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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은 야단스럽게 필 때가 아니올시다. : 개나리
아직은 야단스럽게 필 때가 아니올시다. : 개나리 ⓒ 한성수
우리는 차를 타고 코오롱 아파트 앞을 지나다 활짝 핀 목련을 발견했습니다. 아직 나무 전체가 화려하게 피어서 자태를 뽐내는 것은 아니었지만 뽀얀 우윳빛 꽃잎은 애잔한 사랑을 되새김질하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다 문득 ‘아무렇게나 배를 깔고 누워 사랑하는 사람에게 봄볕이 묻은 편지를 쓰던 스무 살 청년시절이 나에게도 있었나’ 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칩니다.

슬픈 그대 사랑아! : 목련
슬픈 그대 사랑아! : 목련 ⓒ 한성수
우리는 다시 차를 타고 새로운 꽃을 찾아 떠납니다. 그런데 주위가 어두워집니다. 나는 아침 출근길에 보아둔 꽃을 찍는 것을 포기하고, 서둘러 경남도청으로 향합니다. 주위는 캄캄했지만 한줄기 달빛이 우리를 비추고 있습니다.

아내는 춥다며 한사코 차안에서 나오려 하지 않습니다. 할 수 없이 나는 혼자서 천천히 걸음을 옮깁니다. 어슴푸레한 달빛 아래 샛노란 산수유 꽃이 피어 있습니다.

샛노란 비닐우산을 닮은 산수유 꽃
샛노란 비닐우산을 닮은 산수유 꽃 ⓒ 한성수
그 옆에는 흰 종이를 찢어서 입혀 놓은 것 같은 매화가, 달빛을 받아서 눈꽃처럼 빛나고 있습니다. 매화 끝에는 보름달이 걸려 있는데 매화인지 달인지 분간이 되지 않습니다.

아내가 슬며시 다가와 매화 옆에 섭니다. 우리는 팔짱을 꼭 끼고 사람들이 드문드문 보이는 도청 안을 천천히 걷습니다. 아내는 차가운 바람에 연신 옷깃을 여밉니다.

매화나무 끝에 보름달이 걸려 있네요!
매화나무 끝에 보름달이 걸려 있네요! ⓒ 한성수
돌아오는 길에 차를 세우고 길가에 있는 목련을 살펴보지만 아직 도끼날처럼 꽃봉오리만 내밀고 있을 뿐 화려하게 피어 있지 않았습니다.

아내는 “반찬을 하다가 그대로 왔다”며 “빨리 집에 가자”고 성화입니다. 나는 다시 몇 그루의 목련나무에 카메라 초점을 맞추어 봅니다.

도낏날을 닮은 목련 꽃망울
도낏날을 닮은 목련 꽃망울 ⓒ 한성수
길가에 있는 어느 집 대문 앞에는 동백꽃이 피어 있습니다. 봄꽃들에 밀려나지만 그 품위는 잃지 않고 있습니다.

“여보! 겨우내 차가운 대지에서 그 기운들을 뿌리에 모았다가 힘겹게 가지 끝으로 밀어 올려 피워낸 것이 봄꽃이란 말이오. 그런데 기왕 이렇게 꽃을 찾아 나왔으면 그 정취를 즐겨야지, ‘집에 가자’고 성화를 부려서야….”

봄꽃에 밀려나는 서러운 동백
봄꽃에 밀려나는 서러운 동백 ⓒ 한성수
이런 내 말에 아내는 서운했는지 이내 토라져서 고개를 돌립니다. 나는 고개를 돌린 아내의 손을 꼬옥 잡습니다. 꽃구경을 와서도 아이들 저녁 반찬걱정을 하는 아내가 못내 안쓰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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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주변에 있는 소시민의 세상사는 기쁨과 슬픔을 나누고 싶어서 가입을 원합니다. 또 가족간의 아프고 시리고 따뜻한 글을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글공부를 정식으로 하지 않아 가능할 지 모르겠으나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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