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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서 본 프란쯔 조제프 빙하
멀리서 본 프란쯔 조제프 빙하 ⓒ 김비아
어린 시절엔 누구나 한 번쯤 남극이나 북극에 가는 상상을 해보았으리라. 하얗게 빛나는 설원 위로 붉은 태양이 떠오르는 광경은 생각만 해도 가슴이 벅차다. 지금에 와서는 위험을 무릅쓰면서까지 극지에 가고 싶은 마음은 사실 전혀 없지만, 대신에 북극과 가까운 아이슬란드에는 언젠가 한 번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뉴질랜드에서 빙하 트레킹을 할 수 있을 줄은 몰랐다. 여행 계획을 세우면서 비로소 알게 된 사실이다. 극 지방만큼 거대한 빙하는 아니겠지만 빙하를 볼 수 있는 기회가 생겨서 무척 기뻤다.

남섬의 빙하 트레킹으로 유명한 곳은 프란쯔 조제프 빙하(Franz Josep Glacier)와 그 옆의 폭스 빙하(Fox Glacier). 마운트 쿡의 서쪽 사면에 위치해 있다. 3754m의 마운트 쿡을 바로 통과할 수 없으므로 먼 길을 빙 돌아서 남섬 서쪽 해안 지대로 가야 한다.

퀸스타운에서 꼬박 하루가 걸리는 길. 아침 일찍 출발한 버스는 한 시간쯤 지나서 와나카에 닿았다. 와나카는 아름다웠다. 그냥 스쳐가는 것이 아쉬울 만큼. 세상의 첫 아침처럼 하늘도 호수도 짙푸른 빛으로 끝없이 출렁이고 있었다. 대도시 퀸스타운에 비해서 와나카의 깊고 고요한 아름다움은 여기 좀 더 머물다 가라고 나를 유혹했다.

원래는 밀포드 트레킹 이후에 와나카에서 하루 정도 더 걸을 계획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피오르드랜드의 그림처럼 예쁜 자연도 그 며칠이 지나자 조금 싫증이 나기 시작했고 색다른 풍경이 보고 싶어진 거다. 그래서 그 일대를 떠나 멀리 프란쯔 조제프 빙하까지 바로 이동하는 길이었다.

와나카 호수의 아침
와나카 호수의 아침 ⓒ 김비아
호숫가에서 보낸 잠깐의 휴식이 끝나고 버스는 와나카를 떠나 북서쪽을 향해 계속 달렸다. 늦은 오후, 프란쯔 조제프 빙하에 도착했다. 프란쯔 조제프 유스호스텔연맹(YHA, Youth Hostels Association)에는 세계 각국에서 온 여행자들이 많았다. 빙하를 볼 수 있는 곳이 드물기 때문에 남섬을 여행하는 사람들이 한 번은 꼭 거쳐가는 모양이었다. 우리 나라 사람도 여럿 만날 수 있었다.

같은 방을 쓰게 된 우리 나라 대학생들에게 이 나라에 대한 느낌을 물어 보았다. 처음엔 눈이 시릴 만큼 깨끗한 호수의 물빛에 깊이 감동했다고 한다. 그런데 가도 가도 끝없는 호수가 어느 순간 지겨워지더라고 해서 공감하며 웃었다.

저녁을 먹는데, 스웨덴 친구 '하나'가 앞 자리에 앉아도 되겠냐고 묻는다. 나와 같이 YHA에 도착해서 내 바로 윗 침대에 여장을 푼 스무살 아가씨.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처음으로 가족을 떠나 혼자 여행을 왔다고 한다. 스웨덴에서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에 바로 대학에 들어가지 않고 일 년을 쉬는 경우가 많단다. 그 기간 동안 여행도 하고 생각도 많이 하면서 대학에서 전공할 분야를 결정한다는 것이다. 느림이 허용되는 그 사회의 성숙함과 여유가 부러웠다.

날씨는 그다지 좋지 못했다. 이 지역은 비구름이 산맥을 넘지 못해서 늘 흐리거나 비가 내린다. 일기예보를 보니 다음 주까지 줄곧 흐린 날씨였다. 반나절 투어와 하루 투어가 있었는데, 되도록이면 높은 곳까지 올라가고 싶어서 하루 투어를 신청했다. 다음 날 아침, 트레킹 장비를 대여 받은 뒤에 빙하 지대로 출발했다.

버스에서 내려 조금 걸어 들어가니 멀리서 프란쯔 조제프 빙하가 모습을 드러낸다. 수천 수만 년 쌓인 눈이 단단한 얼음이 되어 그 무게를 이기지 못한 얼음 덩어리가 계곡 아래, 지표면까지 흘러내린 모습은 장관이었다. 우리는 열 명 정도의 소그룹으로 나뉘어 트레킹을 시작했다.

빙하 트레킹
빙하 트레킹 ⓒ 김비아
빙하 트레킹
빙하 트레킹 ⓒ 김비아
초반에는 경사가 상당히 급했다. 가이드가 앞장서서 얼음을 깨어 길을 반듯하게 만들면 우리는 그 뒤를 조심스럽게 따랐다. 얼음 계단을 따라 아주 천천히 걷는 것이기 때문에 힘은 들지 않았다. 다만 한 걸음 한 걸음이 긴장의 연속이었다. 한 발자국 한 발자국에 이처럼 강렬하게 집중해 본 적이 없었다.

내 모든 신경이 발에 집중되어 있었고 그 짜릿한 긴장감에 깊이 빠져들었다. 그래서 우리가 어느새 빙벽 하나를 다 올라왔음을 알게 되었을 때 나는 무척 놀랐다. 출발 전에는 저 가파른 절벽 위로 어떻게 올라갈까 궁금하게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래가 까마득히 내려다 보였고, 우리는 이제 본격적으로 얼음 속을 통과하기 시작했다.

빙하는 지금도 움직이고 있다고 한다. 이 지역에 이렇게 빙하가 발달한 까닭은 강수량이 많고 기온이 낮아서라고 들었다. 얼음은 흰 빛이 아니라 신비로운 푸른 빛. 좁다란 빙벽 사이를 걸어가며, 빙하가 내뿜는 신선한 찬 기운 속에 둘러싸여 있노라면, 산과 바다가 생기기 전, 저 머나먼 시원으로 돌아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빙벽 사이를 지나며
빙벽 사이를 지나며 ⓒ 김비아
좁은 터널을 빠져나오며
좁은 터널을 빠져나오며 ⓒ 김비아
피켈로 빙벽을 톡톡 두드려 보았다. 무척 단단해서 맑고 경쾌한 소리가 났다. 나 자신이 낯선 외계의 별에 불시착한 사람, 혹은 막 선사 시대에 도착한 사람처럼 느껴졌다. 어쩌면 우리가 태어난 순간이 우리가 존재하기 시작한 순간은 아닐 것이다. 우리 몸은 더 많은 것을 기억하고 있다.

우리 몸에는 우리 어머니와 아버지의 흔적이 담겨 있고 또 그들의 어머니, 아버지의 흔적이 담겨 있다. 그런 식으로 거슬러 올라가 보면, 우리는 우리 자신 안에서 태초의 인류와 마주치게 되리라. 우리의 유전자 속에는 인류의 조상의 흔적까지 고스란히 담겨 있는 것이다. 우리의 몸과 정신은 진화의 모든 역사에 대한 살아 있는 기록이다.

이 지구에 생명체가 탄생한 시점부터, 아니 지구가 태어난 시점부터 우리는 하나의 가능성으로 존재하고 있었다. 그렇게 본다면 우리의 나이는 이 지구의 나이와 같을지도 모른다. 우주의 나이와 맞먹을지도 모른다. 존재는 신비롭다. 우리가 존재한다는 것보다 더 큰 진실이 있을까.

외계의 별에 갓 도착한 사람처럼
외계의 별에 갓 도착한 사람처럼 ⓒ 김비아
먹구름과 빙하와 바위산과 사람
먹구름과 빙하와 바위산과 사람 ⓒ 김비아
중턱에서 바라본 프란쯔 조제프 빙하
중턱에서 바라본 프란쯔 조제프 빙하 ⓒ 김비아
준비한 샌드위치로 점심을 떼우고, 빙하가 녹아 흐른 물로 목을 축였다. 그리고 좀 더 앞으로 나아간 다음에 방향을 바꾸어 천천히 얼음산을 내려왔다. 트레킹을 마쳤을 때는 이미 저녁이 가까웠다. 기껏해야 두세 시간쯤 지난 것 같은 기분인데, 온 하루가 훌쩍 지나가 버려서 깜짝 놀랐다.

시간의 흐름이란 게 원래 주관적으로 인식되는 법이라고는 하지만, 실제 흐른 시간과 내가 지각한 시간의 차이가 이처럼 크게 벌어진 적은 없었다. 얼음 속에서 보낸 이 하루의 경험이 무척 새롭고 신선했던가 보다. 시간을 까맣게 잊을 만큼.

개미처럼 보이는 사람들
개미처럼 보이는 사람들 ⓒ 김비아
돌아가는 길에 한 프랑스 친구가 다음에 어디에 갈 거냐며 말을 걸어 온다. 나는 트레킹은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그래서 남은 시간 동안 뭘 할지 고민이라고 대답했다. 그는 즐길 것이 얼마나 많은데 하면서 의아해 한다. 아벨 태즈만에 가서 카약도 타보라며 권한다. 나는 속으로 생각한다. 그게 뭐 그리 새롭겠냐고.

여기 와서 줄곧 드는 느낌이 있다. 그들과 우리가 다르다는 것. 동양과 서양은 자연을 대하는 관점이 완전히 다르다. 자연은 그들에게 철저히 타자로, 그들은 자연을 '즐긴다'. 그들에게 자연은 '어드벤처'의 대상이다.

자연으로부터 늘 무언가를 취하고자 하며 그것에서 만족감을 얻는 것 같다. 햇살을 취하고, 좋은 경치를 취하고, 괜찮은 해변마다 호텔을 짓기 바쁘다. 그들의 모험심은 끝이 없다. 그에 반해 동양인들은 자연 속에 저절로 녹아든다. 서로를 타자로 인식하지 않는다. 우리에게 자연은 이 삶의 길을 함께 걸어가는 벗이요, 동반자다.

서양 사람들의 육체적인 강건함과 바깥 세상을 향한 그들의 적극적인 활동성을 물론 참고할 필요가 있으리라. 허나 그들의 태도에서 인생과 자연을 연결해 주는 어떤 중요한 고리가 빠진 것처럼 느껴지는 건 왜일까.

우리의 산하는 인간의 눈높이에 알맞은 크기여서일까. 거대한 자연에 흡수되어 버리는 것도 아니고, 자연을 극복해야 할 대상으로 삼은 것도 아니고, 자연과 정답게 발맞춰 걸어갔던 사람들.

물아일체를 이처럼 내면화한 민족이 또 있을까 싶다. 그러나 20세기 이후에 국토 곳곳에서 자행된 파괴, 그 파괴의 크기만큼 우리의 정신도 가난해진 게 슬플 뿐. 여행 열흘을 넘기면서, 이렇듯 멋있는 자연에 감탄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우리 선인들의 그윽한 삶의 향취가 그리움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덧붙이는 글 | 뉴질랜드 여행기 다섯번 째입니다. 2005년 1월 뉴질랜드 남섬을 여행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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