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4.3은 동북아 평화공동체 구상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하는가?
제주4.3 제57주년을 기념해 1~2일 제주대 국제교류회관에서 열린 4.3평화인권포럼의 주제는 '동아시아 평화공동체를 위하여'.
(사)제주4.3연구소 주최로 열린 이날 포럼은 제주4.3의 정신을 계승하고 동아시아 지역의 평화공동체 구축에 의미를 뒀다.
이날 김영범 대구대 사회학과 교수는 "4.3이라는 역사기호에는 자기 고유의 삶의 터전에서의 정당한 생존권을 지켜내기 위한 민중들의 일대 저항운동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며 "그것은 오늘의 용어로 번역하면 평화인권운동"이라며 '4.3사건'에 정명(正名) 확대를 시도했다.
그는 "1947년의 3.1절 시위 및 총파업으로 시작되어 이듬해의 4월 봉기로 이어진 제주도민들의 저항행동은 미군정·서청 등 외래 지배·침탈세력과 친일파 경찰이 도민들의 생존권을 위협하고 자존심을 짓밟는 데 대한 적극적 항의와 집단방위적 투쟁의 성격이 강했다"고 덧붙였다.
이어 "그 정신적 기초는 대대로 수탈과 억압의 대상이 되어 온 변방의 섬이라는 지리적 조건을 배경으로 형성된 제주인의 강고한 자아의식, 주인의식, 운명공동체의식, 불의에의 저항 정신, 독립정신"이라고 설명했다.
4.3 해결 과정은 평화통일의 모델
"정부의 4.3진상보고서의 작성 과정도 하나의 인권운동"이라는 그는 "하지만 보고서에서는 4.3이 평화회복을 위한 적극항쟁이었다는 측면을 적극 부각시키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또 "이 모두를 포괄하여 4.3진실회복운동, 약칭하여 '4.3운동'이라고 이름 붙일 수 있다"며 "4.3운동의 총체적 성과로 나타날 진실회복과 정명은 한국 현대사의 질곡을 청산하고 그 상처를 치유함으로써 화해와 평화의 시대를 여는 관건이자 시금석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한·중·일의 평화애호세력들이 국경을 넘어선 교류와 연대의 필요성도 제기했다.
"민중-시민연대에 의한 평화네트워크 구축이 시급히 시도돼야 한다"는 그는 이를 바탕으로 학살·생체실험·핵피폭 등의 참상을 겪었던 도시들인 남경·하얼빈·광주·여수·제주·타이완·오끼나와·히로시마 등을 잇는 평화벨트의 형성도 구상해 볼 수 있다고 제언했다.
끝으로 "제주도민이 4.3문제의 해결을 위해 보여준 화해-상생의 정신과 그 성취는 남북한이 상호 존중과 협력을 통해 공존공영을 모색하고 궁극적으로 평화적 통일의 기반을 다져가는 데 있어서 하나의 모델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4.3운동의 향후 과제로는 ▲학살의 궁극적인 책임소재 규명, ▲가해 책임자 처벌 및 피해배상 요구 ▲본격적인 위령·추모사업 전개 등을 거론했다.
20세기 한국의 학살은 '정치적 학살'... '학살의 백화점' 연상
이에 앞서 김동춘 성공회대 교수는 "20세기 한국에서의 학살은 '학살의 백화점'"이라고 비유했다.
그는 "한국전쟁 전후의 학살은 정치적 학살(political massacre)이라고 부르는 것이 가장 적합할 것"이라며 "제주도 4·3사건 당시의 학살이나, 전쟁 발발 직후 국민보도연맹원 학살, 전쟁 중 산청, 함평, 남원 등지에서의 '초토화 작전'은 모두 정치적 의도의 산물"이라고 언급했다.
'올바른 과거청산을 위한 범국민위원회 준비위원회' 상임집행위원장을 맡고 있는 그는 "1945년 이전엔 일본군의 학살, 45~53년 사이에 한국인과 미군에 의해 학살이 이뤄졌다"며 "53~60년대 4.19 당시 군인들에 의해 저질러진 학살로 볼 수 있다"고 시기적으로 학살의 주체를 분명히 했다.
따라서 "인종갈등이 보편적인 서구나 아프리카 등지와는 달리 특정 지역민이나 인종을 전멸하려는 것이었다기보다는 혁명 혹은 극심한 정치 갈등 와중에서 특정 정치세력을 제압하기 위하여 구사된 집단살해였기 때문에 분명히 대량학살(holocaust) 혹은 집단학살(genocide)과는 성격을 달리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한국전쟁 전체를 본다면 한반도에서 '공산주의'에 맞서서 반공기지를 구축하고 그러한 목적을 위해 '빨갱이'를 모두 소탕한다는 취지 자체가 집단학살(genocide)적 성격을 갖고 있다고 볼 수 있다"며 "노근리 사건 등을 비롯한 미군의 무차별적인 폭격과 주민 살해 역시 이러한 정치 이데올로기 하에서 이루어졌다"고 말했다.
한반도 '평화 인권' 허브 가능
박명림 연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동북아 평화공동체 구상의 비전과 전략'을 통해 한반도의 평화인권 허브의 가능성을 제기했다.
그는 "한국은 평화가교국가, 인권가교국가, 화해가교국가를 통해 평화허브, 인권허브, 화해허브를 구축하여 서울에 동아시아 평화, 인권, 화해를 위한 국제 및 지역기구들을 유치할 수 있을 것"이라며 "나아가 한국의 '평화', '인권', '화해' 부문에서의 국제허브화와 지역허브화는 자연스럽게 연결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냉전시대 한반도의 모든 비극과 희생들은 이제 탈냉전과 평화, 세계화, 네트워크의 21세기 한국의 세계 내 위상을 바꾸는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며 "문제는 그 희생을 미래의 평화와 화해로 바꿀 우리의 집합적 지혜라고 강조했다.
이어 우리의 구상과 꿈이 실현될 경우 한반도는 동아시아 평화와 인권의 상징을 넘어 21세기 세계평화와 인권의 허브로 성큼 자라나고 나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비판과 성찰, 연대를 위한 평화공동체 필요
양미강 아시아평화와 역사교육연대 상임운영위원장은 "비판과 성찰, 연대가 없이는 평화공동체를 이뤄내기가 어렵다"며 "비판과 성찰을 넘어 어떻게 연대할 것인가를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유철인 제주대 철학과 교수는 "평화 인권의 보편적 가치도 나라마다, 지역사회마다 받아들이는 부분이 다를 수 있다"며 "평화인권에 대한 가치 공유를 위한 문화적 연대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김수열 제주민예총 회장(시인)은 "예술하는 사람은 발상이 좀 엉뚱하다"고 운을 뗀 뒤 "인권과 평화는 구호가 아니며 여전히 4.3에 대한 진실 규명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보편적 가치를 얘기하는 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며 "하지만 평화 공동체를 아야기하기 전에 현재 진행 중인 4.3에 대해 냉철히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자기반성을 주문했다.
이어 "4.3에 대한 대통령의 정부 사과 시간이 라면 한 그릇을 끊여먹는 3분이 고작이었다"며 "죽은 사람은 있는데 사람을 죽인 주체가 없는 시점에서 여전히 진실규명은 현재 진행형인 문제"라고 말했다.
그는 "진실한 의미의 4.3 진상규명이 여전히 존재하다. 그러한 틀 위에서 평화와 인권을 얘기해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과 일본, '평화공동체'가 아닌 '전쟁공동체' 지향
일본 츄오대(中央)의 이토 나리히코 교수는 "일본과 미국은 이 지역에서 '평화공동체'와는 정반대의 '전쟁공동체'를 만들고 있다"며 "일본 정부와 국민이 '과거의 진실을 규명하고 진정으로 반성하고 사죄'한다면 '동아시아 평화공동체'를 향한 길은 열릴 것"라고 자국 정부를 비판했다.
그는 "일본에는 '이왕 기댈 바엔 거목 그늘'이라는 속담이 있다. 여기서 '거목'이란 미국을 말한다. 일본국민들은 미국이라는 '거목'에 기대고 있으면 안심할 수 있다는 환상을 갖고 있다"고 속담에 비유했다.
이어 "이는 제국주의에 대한 환상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 제국주의 환상이 과거를 반성하지 않고, 과거에 침략했던 한국, 중국 등 아시아 각국의 여러 민족들에 대해 여전히 차별의식을 갖게 하는 원인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토 교수는 "올해는 전후 60주년, 사람으로 치면 환갑이다. 환갑이란 원점으로 돌아가는 것"이라며 "일본의 전후 민주주의와 운명을 함께 해 온 사람으로서 전후 60주년이 되는 올해를 일본 민주화 원년으로 삼아야 한다"며 민주주의의 원점으로 돌아갈 것을 주장했다.
역사를 바로 보는 안목 길러야
일본 오키나와에서 온 아라카키 야스코씨(이민사 연구가)는 '일본 오키나와전쟁과 주민학살의 교훈'을 통해 전쟁체험기록에서 겪는 문제를 제기했다.
그는 "오키나와현은 제2차 세계대전에서 지상전에 휘말려 주민 4명 중 1명이 죽는 전례 없는 일을 겪었으며, 종전 후 27년 동안 미군점령 하에 있었다"며 "이 과정에서 오키나와의 경우에도 주민학살과 집단 자결이 빈발했다"고 참혹했던 그 때 상황을 설명했다.
하지만 "미일안보체제 하에서 이라크에 자위대를 파병하기 위해 개헌 움직임까지 이는 등 좋지 않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며 "이 딜레마안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역시 과거 역사를 바로 보는 안목을 갖는 것이며 역사를 제대로 알지 못하면 아픔을 공유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중국 남경대학살과 중국인들의 인식'에 대해 발표한 주바오친 중국 남경대 역사학과 교수는 "교육과정에서 역사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하지 못해 오게 되는 경우의 폐해는 심각하다"며 역사 인식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중국에 일본 유학생들이 오는데 중국에 대해 '침략'이라는 단어보다 '진입'이라는 단어를 쓰는 것을 알게 됐다"며 "학생들의 관점을 전환시켜 평화에 대한 교육으로 이어가겠다"고 다짐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