윗글은 <가상역사 21세기>를 읽고 2080년대를 살고 있는 삼십대 초반 직장인의 일기를 가상으로 만들어 본 것이다. 책을 표현하는데 적절한 형식을 고민하던 중 나도 한번 가상으로 미래에 대한 글을 써볼까 하는 생각에 책의 내용을 바탕으로 일기를 써보게 되었다.
책을 펼치면 먼저 저자의 프롤로그에서 황당함과 흥미로움을 동시에 느낄 수 있다. 이 책의 프롤로그가 2112년 3월에 써졌다는 사실을 확인했을 때 나는 이미 책 속에 빠져들고 있었다. 미래에 대한 예측과 비전은 사람마다 다양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과거에서 현재로 흘러온 역사의 큰 줄기를 바탕으로 하고 현재 우리가 사는 이 세계의 정치, 경제, 사회 그리고 과학에 이르는 방대한 인류문화의 현주소를 이해한다면 누구든 실현가능한 미래의 모습을 그려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가상역사 21세기>에서도 객관적으로 미래에 있을 법한 생명공학의 진보, 핵전쟁, 전 세계 주식시장의 붕괴로 인한 대혼란 그리고 21세기 말에 보이는 네트워크화 된 인간생활과 우주정책과 환경문제를 다루고 있다.
정말 오랜만에 책을 읽는 내내 책 내용에 푹 빠졌다. 21세기 말에는 현대의 각 가정에 컴퓨터와 TV가 필수품이듯이 가상체험기가 대부분 가정에 보급된다는 내용이 있는데 이 가상체험기는 인간에게 현실과 거의 구분하기 힘든 체험을 경험할 수 있게 한다고 한다. 실상 나에겐 이 책이 가상체험기 역할을 했다. 책을 통해 2005년을 살고 있는 내가 21세기 전반을 넘나드는 가상체험을 했고 책을 읽고 있을 때에는 어김없이 2100년대를 살고 있었다.
작가는 21세기에 발생할 수 있는 많은 사건들을 단순히 시간 순서대로 서술하지 않았다. 생명공학, 핵전쟁, 대혼란, 재편된 세계질서, 네트화된 사회, 우주와 환경이라는 굵직한 범주 속에는 사건에 흥미를 더하는 수많은 미래의 가상인물들(영웅도 있지만 시대에 크게 부각되지 않은 사회구성원들이 더 많았다)과 나눈 인터뷰와 그들의 자서전 내용 그리고 가상의 뉴스와 가상의 통계들이 조화를 이루고 있고 이들 사건들은 서로 밀접히 연관되어 있어 내용 구성의 치밀함이 돋보인다. 특히 2016년 핵전쟁에서 영웅이 된 인도의 의사 쿠르마 박사의 이야기나 2043년 멕시코의 여성 대통령인 베니타에 대한 내용에서는 작가의 뛰어난 글솜씨를 확인할 수 있었다.
분명 이 내용에 대해 여러 면에서 비판할 수 있고 이의를 제기할 수도 있다. 중국이 미국을 제치고 세계 최강국으로 부상한다는 것이나 한국이 중국의 경제구도 속에서 일본을 추월한다는 내용 그리고 에너지 문제도 핵융합발전으로 간단히 해결하고, 중동에는 평화가 정착하고, 유전자 맞춤형 아기가 현실화 된다는 미래상은 내 개인적인 관점과는 좀 거리가 있다.
하지만 미래의 100년을 이렇듯 흥미롭게 서술해 놓은 책에 분석적인 비판을 해보겠다는 생각은 책을 중간쯤 읽었을 때 접어버렸다. 한 편의 영화를 보듯이 나도 모르는 사이 그냥 책에 흠뻑 빠져들었기 때문이다. 이 책은 읽기의 즐거움을 충분히 만끽할 수 있는 책이다. 게다가 다양한 사회적, 역사적, 과학적 지식 또한 충분히 얻을 수 있다는 점에서 일석이조의 효과를 얻을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