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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조그만 계집아이를 데리고 어느 백인 남자가 가게로 들어섭니다. 다림질을 관두고 손님을 맞으러 가니 맥래(McRae)라는 이름의 남자 손님이었습니다. 이 손님은 가게 문을 나설 땐 언제나 "감사합니다"란 한국말로 인사를 합니다.

알고 보니 아내가 한국여자였습니다. 무슨 연유인지 단 한 번도 우리가게에 아내인 한국여자는 온 적이 없고 혼혈아인 5세 가량의 여자아이와 들릅니다.

언젠가 차를 타고 가다가 건널목에 서 있던 가족을 본 적이 있는데 한국인 아내는 늘씬한 미인이었습니다. 맥래씨도 훤칠한 백인남자로 아마 스코틀랜드계 영국인을 조상으로 가졌겠지요. 이름에 의외로 Mc 혹은 Mac으로 시작되는 손님이 많습니다.

내가 손님접대용 사탕항아리를 손짓하자 동양미와 서양미가 어우러져 귀엽기 짝이 없는 그 여자아이는 "땡큐"라고 답합니다. 이내 아빠인 맥래씨가 귓속말을 하자 한국어로 또박또박 "감사합니다"라고 앙증맞게 말합니다. 한국어로 사용하는 말은 아마 몇 개 되지 않겠지요.

봄비 속을 두 부녀가 손을 잡고 차로 돌아가는 모습을 보니 무언가 그 아이에 대해 같은 민족의 동질감이랄까 아니면 이곳에 사는 이민자로서 혼혈 아이에게 느끼는 어떤 연민이랄까 묘한 감정이 생기더군요.

그래도 그 아이는 아버지를 백인으로 둔 어엿한(?) 캐네디언입니다. 문제는 양쪽 부모를 한국인으로 둔 혈통상으로는 틀림 없는 한국인인데 정서상으로는 한국인과 너무도 먼 사람들을 여기서 만날 수 있다는 겁니다.

한국인도 아니고 캐네디언도 아닌 어른과 아이들을 만나면 어떻게 대할까 혼란스럽습니다. 한국인 커뮤니티에서 한국 글과 말을 가르치는 한글학교가 많지만 이미 영어가 모국어가 된 그들이 외국어로 배우는 한국어는 어렵기만 합니다.

성인이 다된 모습으로 한글학교에서 한글을 깨치려 노력하는 그들을 보면 측은하기도 하고 한국인 부모들은 그간 무엇을 했을까 하는 의문도 가져봅니다. 일주일에 한두 번의 한글교육으로 그 어려운 한글과 한국말이 그들에게 배워지지도 않겠지요.

많은 한글학교가 교회나 성당에 있다는 사실 자체가 한국인으로서 부끄러운 사실은 아닌지요. 중국 화교가 운영하던 수원에 있던 중국집이 생각납니다. 몇 대를 한국에서 살지만 그들 화교는 자기들끼리는 언제나 중국어로 소통합니다.

이민 전에 시간이 나면 가족과 들른 그 중국집 주인 가족도 어김없이 중국어로 대화하다가 한국 손님에게는 완벽한 한국어로 주문을 받곤 했습니다.

여기서 만난 중국인도 마찬가지입니다. 상가 전체가 중국사람 가게가 입점한 중국 상가에 가보면 마치 중국과 같은 느낌이 듭니다.

반면에 블로어의 한국인 마을에 가보면 어설픈 70년대의 읍내와 같은 모습에 실망하게 되죠.

제가 하고 싶은 말은 한국말을 모조리 까먹거나 배우지 못하여 단 한마디도 못하는 이도, 그리고 그를 둘러싸고 있는 한국어를 사용하는 한국인들도 서로들 부끄러워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아니 오히려 영어만 구사하는 한국인을 적응에 완전히 성공한 무슨 영웅 취급이라도 하는 광경을 보면 '아! 우리 한국인에게는 정말 뿌리 깊은 사대감이 있구나…'하는 자탄마저 듭니다.

이제 고인이 되신 마라톤 영웅 손기정 선생이 친구 딸이자 재일 여류작가가 찾아왔을 때 "나는 일본말을 알지만 한국인과는 절대로 일본말로 대화하지 않는다. 하지만 친구의 딸로 찾아왔으니 오늘만 특별히 일본말로 대화하는데 다음부터는 한국말로 대화하길 바란다. 그리고 일본에서 자랐지만 한국어를 모른다는 사실에 부끄러워하라"고 한 일화가 생각납니다.

그 말에 잘 나가던 그 재일여류작가는 그냥 눈물만 흘렸다지요.

그렇습니다. 한국에 다시 적응 하러 갔다가 두 달만에 돌아온 아들 녀석과 이상과 같은 대화를 온타리오 호숫가를 거닐며 했습니다.

"아빠, 나는 한국인으로 이곳에서 살면 되죠?"
"이 녀석아, 그럼 한국인으로 살지 이곳이라고 캐네디언이 되냐?"

이렇게 대답하고는 전 날 밤에 딸아이 공부를 봐주다가 영어 텍스트에서 '접미사' 부분을 설명하는데 애먹던 기억이 났습니다. 분명 접미사에 관한 공부를 하고 있었는데 초등학교 2년을 마치고 온 딸아이는 '접미사'란 이상한 단어를 알아듣지 못합니다.

"얘, 온이야. 접미사란 말이야 한자어야. '접(接)'은 붙인다는 말이고 '미(尾)'는 꼬리, 즉 근본이 되는 단어 꼬리에 붙어 있는 말이란 뜻이야…."

딸아이는 뚱한 표정으로 열띤 저의 설명을 듣습니다. 그런 딸아이가 교회에서 자기와 같은 여자아이 둘을 앞에 앉히고 한국어를 가르치는 한글교사라는 사실에 저는 쓴웃음을 짓습니다.

덧붙이는 글 | 토론토 이민 가정 가장으로 느끼는 단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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