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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은 이루어질까?

▲ 천안행 전철 도착을 알리는 전광판과 전철을 타는 사람들
ⓒ 김정은
'이번 열차 천안행'이라는 붉은 글자가 전광판에 번쩍거린다.

여기는 지하철 신도림역 1호선 플랫폼. '꿈은 이루어진다'더니 이제 조금 있으면 내 앞에 천안까지 가는 전철이 도착해서 문을 활짝 열어놓을 것이고 나 또한 그 문을 통해 여전히 멀게만 느껴지는 천안까지 갈 것이다.

사실 천안까지 전철로 갈 수 있다는 꿈같은 얘기는 이미 1990년 수원-천안 복선 전철화 사업 공사로 시작됐다. 근 15년만인 지난 1월 20일 그 사업의 마지막을 알리는 병점-천안 구간(47.9㎞) 공사가 완공됨에 따라 그 지리했던 꿈이 이루어진 것이다.

▲ 천안행 전철이 도착했다.
ⓒ 김정은
전철 개통 소식을 듣고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전철로 가는 천안 당일여행이었다. 전철로 가능한 천안 당일여행 코스는 어디까지이고 비용은 얼마나 소요될까?

궁금하면 무엇이든 직접 부딪쳐 보는 수밖에... 그래서 '2만원으로 떠나는 천안 당일여행'이라는 목표를 가지고 지난 19일 토요일 천안역으로 출발하는 8시 40분 전철에 몸을 실었다.

경로철? NO!

토요일이라서 그런지 주말 전철 내에는 통학하는 학생보다 연세 지긋한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더 많아 보였다. 사실 천안까지의 전철 개통은 일반인들이 저렴한 가격(2200원)에 천안까지 갈 수 있다는 것과 함께 경로 노인과 장애자, 보훈자들의 무료 요금 범위를 수도권에서 천안까지 늘렸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평일 출퇴근 시간에는 천안까지 통학하는 학생들이 더 많다.

▲ 성환역을 지난 바라본 전철 밖의 풍경
ⓒ 김정은
지하철에서 우연히 만난 김정심(54·여)씨 또한 전철 마니아다. 몇 년 전 손을 심하게 다쳐 장애인 등급을 받았다는 그녀는 한 달에 한두 번씩 대덕단지의 한 연구소에서 근무하면서 유성에 사는 아들을 방문하기 위해 이 전철을 이용한다고 한다.

그녀의 경우 예전에 서울에서 신탄진역까지 가는 데 약 5800원(무궁화호 장애인 경로요금기준) 정도의 기차 요금이 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은 천안까지 전철 요금이 무료이므로 천안역에서 신탄진역까지의 무궁화호 요금 2200원만 있으면 충분히 신탄진까지 갈 수 있다.

이처럼 알뜰한 그녀도 남보다 싼 가격에 철도를 이용할 수 있는 만큼 그 부분을 다른 사람과 나누어야 한다며 전철 내에서 도움을 청하며 돌아다니는 사람의 모금함에 선뜻 1000원짜리를 집어 넣는 따스함을 보였다. 아마 오늘의 대한민국을 사는 평범한 어머니들의 모습이 저러하리라.

그녀와 자식 얘기 남편 얘기 등등 이런 저런 세상 사는 얘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전철은 수원역을 지났다. 그리고 전철 안의 사람들도 어느새 뜸해졌다.

천안구! 아산구?

천안까지 전철 개통은 '경로철'이라는 이야기도 들려오지만 비단 전철 무료 혜택을 받는 사람뿐만 아니라 일반인에게도 비용 절약의 효과가 있다. 보통 천안까지 열차 요금은 서울역에서 무궁화호 기준으로 5400원인 데 반해 전철은 신도림까지 오는 전철 요금을 모두 포함해서 천안까지 2200원밖에 안되니 기차 요금의 반값도 안될 정도로 저렴하다.

더군다나 10분 간격으로 정시에 전철이 도착하고 출발하니 그만큼 기차 시각에 구애받지 않게 된 이점도 있다. 단 운행 시간이 열차에 비해 많이 걸린다는 게 단점이랄 수 있지만 이러한 단점을 상쇄할 수 있을 만큼 천안행 전철은 장점이 많다. 그래서일까? 전철이 개통된지 불과 2달여밖에 되지 않았는데도 벌써부터 천안에 소재한 대학들의 통학버스 이용이 줄어들고 고속버스와 철도의 이용률도 감소로 관련 업계들이 울상이라는 소문도 들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천안까지의 수도권 전철 확대는 전국 일일생활권의 꿈을 일상화시키는 데 크게 기여할 것이다. 즉 고속철도나 비행기가 아니어도 보통 사람이 쉽게 수도권처럼 전철로 천안까지 통학이나 출퇴근이 가능한 수도권의 일부로서 천안이 편입된 것이 아닐까? 내년 말이면 이 전철이 아산역을 비롯해 온양온천역까지 연장된다고 하니 인구 50만에 육박한 천안시는 아파트 전단지 광고대로 '서울특별시 천안구·아산구'가 될 판이다.

▲ 드디어 천안에 도착했다.
ⓒ 김정은
좋은 점이 있으면 나쁜 점도 존재하는 게 당연한 세상의 법칙. 이런 저런 생각에 빠진 사이 어느새 유리창을 통해 들어온 따스하고 투명한 봄햇살 때문에 아침 일찍부터 서두르느라 피곤했던 몸이 노곤해지는가 싶더니 어디선가 사람들의 투명한 웃음소리가 들려오는 듯하다.

투명한 것은 날 취하게 한다
시가 그렇고
술이 그렇고
아가의 뒤뚱한 걸음마가
어제 만난 그의 지친 얼굴이
안부없는 사랑이 그렇고
지하철을 접수한 여중생들의 깔깔웃음이
생각나면 구길 수 있는 흰 종이가
창 밖의 비가 그렇고
빗소리를 죽이는 강아지의 컹컹거림이
매일 되풀이 되는 어머니의 넋두리가 그렇다

누군가와 싸울 때마다 난 투명해진다
치열하게
비어가며
투명해진다
아직 건재하다는 증명
아직 진통할 수 있다는 증명
아직 살아 있다는 무엇

투명한 것끼리 투명하게 싸운 날은
아무리 마셔도 술이
오르지 않는다

- 최영미 <사는 이유>


천안행 전철 이용에 대한 이모저모

천안행 전철은 신도림역을 기준으로 일반 전철은 98분(역 대기 시간 불포함) 정도 걸리니 약 1시간 40여분 정도 소요되는 것 같다. 그러므로 갈 길이 바쁜 사람은 시간에 맞춰 급행 전철을 타는 것도 좋다. 급행전철의 장점은 일반 전철보다 빠르지만 첫차가 늦게 출발하고 운행 시간이 일반 전철에 비해 뜸하다는 것이 단점.

일반 전철의 첫차는 신도림역에서 오전 5:22분이고 천안역에서 서울까지 오는 막차시간은 22:56분 구로행이다.

요금 및 노선 등 보다 자세한 정보는 웹서브웨이(http://www.websubway.co.kr)이나 서브웨이월드( http:
//www.subwayworld.co.kr)에서 알아 보면 자세한 정보를 알 수 있다.
선잠에서 깨어 보니 어느새 다음 역이 천안임을 알리는 안내 문구가 보인다. 토요일이라 연구소를 쉬는 아들이 자동차를 가지고 천안역으로 마중나왔다면서 즐거운 표정으로 작별을 고하는 그녀와 헤어진 나는 각원사로 가는 102번 버스를 타기 위해 버스 정류장으로 향했다. 이제부터 2만원으로 하루를 버티는 천안 당일여행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이다.

덧붙이는 글 | 2만원에 떠나는 천안 당일여행 첫번째 이야기입니다. 이 2만원에는 관광지까지 소요된 교통요금과 식사비, 입장료를 모두 포함한 비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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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기업을 그만두고 10년간 운영하던 어린이집을 그만두고 파주에서 어르신을 위한 요양원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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