난다.
시를 쓰기도 어렵지만 시의 독자가 되기는 더 어려운 것 같다. 진정한 시의 독자는 시인이 아니고서는 되지 않는다고 하지 않는가. 피상적으로 시의 독자가 있느니 없느니 말할 수도 없고, 시의 독자가 없다고 비관할 필요도 없을 것 같다.
-김수영 시인의 산문 '생활현실과 시'(1964.10)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