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 한국사회 탐구'라는 부제가 달려 있는, 지승호의 인터뷰 모음집이다. 이 사람이 인터뷰를 주로 모아둔 사이트를 보았던 기억과 관련된 약간의 호기심, 그리고 김동춘, 한홍구, 홍세화 등등에 대한 인터뷰라는 설명에서 생긴 호기심으로 인해 이 책을 골라보게 되었다. 이 사회와 국가의 문제점에 대한 이해를 조금 더 하게 된 것 같다는 만족감을 주는 책이다.
총 9명에 대한 8개의 인터뷰 (신강균, 최원석은 한 세트로 되어 있다)에 기본적으로 공통적인 부분은, 현 정권의 문제, 그리고 '노빠‘라 칭해지는 친대통령, 여당 집단의 문제, 그리고 (당연히) 수구보수 집단의 문제, 그리고 조선일보의 문제에 대한 인터뷰어 지승호와 인터뷰이들의 의견교환이다.
종종 주제에 따라서 민주노동당이나 다른 하부 집단들에 대한 이야기도 있다. 그리고 결론적으로, 문제의 키워드는 실력과 자신감이라는 것으로 나온다. 여당이나 야당이나 대통령이나 조선일보나 실력이 없고, 그 때문에 자신감이 없이 때문에 자의건 타의건 반칙이나 하려고 한다는 게 문제라는 것이다.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겠지만, 정치는 주체가 "잘할 수 있는 것을 잘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앞의 잘할 수 있는 것을 늘리는 것, 그러니까 실력과 그와 연관되는 콘텐츠를 다양하게 하는 것도 문제지만, 그것이 많건 적건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당당하게 그리고 현명하게 잘 해내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인터뷰 이들의 대체적인 의견은 자기가 잘할 수 있는 것이 얼마나 되는지 때로는 과대망상, 때로는 열등의식에 의한 위축으로 잘 파악을 못하고 있고, 그나마 할 만한 것도 멍청하게 잘 집행을 못하고 있다는 쪽으로 기운다. 특히 대통령이 말이다.
여러 사람들이 그렇게 입을 모은다. 노무현 개인은 매우 매력이 있는 인물이라고. 그처럼 재미있는 정치인을 보기 결코 쉽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가 대통령이 되어서 여러 가지 문제가 있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김어준이 말했듯이 노무현 대통령(개인 말고, 그 위치)은 분명 이 사회의 주체들이 가진 시대정신의 체현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지난 대선을 두고 다른 가정을 해보는 것처럼 의미 없는 일은 없다고 본다.
하지만, 문제는 그 시대정신이라는 것 자체가 '잘할 수 있는 것을 잘 하는' 기틀을 만들기에는 역부족이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이 이야기는, 아직도 정치적인 성숙도가 좀 딸리는 게 아닌가 하는, 어쩌면 냉소적일 수도 있고 오만해 보일 수도 있는 말이다. 김동춘의 다음과 같은 시스템론도 이와 연결될 듯하다.
"저는 미국사회에 대해 대단히 비판적이지만, 미국사회가 세계를 지배하게 된 데는 그런 부분들이 있다고 버는 보고 있어요. 곳곳에 전문가들이 있습니다. 그 분야에 대해선 완전히 통달한 사람들이 곳곳에 포진해 있어요. 그런 부분들이 엄청난 거죠. … 그러니까 인프라 구축 작업에 대해 얼마만큼 관심과 배려가 있는가에 따라서 그 사회가 선진사회냐, 후진사회냐를 판단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고 봐요."
사실 새로운 이야기는 절대 아니지만, 실력과 자신감의 기본이 부족함을 학자인 김동춘은 이렇게 풀었던 것이다. 김동춘의 인터뷰는 학자로서의 아이덴티티 - 깐깐하고 선비적이기까지 한 - 가 잘 드러나는 글이었다.
하지만, 또 다른 학자인 한홍구의 인터뷰는 다소 발랄했다고 하겠다. 이 책에서 봤던 이야기 중 가장 놀라운 이야기는 한홍구의 다음과 같은 이야기였다.
"한국노동운동사에서 최대의 사건이었던 7, 8, 9 월 노동자 대투쟁 당시에 현대노동자들 몇 만 명이 몰려나간 게 세계노동운동사에서 유례가 없던 사건 아닙니까?…그런데 그때 노동자들이 내세웠던 구호가 뭔 줄 압니까? '노동해방, 노동자도 인간이다, 근로기준법 준수하라, 노동조합 인정하라, 임금인상' 이런 거 다 아니에요.
구호 1번 '두발 자율화', 구호 2번은 구호 1번이 두발자율화이니까 당연히 '복장 자율화', 이게 한국의 현실이었다구요."
그게 87년 한국의 현실이었다. 그렇게 시작한 사람들이 세계 패션계에서 리더로 자리 잡기에는 10살 미만에서부터 보그나 엘르같은 잡지를 보고 자랐던 애들에 비해서는 매우 어렵지 않을까? 그게 한국의 수준이라면, 87년에 겨우 두발, 복장 자율화를 쟁취했던 노동운동이 지금 대의원대회에서 약간의 폭력소요를 겪는 건, 냉소적으로 말해서 당연히 거쳐야 하는 수순 정도가 아닐까?
진보적인 사회운동마저 후진적인 모습을 내포하고 있는 현실, 이 사회의 수준-물질적인 것이 아닌 의식적, 이념적, 정서적인 수준-이 이 정도인 이유에 대해 감을 잡을 수 있게 해 준다.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에서 보인 병영과 같은 78년 고등학교의 모습도 함께 겹쳐졌다.
가장 재미없었던, 하지만 그래도 감동은 깊었던 홍세화씨의 인터뷰였다. 누구 말대로 그는 자유주의자고 로맨티스트이며 70년대 한국에서 2000년대 한국으로 이민을 온 외부인이라 하겠다. 그래서 선비보다 고지식하고, 순수하다. 그가 바라본 노 정권은 "개혁이 혁명보다 어렵다고 한다. 이상과 현실 사이, 객관적 조건과 주체적 역량 사이의 긴장과 함께, 현 단계 대중의 의식과 끊임없이 긴장해야 한다. 노 정권은 다만 수구신문들과 긴장하고 있을 뿐인데, 그것으로 개혁성이 담보된다는 양 착각하고 있는 듯하다"와 같은 문제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자신이 잘할 수 있는 개혁이 뭔지 모르고, 그 콘텐츠를 프로그램화 하지 않으면서, 당장 눈앞의 상대와 맞장 뜨는 것만을 최고로 생각하는, 그래서, 딱 '싸우면서 커야 하는 애들'의 수준이라는 것이다.
네 번째 인터뷰이는 진중권. 인터뷰 말미에 그가 스스로를 이진경과 비교하면서 했던 말- 이진경은 체계적인 사유를 하는 반면, 자신은 산만하다고 한다. 그가 꼬집어대는 이 사회의 문제점들 - 좌파 우파를 안 가리고 - 은 대체로 옳고, 그 전방위적 활동에 내재된 일관됨도 알 것 같은데, 그의 어투나 문체가 아닌 그의 사고 자체가 지극히 산만한 게 문제라는 것이다.
진중권의 인터뷰에서는 소위 ‘노빠’들의 반칙에 대해서 많이 인식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래도 그들 역시 시대정신의 체현체라고 보기 때문에, 문제점을 비관적으로만 볼 필요는 없다고 본다.
진중권보다 더 산만한 김어준의 인터뷰는, 정말 산만했다. 손석희의 인터뷰는 꽤나 건조했으며 정욱식의 인터뷰는 가장 소박했고, 신강균-최원석의 인터뷰는 이미 사건이 터진 이후여서 그런지, 진정성이 조금은 반감된 인터뷰라고 하겠다.
이 책에 나오는 인터뷰들은 대체로 2004년 2월에서 7월 사이에 있었던 거다. 이 사실이 이 글의 매력을 더하는 면도 있고, 감하는 면도 있다. 인터뷰라는 글이 가진 매력과 한계가 여기가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