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한국방송의 수요기획 프로그램에선 “살타첼로의 한국연가”가 방영되었는데 “살타첼로”는 색소폰, 피아노, 첼로, 더블베이스, 드럼으로 이뤄진 독일인 재즈 실내악단이다. 그런데 이들은 서양음악이 아닌 우리의 민요 ‘옹헤야’를 연주하는데 청중들은 신나게 손뼉을 치며, 한술 더 떠서 연주자들은 청중에게 ‘옹헤야’를 외치게 하고, 청중들이 적극 호응한다.
‘옹헤야’ 외에 ‘정선아리랑’, ‘밀양아리랑’, ‘강강술래’도 구성지다. 그들은 한국의 음악에 빠진 나머지 청중에게 한국의 음식, 자연, 사람들까지 극찬한다.
음악을 배우는 아이들에게 ‘안녕하세요?’, ‘고맙습니다’를 가르치고, 손기정 이야기에 ‘마라톤맨’이란 음악을 작곡하여 ‘손기정기념사업회’에 헌정했다는 얘기도 들려준다. 우리가 우리 음악을 외면하는 동안 독일인들은 우리 음악에 매료되고 잇는 것이다.
그리고 얼마 뒤 나는 한 장의 음반을 들어본다. 그런데 스피커에서는 갑자기 서양의 유명한 팝송 ‘OB-RA-DI OB-RA-DA'가 해금합주로 흥겹게 연주되고 있다. 물론 살타첼로가 연주했던 ’옹헤야‘도 들린다. 그런가 하면 첼로와 피아노 산조 ’엇모리‘도 따뜻한 느낌을 준다.
음반 설명을 찾아보니 국악 음반을 전문으로 내놓는 신나라(회장 김기순)의 <젊음의 향연 신명나는 우리가락, 우리>(아래 <우리>)라는 이름이 붙어 있다.
그리고 설명은 당돌하게도 “당신은 국악이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아니 국악을 들었을 때 무엇을 느끼는가?”라는 질문으로 시작한다. 그러면서 우리의 전통음악이 예전 우리가 생각했던 무겁고, 이해하기 어려운 음악이 아니라 온몸으로 즐길 수 있는 음악이라고 선언한다.
이 음반 <우리>는 도덕, 윤리 교과서 같은 의무감이 아니라 누구나 이해하고 즐길 수 있도록 국악에 팝과 재즈와 오케스트라를 접목시킨 젊은 감각의 퓨전음반임을 강조하고 있다.
사실 나는 퓨전이라는 말에 상당한 알레르기를 가지고 있다. 예전 많은 사람들이 퓨전을 외치면서 실은 우리의 전통문화를 서양문화가 돋보이도록 하는 보조 장치 정도로 격하시키는 것을 보아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 곡, 한 곡을 들으면서 이런 생각은 단순한 기우,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보고 놀란다”임에 불과함을 실감한다. 이 음반은 우리 음악을 서양악기로, 서양음악을 우리 악기로 연주하면서 문화의 아름다운 교류를 이루고, 우리 음악을 더욱 풍성하게 만든다는 뿌듯함을 안겨주고 있음이다.
전통문화의 발전을 위한 기본적인 원칙은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이란 생각이다. 그저 옛것을 고집하기만 해서도 안 되며, 그렇다고 새 것을 위해 옛 것을 헌신짝 버리듯 하는 것도 문제인 것이다. 실제 전통문화를 발전시킨다며, 새로운 창작을 치기 정도로 격하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새롭게 발전시킨다면서 전통을 짓밟기까지 하는 경우를 우리는 보아왔다.
그러나 이 음반에서 두 가지 모순을 극복하려는 모습을 감지한다. 그러면서 우리의 아름다운 전통음악에 누구나 쉽게 빠져들 수 있도록 이끌고 있다.
음반의 맨 처음엔 드라마 ‘허준’의 주제곡으로 잘 알려진 ‘불인별곡(不仁別曲)’을 해금실내악단 ‘이현의 농’이 해금과 피아노로 아름다운 협연을 만들어 낸다.
이어서 스페인의 대중음악으로 영화 ‘화양연화’ 삽입곡으로 쓰인 ‘Quizas Quizas Quizas’와 해금실내악단 ‘이현의 농’이 클라리넷과 해금으로 애잔하고 목가적으로 풀어내는 유재하곡 ‘사랑하기 때문에’ 그리고 우리의 전통음악 산조 ‘엇모리’를 첼로와 피아노로 풀어내는 곡들이 이어진다.
이 밖에 실내악단 ‘어울림’의 ‘젊음의 대학로’, ‘시애틀 재즈연주단’의 ‘옹헤야’, 해금실내악단 ‘이현의 농’이 피아노와 해금으로 합주한 ‘밤은 잠들지 않는다Ⅱ’, ‘시애틀연주단’이 연주한 ‘고향의 봄’, ‘이현의 농’이 해금, 아쟁, 장고, 마라카스로 합주한 ‘OB-RA-DI OB-RA-DA’, 두레패 사물놀이의 신모듬 ‘놀이’, 북한의 김현희가 피아노로 연주한 ‘아리랑을 주제로 한 변주곡’ 따위가 실려 있다.
우리는 누구인가? 바로 한반도에서 태어나고 자란 배달겨레 아니던가? 그런데도 독일의 재즈 실내악단이 우리 음악에 푹 빠져 있을 때 우리는 우리 음악을 외면한다. 하지만 이렇게 우리 음악을 외면하는 모습을 꼭 나무랄 수만은 없음이란 생각이 든다. 그 까닭은 그동안 교육과 언론이 우리 음악을 먼저 외면해버리고, 전통음악인들도 대중에게 다가가려는 노력이 부족했다는 평가를 받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 그런 변명도 통하지 않는다. 이렇게 노력하는 많은 국악인들이 있고, 또 그 노력을 받아 음반으로 내놓는 신나라 같은 음반사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 이제라도 이 한 장의 음반으로 우리의 음악을 접하는 노력을 기울이고, 독일인이 아닌 배달겨레 우리도 국악의 매력에 흠뻑 빠져보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