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대전 선병원에 마련된 28일 숨진 고 황대규군 빈소.
대전 선병원에 마련된 28일 숨진 고 황대규군 빈소. ⓒ 윤형권
가슴이 찢어지는 칠흑의 슬픔 속에서 피어나는 백련처럼 향기롭고 아름다운 이야기가 있습니다.

지난 1월 21일 대전시 용문동 유등천에서 얼음지치기 놀이를 하다 물에 빠진, 한동네에 사는 어린이를 구하고 형은 그 자리에서 사망했고, 동생은 의식불명 상태에 빠진 일이 있었습니다.

형이 죽은 지 70여일 후인 지난 27일 오후 8시경 동생도 끝내 형을 따라 영면의 길을 떠났습니다. 그리고 부모는 아들의 시신을 한 의과대학에 기증하기로 했습니다.

한 생명을 구하고 죽은 두 사람. 그리고 아들의 시신을 의과대학에 기증한 부모. 이보다 더 슬프고도 아름다운 일이 세상에 또 있겠습니까?

지난 1월 21일 오후 5시경 대전시 용문동 수침교 부근의 유등천. 황민규(갈마중 3학년), 대규(갈마중 2학년 재학 중) 형제는 평소 가깝게 지내던 한 동네에 사는 강명철(가명·탄방초 3학년), 민철(가명·탄방초 4학년) 형제 이렇게 넷이서 얼음지치기 놀이를 하고 있었습니다.

한 10분쯤 지났을까, 갑자기 앞에서 미끄럼을 타고 있던 강민철군이 소리를 질렀습니다. “앗 안돼!” 외마디 비명과 함께 강명철군이 얼음 속으로 빨려들어 간 것입니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입니다.

민철군은 뒤에 있던 황군 형제에게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황군 형제는 재빨리 민철이를 뒤로 가게 하고 얼음 밑으로 빨려 들어가는 명철이의 손을 잡아당겼습니다. 그러나 황군 형제가 몸부림칠수록 얼음을 깨져 나가 그만 황군 형제도 명철이와 함께 차디찬 얼음장 밑으로 빠져버렸습니다.

주변에 도움을 요청할 겨를이 없었습니다. 앞에서 명철이의 손을 잡고 있던 민규가 명철이의 허리를 잡고 머리 위로 들어올렸습니다. 가장자리에 있던 민규는 점점 유등천 한가운데로 미끄러져 들어가면서 가슴까지 찼던 물이 목까지 올라왔습니다. “명철아! 어깨를 밟고 올라가!” 민규는 명철이를 간신히 얼음 위로 들어올렸습니다.

이때 함께 물에 빠졌던 동생 대규는 얼음 속에서 나오려고 허우적거리고 있었습니다. 이를 본 형 민규는 동생을 구하려고 손을 내밀었습니다. “대규야! 내 손 잡아! 꽉 잡아!”

민규는 점점 힘이 빠져 나갔지만 대규를 구하려고 사력을 다했습니다. 차디찬 얼음이 형제를 삼키려고 했습니다. 형제는 죽음과 싸우며 점점 희미해지는 의식 가운데 단란한 가족을 생각했습니다.

비록 가난했지만 우애가 남다른 형과 동생, 택시운전을 하시면서 늘 가족들 기를 살려 주려고 애쓰시던 아버지, 검소한 살림을 꿋꿋하게 해나가시는 어머니, 그리고 막내 여동생.

형제는 이렇게 죽어갔습니다.

한참 후 응급구조대는 이미 얼음보다 더 싸늘해진 민규와 대규를 건져냈습니다. 황민규군은 병원에 도착하였으나 사망한 상태였습니다. 동네 후배와 형을 구하려던 동생 대규는 의식불명 상태에 빠졌습니다.

형 민규를 하늘나라로 먼저 보낸 대규는 아버지 황길성(택시기사 49세)씨와 어머니 김영란(회사원 41세)씨의 애절한 소망도 마다하고 형을 따라 돌아오지 못할 길을 떠났습니다. 2005년 3월 28일 저녁 8시 경입니다.

“평소 대규와 민규는 우애가 깊었습니다. 사고가 나던 날은 택시를 운전하다 잠시 집에 들어와 라면을 끓여먹고 쉬고 있었는데, 민규와 대규가 강군 형제와 함께 우체국에 컴퓨터 게임을 하고 온다고 나갔습니다. 그게 마지막이 될 줄은 몰랐습니다.”

황대규군의 아버지는 두 아들의 마지막 모습을 담담하게 말했습니다. 대규와 민규는 집에 컴퓨터가 없어서 가까운 우체국에 있는 컴퓨터로 게임을 하러 가끔 갔다고 합니다.

아버지 황길성씨는 고개를 숙이며 말합니다. “집에 컴퓨터만 있었더라도 이런 일이 없었을 것입니다.”

황민규, 대규군의 아버지 황길성씨와 어머니 김영란씨는 기자와의 인터뷰 중에도 울지도 않았습니다. 두 아들을 잃은 충격이 너무 크기 때문에 슬픔조차 느끼지 못해서 일까요.

아닙니다. 한 생명을 구한 두 아들의 의로운 죽음에 의연해 하고 있는 것입니다.

한편 형제가 다니던 중학교 정대용 교장선생님은 “지난 1월 21일 형의 장례식 비용도 없어서 학생들과 주변의 도움으로 가까스로 장례를 치렀다”며 동생의 장례비와 3천만원 가까운 병원비를 걱정했습니다.

우리 가슴에 씨앗 하나 심어 놓고
의로운 소년 고 황민규군의 명복을 빌며

강바람 매섭던 날 저녁
차가운 유등천 얼음에 빠져 애태우던
한지붕 이웃사촌
어린 동생 구하려다

동생을 구해놓고
얼고 지친 제몸을 추스리지 못해
얼음장 아래로 떠내려간
황민규 군

끝내 나오지 못하고
차가운 몸으로 구조되어
잃은 숨 찾지 못하고
두 눈을 뜨지 못하였네

세상 사람이 울고
산천 초목이 떨며 울었으니
하늘도 무심하여
흰구름만 떠 보내고
강물도 무심하여
소리없이 흘러만 가네

고인의 의로운 죽음
살신성인 이외는
설명할 언어가 없어
삼가 황민규 군의 명복을 비옵니다.

님의 고운 정신
우리 가슴 속
씨앗으로 묻혀
푸른 싹 틔우고
뿌리 내려
오래 오래 자라게 하소서!
/ 김명아(전 갈마중 교감)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90,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나무를 깎는다는 것은 마음을 다듬는 것"이라는 화두에 천칙하여 새로운 일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