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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희 삼성 회장(자료사진)
이건희 삼성 회장(자료사진) ⓒ 이종호
삼성 이건희 회장의 프랑스 스키장 슬로프 전세 보도의 파장이 예상 외로 크다. 지난 16일 저녁 처음 외신을 타고 들어왔을 때 정작 이 소식을 다룬 신문·방송은 손가락을 꼽을 정도에 불과했지만, 인터넷 사이트의 관련 기사에는 찬반 댓글이 수백개, 수천개씩 달리고 있다.

그동안 국내에 보도되지는 않았지만 이 회장의 유사 사례는 더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지난 1월 독일에서 만난 한 유학생은 "삼성이 베를린의 유명 문화시설에 막대한 기부금을 낸 뒤, 이건희 회장이 나홀로 관람을 해서 교민사회에 큰 화제가 된 적이 있다"고 소개했다. 이 회장이 외국에 자주 나가는 것은 국내에서와 달리 남의 이목에 신경쓰지 않고 하고 싶은 것을 마음대로 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얘기도 있다.

삼성 관계자들에 따르면 이건희 회장이 한번 외국에 나갈 때면 수십일 전부터 현지에 상황실이 꾸려지는 등 비상사태에 들어간다. 대통령보다 의전과 경호가 한수 위라는 얘기까지 있을 정도이다.

하지만 이 회장의 이런 행태가 꼭 해외에서만 있는 것은 아닌 것 같다. 다만 국내에서는 철저히 비밀에 부쳐져 외부에 알려지지 않을 뿐이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이 회장 집에 초대를 받아 가보니 한국을 대표하는 오페라 가수가 나와 노래를 불러 깜짝 놀랐는데, 출연료가 일반인들의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이었다"고 털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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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사태에 국민들이 높은 관심을 보이는 것은 그동안 베일에 가려져온 이건희 회장의 실체가 일부나마 드러났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이건희 회장 스스로 남과 잘 어울리는 스타일이 아니지만, 삼성도 그동안 이건희 회장을 철저히 신비화해 온 것이 사실이다.

어쨌든 삼성은 상당히 당혹해하고 있다. 애초 3월말로 예정된 이 회장의 유럽 현지법인 방문 계획 자체를 취소하려는 분위기도 한때 엿보였다. 그러나 유럽 방문은 예정대로 진행하되, 프랑스는 제외하는 방안이 유력하게 검토되고 있다는 게 삼성쪽의 설명이다.

이번 사태는 최근 일부 언론에서 '한남동 이건희 가족타운이 세계 최고 갑부 빌 게이츠 집보다 비싸다'고 보도한 것과 맞물리면서 파장을 더하고 있는 것 같다. 11년째 세계 갑부 1위(465억달러)를 지키고 있는 빌 게이츠는 사회적 책임과 관련해 세계에서 가장 기부금을 많이 내는 기업인으로 유명해서, 세계 갑부 122위인 이 회장과 더욱 대비되는 것 같다.

삼성이 국내에서는 사회공헌을 가장 열심히 하는 기업으로 평가받고 있지만, 국내기업의 경우 회사 돈으로 총수 얼굴을 단장하는 것이라는 비판도 만만치 않은 게 현실이다. 참고로 빌 게이츠는 회사 돈이 아닌 개인 돈으로 사회공헌을 한다.

삼성 안에서는 지난 1월말 이건희 회장이 보광휘닉스파크에서 삼성전자 사장단과 함께 스키를 즐긴 것을 계기로 최고경영자들 간에 스키 붐이 일고 있던 터라, 묘한 어색함마저 풍긴다.

당장 삼성으로서는 지난 16일 심혈을 기울여 발표한 '삼성 경영원칙'이 퇴색되지 않을까 걱정한다.

삼성 경영원칙은 최근 투명사회 협약 체결을 계기로 정도경영과 투명경영에 대한 사회적 분위기가 고조되고 있는 가운데 삼성이 '적시타'로 선보인 것이다. 또 그동안 엄청 돈을 들여 조성한 삼성 브랜드 이미지도 일정 정도 상처를 입게 됐다.

이번 사태와 관련한 시각은 엇갈린다. 인터넷에 올라 있는 댓글만 보더라도 이 회장은 그럴 자격이 있다거나, 국력상승의 상징이라는 등의 두둔부터 회사 돈으로, 국제적 망신살이 뻗쳤다는 비난까지 찬반 양론이 팽팽하다.

기업인의 바람직한 행동양식이 고정된 것은 아니다. 시대와 가치관의 변화에 따라 기업과 기업인을 바라보는 사회의 시각도 달라지기 때문이다. 사실 이 회장의 행동을 비판하는 시각도 과거보다는 많이 부드러워진 느낌이다. 그만큼 우리사회도 다양화되고 유연성이 커졌다는 반증이다.

하지만 이번 사안이 여전히 파문을 일으키는 것을 보면 아직도 기업인, 특히 최고경영자는 일종의 공인으로서 우리사회의 도덕적, 윤리적 잣대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못함을 보여주는 것 같다.

그런 점에서 삼성의 행태는 스스로 발표한 경영원칙을 충실히 이행하지 못했다는 생각이다.

삼성이 발표한 경영원칙의 다섯번째는 '글로벌 기업시민으로서 사회적 책임을 다한다'는 것이다. 이는 글로벌 스탠다드로 자리잡아가고 있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언급한 대목이다. 삼성은 이를 위해 현지의 사회·문화적 특성을 존중하고 상생을 실천한다고 다짐했다. 이 규정을 이건희 회장의 행동에 바로 대입해보면, 삼성은 사회 구성원들의 문화와 가치관을 보다 세심하게 배려하지 못한 셈이 된다.

삼성은 세계 초일류기업의 반열에 오르고 있다. 그런 만큼 자신이 몸담고 있는 사회와 그 구성원들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마음이 요구된다. 그것은 말뿐이 아니라 진정으로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이행하는 출발점이다.

덧붙이는 글 | 곽정수 기자는 <한겨레> 대기업 전문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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