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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기원

ⓒ 이기원
작년에 산딸기 따먹던 곳도 아직 눈이 덮여 있습니다. 봄을 맞는 산새들의 지저귐과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계곡물 속에서 가재를 찾아보자는 기대는 접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비탈길을 한참 오르던 준수 녀석이 눈 덮인 계곡으로 내려갔습니다. 광수도 따라 내려갔습니다.

ⓒ 이기원
두 녀석은 얼음이 깨지지 않는다는 것을 조심스럽게 확인한 뒤 눈을 뭉쳐 눈싸움까지 했습니다. 삼월 하순에 눈싸움이라니요. 하긴 진달래가 핀 뒤에 눈 내리던 정선군 신동읍에 살던 때의 기억을 되살리면 특별한 일은 아닙니다. 그해에 강원도로 처음 부임하신 제주도 출신 선생님은 여름까지 감기를 달고 살았습니다.

겨울을 세브란스 병원에서 고스란히 보낸 준수에게는 삼월 하순의 잔설을 뭉쳐서라도 눈싸움을 하고 싶었던 모양입니다. 감기 걸리면 안 된다며 말리는 아내의 성화에도 불구하고 녀석은 ‘조금만 더’란 말을 입에 달고 나올 줄을 모릅니다.

비 내린 뒤 물에 젖은 길을 걷는 것도 미끄럽다며 부담스러워하던 녀석이 이제는 잔설이 남아 있는 얼음판 위에서 눈싸움을 할 정도로 다리에 힘이 붙었습니다. 그래도 동생 광수에 비해 던지는 힘은 많이 약합니다. 하체가 상체를 받쳐주는 힘이 약하기 때문입니다.

ⓒ 이기원
힘은 떨어지지만 정확도는 광수보다 낫다며 큰소리를 칩니다. 동생보다 못하다는 걸 인정하고 싶지 않은 녀석의 자존심입니다. 있는 힘 다해서 던지는 데만 열심인 광수는 형을 제대로 맞추지 못했습니다. 정확도가 앞선다는 준수도 제대로 맞추지 못하는 건 마찬가지입니다. 광수가 날아오는 눈을 요리조리 피하기 때문입니다.

삼십 분 쯤 지났을까요. 아내의 인내력이 한계에 이르렀습니다. 이제 그만하고 올라오라고 소리쳤습니다. 4개월 동안 병원에서 준수를 간호했던 아내는 준수의 건강에 대해 근심이 많습니다. 어쩌다 준수 녀석이 어디 아프다고 하면 아내가 먼저 흔들립니다.

엄마의 성화에 못 이겨 주차장을 향해 내려오는 준수와 광수는 연신 뒤를 돌아보며 아쉬워했습니다.

덧붙이는 글 | 제 홈페이지 http://www.giweon.com에도 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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