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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유명한 유럽도시가 그렇듯 관광지로서의 로마도 일단 넓지가 않아서 보러 다니기가 좋다. 잘 알려진 관광지들이 그만그만한 거리에 모여 있고 스페인광장이니 판테온 광장이니 하는 (그러고 보니 로마에는 유난히 광장이 많다)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들도 동선이 잘 이어져서 그야말로 물병하나 옆에 차고 천천히 걸어 다니기가 아주 좋다.

우리는 느긋하게 로마를 배회하고 다녔다. 피자도 먹고 그림구경도 하면서 미로 같은 골목들을 기웃거렸다. 로마는 마치 ‘내가 한때는 말이야’ 하면서 옛날을 그리워하는 늙은 장수 같은 몰골을 하고 있었지만 유럽을 지배했던 제국의 흔적은 아직도 여러 곳에 남아 있었다.

그 흔적들의 한구석에 서서 귀를 기울이면 갖가지 소리들이 들려 왔다. 수천, 수만 명이 열광하는 함성도 있고, 천국을 약속하는 복음도 있었지만 낮으나 깊게 울리는 신음도 있었다. 런던에서도 파리에서도 듣지 못한 소리들이 로마에서는 환청으로 들려왔다. 아마 십계로 시작되어 쿼바디스와 벤허로 이어진 영화의 추억과 무관치 않을 것이다.

▲ 콜로세움 앞에서
ⓒ 유원진
콜로세움은 영화나 사진에서 하도 많이 보던 것이라 오히려 재미가 덜 했는데 진짜 입장료는 너무 비쌌다. 그때 환율기준으로 일인당 만이천원 정도였는데 에펠탑과 마찬가지로 입장하려는 사람으로 인산인해였다. 필자는 그저 한 오천원 예상을 했다가 매표구 가까이 와서야 돈이 모자란다는 사실을 알고 식구들을 줄 세워놓은 채 환전소를 찾느라 애를 먹었다.

콜로세움 지하철역에 있는 환전소를 찾았으나 여권이 아닌 여행증명서로는 곤란하다고 하는 바람에 온 식구들의 여권을 다 꺼내놓고 설득을 하다가 결국은 콜로세움 입장료 얘기로 마무리를 지었다. 환전 수수료도 비싸 억울했으나 어쩔 수가 없었다. 유로수표는 수수료도 비쌌지만 여러 가지로 아주 불편했다.

콜로세움의 복도는 전시장으로 활용되고 있었고 그 옛날 검투사들이 목숨을 걸고 싸웠을 경기장 바닥은 아직도 발굴과 보수공사를 같이 하고 있었다. 저 공사비용에 우리가족이 일조를 했으되 현장을 본 느낌은 상상에서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했다.

▲ 콜로세움 내부
ⓒ 유원진
폐허를 그대로 보존해 둔 포로로마노 유적이나 넓고 움푹 팬 공터로 변해 버려서 관광객들도 잘 몰라 찾지 않는(그래서 공짜인?) 대전차 경기장은 퇴락의 쓸쓸함과 그 아름다움으로 필자의 걸음을 오래 붙들어 두었다.

천천히 경기장을 걷는 동안 백마 네 마리가 끌던 유다 벤허의 경주마차가 흙먼지를 일으키며 질주하고, 천지를 진동하는 관중들의 함성 소리가 들려왔다. 그 당시 관중석에서도 네로황제가 앉았음직한 중앙 근처의 경사진 잔디밭에 앉았다. 몽상은 언제나 즐겁다.

그 소리는 두 가지 힘의 소리였다. 천년제국이 주체할 수 없는 힘을 풀어내는 소리이자 그 절정에서 인간의 탐욕이 타락으로 치달은 끝에 제국이 무너지기 시작하는 소리였다. 그 소리는 현재를 살아가는 지금도 또 다른 대륙에서 들려오고 있으니 역사는 끊임없이 반복된다.

바티칸 시티의 성 베드로 성당은 그 엄청난 규모와 정교한 아름다움, 지금부터 천년을 더 가도 변치 않을 예술성에 질려 나지막한 한숨이 나왔다. 성당 안에서만 하루를 보낸다 하여도 도무지 다 볼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바닥부터 천장까지 존재하는 모든 것이 성물이요 예술품이었다.

▲ 성당안에서 올려다 본 미켈란젤로의 돔
ⓒ 유원진
천천히 성당을 둘러보는 동안 어디선가 (나중에는 진짜 음악을 틀어 놓았는가 싶어 물어보기까지 했다) 끊임없이 천상의 소리가 들려왔다. 바티칸 성당 바닥 밑에 있는 지하무덤에 이르러서는 경건함에 옷깃을 여미게 되어서 왜 세계의 천주교 신자들이 여기 한 번 오기를 소원하는지 이해가 되었다.

원래는 그리스도의 열두 제자 중 하나인 베드로의 무덤위에 세워진 조그만 성당이 지금의 성 베드로 성당의 기원이라고 한다. 수많은 성인들의 무덤 옆을 지나가면서 신이 아주 가까이 있다고 느껴졌다. 육중한 돌로 만들어진 관 위의 십자가들은 형언할 수 없는 성스러움으로 충만해 있었다. 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바깥세상과 성당 안은 전혀 다른 세계였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못 올라갔는데 지금은 개방이 되어 올라갈 수 있다는 성당 꼭대기의 원형 돔을 나선형 계단을 따라 올라갔다. 미켈란젤로의 작품이라는 돔은 밖에서 보는 것보다 훨씬 높아서 올라가는 데만 이십 분여가 걸리는 데 좁은 벽 틈을 따라 올라가는 동안 미켈란젤로의 위대한 작품 속에 묻혀 있는 것 같아 신기했다. 돔의 내부인 미켈란젤로의 천장화와 밖인 돔 지붕 사이의 틈새 길로 가는 것이니 미켈란젤로의 그림위로 걸어가는 형국이 아닌가. 끝없는 계단으로 이루어진 길은 수많은 순례자들에 의해 닦여져 반들거렸다.

그 규모에 놀라며 올라가는 동안 잔잔히 들려오던 천상의 음악 같던 소리는 점점 잦아들어 갔다. 대신 가슴을 후벼 파는 듯한 신음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앞사람을 따라 가다가 줄이 조금 밀리기에 힘들어 쉬는 척하며 벽에 몸을 기대 귀를 대고 소리를 들어보았다. 필자가 그렇게 하자 뒤에 따라오던 외국인 몇이 따라한다. 관광객들이란 어딜 가나 똑같다.

중세의 암흑기에 신과 교회의 권위에 눌려 신음조차 낼 수 없었던 백성들의 피가 이 엄청난 성당의 벽돌 한 장 한 장에 얼룩져 배어 있다가 인간의 세상을 만나 터져 나오는 소리였다. 신의 이름으로 치러진 십자군전쟁이래 신에의 찬양만으로 완공했다고는 하나 어림없는 소리일 것이었다.

신에 대한 경배의 마음으로 기꺼이 모든 것을 희생했을 독실한 신자들의 찬양소리 뿐만 아니라 다른 신의 이름으로 이곳에서 중노동을 하다가 죽어간 이교도들과 자신이 경배하는 신의 이름아래 찬양과 증오의 갈등과 고통 속에 죽어간 백성들의 한 맺힌 신음소리였다.

역사적 사실인지는 모르나 이 거대하고도 아름다운 성당이 오랜 세월에 걸쳐 완공되는 동안 로마인들은 벽돌 한 장 나르지 않았다고 한다. 어쨌거나 르네상스를 거쳐 1626년 교황 우르바누스에 의해 완공될 때 까지 수백 년 동안에 걸쳐 만들어졌다고 하니 특정 종교를 떠나 인류의 위대한 유산임에는 틀림이 없겠다.

원형 돔의 안팎 사이에 틈을 내어 만든 길이라 나선형으로 올라갈수록 길은 옆으로 누웠고 한사람만 겨우 지나 갈 수 있었다. 내려오는 사람들이 없는 걸로 보아 내려가는 길은 따로 있는 듯 했다.

그 어떤 신이라도 이렇듯 웅장하고 아름다운 곳에만 머무르는 신이라면, 그래서 이것을 만들기 위해 피 흘려 온 수많은 백성의 고통을 외면했던 신이라면 그가 어떤 존재든 그는 틀렸다고 생각했다.

돔 꼭대기에서 내려다 본 로마는 온통 황갈색 바다였다. 에펠탑에서 내려다본 파리의 색깔과 너무 달라서, 그래서 두 세상이 다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로마 시내를 내려다 보다 그늘에 앉아 잠시 쉬는데 까마귀 한마리가 옆에 앉아 나를 빤히 쳐다본다.

▲ 계속 따라와 옆에 앉는 까마귀
ⓒ 유원진
비둘기가 사람과 가까이 지내는 것은 많이 보았으되 까마귀가 사람을 닭 보듯 하는 꼴은 또 처음 본다. 가방을 뒤져 과자부스러기를 주었던가. 하여튼 영원한 종교제국 바티칸 시티에서 만난 까마귀가 이상하게 낯설지 않았다.

▲ 사람들이 뭐하나 까마귀가 쳐다보고 있다
ⓒ 유원진
우리는 바티칸 광장의 긴 회랑에 앉아 만들어 온 김밥을 먹었다. 비둘기들이 어떻게 알고 날아오기에 밥알을 몇 번 주자 그야말로 새까맣게 날아왔다. 밥을 주다가 성당 꼭대기를 올려다보았다. 아까 그 까마귀가 뾰족한 첨탑위에 앉아 내려다보고 있는 것 같았다.

▲ 밥먹는지 어떻게 알고 날아온 비둘기들
ⓒ 유원진
비둘기들에게 먹고 남은 밥을 몽땅 주며 이 아름다운 건축물을 만들다가 죽어간 영혼들과 지금 이 시간에도 서로 다른 신의 이름 아래 싸우다가 죽어가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했다. 그들의 영혼이 저 새들에게 남아 있기라도 하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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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는 것을 직업으로 삼고 싶었으나 꿈으로만 가지고 세월을 보냈다. 스스로 늘 치열하게 살았다고 생각해왔으나 그역시 요즘은 '글쎄'가 되었다. 그리 많이 남지 않은 것 같기는 해도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나' 많이 고민한다. 오마이에 글쓰기는 그 고민중의 하나가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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