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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이 30일 오전 청와대에서 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으로부터 새해 업무보고를 받기위해 대화를 나누며 회의실로 향하고 있다. 오른쪽은 정우성 외교보좌관.
노무현 대통령이 30일 오전 청와대에서 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으로부터 새해 업무보고를 받기위해 대화를 나누며 회의실로 향하고 있다. 오른쪽은 정우성 외교보좌관. ⓒ 연합뉴스 김동진

노무현 대통령이 30일 외교통상부 업무보고에서 동북아 평화를 거론하면서 또 다시 '동북아 균형자론'을 강조했다.

노 대통령은 이날 외교부로부터 업무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우리 외교는 동북아 질서를 평화와 번영의 질서로 만들기 위해 역내 갈등과 충돌이 재연되지 않도록 균형자 역할을 수행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노 대통령이 동북아 균형자론을 설파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이미 지난 2월 25일 취임 2주년 국정연설과 3월 22일 육군 제3사관학교 졸업식 등 공식 연설에서 서너 차례 언급을 했다.

동북아 균형자론에 담긴 의미

그러나 노 대통령이 지금 이 시점에서 동북아 균형자론을 다시 끄집어낸 것은 시기적으로나 대외적 환경을 감안할 때 결코 예사롭지 않은 대목이다.

외교부 업무보고 시점에 때 맞춰 NSC(국가안전보장회의) 사무처가 '평화의 균형자, 새로운 동북아 시대를 여는 참여정부 구상'을 발표하고, 특히 외교안보 분야의 고위 관계자가 이날 '배경설명'을 위한 기자간담회를 자청해 그 의미와 배경을 설명한 것도 이를 뒷받침한다.

노 대통령은 지난 3월 22일 육군 3사관학교 졸업식 연설에서 "이제 우리는 한반도뿐만 아니라 동북아시아의 평화와 번영을 위한 균형자 역할을 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불안정한 동북아 정세에서 안정과 평화 보장의 질서를 형성하는 데 한국이 '적극적인 역할'을 수행하겠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정부 고위관계자가 30일 백그라운드 브리핑에서 "한·중·일 3국은 동북아의 공동번영을 성취해가기 위한 숙명적 동반자로서 협력과 통합의 질서를 만들어낼 책무가 있고, 이런 새 질서를 열어나가기 위해 한·중·일 관계도 냉전기 진영외교와 상호 대결의 틀에서 벗어나 열려있는 안보협력으로의 사고 전환이 필요하다"고 강조한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현재 동북아 정세는 미·일 동맹축이 중·러를 견제하는 한편으로 북핵문제와 관련 북한을 강하게 압박하는 형국이다. 그런데 동북아 균형자론은 한국이 미·일에 치우친 외교의 틀에 더이상 갇혀 있어서는 안된다는 인식에서 출발한다. 노 대통령은 미·일과 북·중·러 사이에 '균형'을 잡아야 한다는 확고한 인식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 고위 관계자가 이날 "균형은 참여정부의 중요한 외교안보 가치"라고 개념 정리한 것도 이같은 관측을 뒷받침한다.

이 고위 관계자는 "참여정부의 동북아 균형자론은 열강의 패권경쟁의 장이었던 근대 한국사에 대한 통절한 반성과 동북아 평화 번영이라는 미래 비전이 현재의 종합적 국가역량과 융합되어 제시된 전략이라고 할 수 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즉, 동북아 균형자론은 과거에 대한 반성과 미래의 비전, 그리고 현재의 국가 역량이 '3위일체'로 융합된 전략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누구보다도 떳떳하게 지역평화를 말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전략은 현재의 동북아 질서는 여전히 불안정하고 불투명하다는 인식에서 출발한다. 따라서 이 지역에서 장기간 지속되어온 갈등을 화해로, 대립을 협력으로 전환하는 '모멘텀'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앞서의 고위 관계자는 "대한민국은 이를 위한 적극적이고 역동적인 행위자로서, 그리고 역내 국가간에 조화를 추구하고 평화번영을 촉진하는 주체로서의 역할을 해나가려고 한다"면서 "이것이 바로 동북아 균형자다"고 규정했다.

그러나 미래의 비전만으로 냉엄한 국제외교 현장에서 현실적 힘을 갖기는 무망하다. 그렇다면 참여정부가 동북아 균형자론을 전략으로 제시할 수 있는 근거는 무엇일까. 바로 우리의 평화세력으로서의 과거와 현재의 종합적 국가역량이다.

이 고위 관계자는 "우리는 전쟁을 추구해본 적이 없는 전통적 평화세력으로 누구보다도 떳떳하게 지역평화를 말할 수 있다"면서 "이미 세계 10위권의 중견 경제력을 확보하고 있고, 자위적 국방역량과 안보협력을 확충해가고 있으며, 한반도 평화정착의 중심세력으로서 역할을 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또 지속적으로 증진돼온 역내 국가와의 호혜협력 관계도 균형자 역할을 가능하게 하는 외교적 기반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즉, 중화(中華) 패권주의와 일제(日帝) 군국주의라는 패권주의 전력이 있는 중·일과 달리 한국은 '동북아 평화'를 얘기해도 그 진정성을 의심받지 않는 유일한 동북아 국가라는 것이다.

그러나 '평화의 진정성'을 의심받지 않는 것만으로 한국이 동북아의 균형자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천진난만'한 인식과 과대한 낙관주의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이를테면 '동북아 균형자론'은 동북아 패권을 놓고 한판 대결을 벌이고 있는 중국과 일본을 겨냥한 것이라는 분석이 적지 않다. 더욱이 민족의 존망이 걸린 북핵 문제를 풀어나가야 하는 우리 입장에서는 남북한과 중·일간의 화합과 공존의 길을 모색하는 것은 필수적이다.

한·미 동맹은 어떻게 될까

따라서 한국이 동북아에서 평화의 균형자 역할을 하려면 중국을 적대적으로 보거나 잠재적 위협요인으로 보는 기존의 냉전적 시각과 편견은 버려야 한다는 것이 노 대통령의 기본 인식인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 이미 우리 정부는 최근 방한한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에게 "미국이 동북아의 대결적 구도를 전제하고 한국에게 그 한편에 가담하라는 것은 한국의 이해에 맞지 않는다"고 피력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미국은 여전히 중국을 가장 강력한 잠재적 위협요인 중의 하나로 간주하고 전세계적인 전략을 짜고 있는 실정이다. 따라서 미국의 이해관계와 한국의 이해관계가 상충되는 부분을 어떻게 조정·타협해 나가느냐가 관건이다.

우리 사회의 보수층과 미국의 이런 '의심'을 의식해서인지 앞서의 고위 관계자는 "참여정부는 균형자 역할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한·미동맹을 기본 토대로 삼는다"고 전제하고 "동북아 균형자론이 마치 기존 한·미동맹을 부정하고 이완시킨다는 일부의 주장은 잘못된 것이다"고 강조했다.

이 관계자는 "공고한 한·미동맹을 바탕으로 동북아 평화번영의 시대를 앞당기겠다는 것이 참여정부의 구상이다"면서 "장차 한·미동맹은 상호협력을 통해 경제 및 안보공동체를 지향해나가는 동북아의 미래와 병행 발전할 것이다"고 전망했다.

바야흐로 노 대통령은 지금 '동북아 균형자론'을 내세워 동북아 질서의 '새판 짜기'에 돌입한 셈이다. 집권 3년차를 맞이해 '균형자론'으로 서곡을 울린 노 대통령의 '외교 올인'이 시작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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