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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8월 촬영한 화순항 모습. 화순해수욕장과 산방산이 보인다.
2002년 8월 촬영한 화순항 모습. 화순해수욕장과 산방산이 보인다. ⓒ 오마이뉴스 윤성효
해군이 2002년 제주도 도민과 시민사회단체의 반발에 부딪혀 유보했던 제주 화순항에 해군기지 건설을 다시 추진하기로 해 논란이 일고 있다. 이와 관련해 제주방어사령부 측은 "동아시아의 해상 교통로 보호와 남방항로 확보를 위해 제주 기동함대 배치가 필요하며 미래 해군기지로는 화순항이 최적지"라고 기지 건설 당위성을 주장하고 나섰다.

이에 대해 제주참여환경연대와 제주환경운동연합 등 제주도의 시민사회단체들은 대규모 해군기지 건설은 '평화의 섬'으로서의 제주도의 위상과 부합하지 않는다며 반발하고 있다. 특히 화순항 건설 문제는 노무현 정부의 '동북아 균형자론'과 미국 주도의 동아시아 미사일방어체제(MD) 구축과 맞물려 있어 더욱 큰 관심을 끌고 있다.

이와 관련해 군당국에서는 "한국은 미국으로부터 MD 참여를 요청 받은 바도 없고 참여할 계획도 없다"며 화순항 건설과 MD의 무관성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은 이미 미국 MD의 전초기지화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 미국 MD의 '전초기지'되고 있다

미국은 2003년 8월 말에 패트리어트 최신형인 PAC-3을 추가로 배치한 것을 비롯해, 오산·수원·군산에 모두 48기(6개의 포대)의 패트리어트 미사일을 배치한 바 있다. 이에 더해 미국은 2004년 가을 들어 광주광역시에 PAC-3와 PAC-2로 구성된 16기의 패트리어트 미사일을 추가로 배치하는 한편, 미국 텍사스주 포트 블리스에 있는 제35 방공포 여단 본부를 오산공군기지로 이전시켰다. 이에 따라 주한미군은 2005년 4월 현재 모두 64기(8개의 포대)의 패트리어트 미사일을 실전 배치해 놓고 있다.

미국은 한국에 패트리어트를 배치하는 것과 함께, '합동전술지상기지(Joint Tactical Ground Station)'라고 불리는 이동식 조기경보 레이더를 이미 배치했다. 한미연합사에는 'CJTMOC'라는 기구를 만들어 MD 작전 교리를 개발해 오고 있으며, 을지포커스 렌즈 등 한미합동군사훈련에 MD 작전도 포함시켰다. 또한 2004년 9월에는 최첨단 전투체계 및 탄도미사일 탐지·추적 기능을 갖춘 이지스함을 동해에 배치했고, 올해부터는 북한의 노동과 대포동 미사일을 겨냥해 SM-3을 장착한 이지스함을 배치할 예정이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PAC-3가 배치된 기지가 중국과 인접한 남한의 서남부에 집중되어 있고, 그 기지는 미국 공군력이 주둔하고 있거나 유사시 공군력이 배치될 지역이라는 것이다. 수원, 오산, 군산은 미국 공군력의 동북아 전초기지이고 평택은 주한미군 재배치를 통해 '주요작전기지'(main operation base)로 업그레이드될 예정이며, 광주 비행장에는 유사시 오키나와 등에 있는 미 공군력이 배치되는 곳이다.

미국이 남한의 서남부를 군사력 투사의 근거지로 삼으면서 유사시 이들 기지를 방어하기 위해 PAC-3 배치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여기에 더해 제주도에 화순항이 건설되면 한국은 지상 MD에 이어 해상 MD의 기지화를 피할 수 없게 된다. 화순항 건설 문제를 '한국 해군의 역량 강화'라는 좁은 시야를 넘어 미국의 동아시아 군사전략의 관점에서 바라봐야 한다는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 나오는 것이다.

화순항에 해군 기지 건설되면, 해상 MD 기지화 불가피

동아시아 지도를 보면 쉽게 알 수 있듯이 제주도는 동아시아의 전략적 요충지이다. 21세기 들어 점차 그 갈등이 표면화되고 있는 미일동맹과 중국 사이 중간에 있을 뿐만 아니라, 대만 해협과는 불과 1000km 떨어진 지역이다. 만약 미국이 이 곳을 해군 기지로 활용할 수 있다면, 미국은 중국 및 대만 해협과 가장 가까운 전초기지를 확보할 수 있게 된다.

잘 알려진 것처럼 미국은 중국을 21세기의 '전략적 경쟁자'로 규정하고 중국이 미국과 대등해지는 것을 사전에 좌절시킬 수 있는 군사력을 확보하는 것을 핵심적인 군사전략으로 삼고 있다. 부시 행정부가 한미동맹과 미일동맹을 재편하면서 주한미군과 주일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을 강화하고 MD 능력을 배가하고 있는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 나오는 것이다.

특히 일본을 대중국 봉쇄의 기축(基軸)으로 삼아 일본의 군사대국화를 독촉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지난 2월 19일 발표한 '미일 안보 공동성명'에서 대만해협 문제를 처음으로 '공동 전략목표'에 포함시켰다. 이는 중국이 대만에 무력 사용을 할 경우 군사 개입을 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제주 화순항 기지 건설 계획도
제주 화순항 기지 건설 계획도 ⓒ 해군본부 홈페이지
해군도 인정하고 있는 것처럼, 화순항이 건설되면 미국 해군도 이 기지를 사용하게 된다. 특히 미국의 이지스함뿐만 아니라 항공모함도 정박할 수 있도록 대규모의 부두를 만들 예정이다. 이는 대만을 포함한 동아시아 MD 체제에서 탄도미사일 요격이 가능한 스탠다드미사일-3(SM-3)을 장착한 이지스함을 대거 동아시아에 배치하려는 미국의 계획과 맞물려 제주도가 미국 주도의 해상 MD 체제의 전초기지가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에 대해 해군측은 화순항 건설과 MD는 무관하다고 강변하고 있다. 그러나 화순항 해군기지가 건설되면 미국의 이지스함이 정박할 가능성을 인정하면서 이와 같은 주장을 하는 것은 설득력이 없다. 또한 화순항을 기지로 사용할 한국의 KDX-Ⅲ도 미국 주도의 MD와 밀접한 연관을 갖고 있다. 이 함정에 사용될 이지스 전투체계의 기종은 미국 해군이 MD용으로 개량한 기종과 동일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해군측은 "우리 해군 이지스 구축함은 북한이 보유하고 있는 장거리 유도탄을 탐지·추적·격파할 수 있도록 만든 것이지, 미일 MD체계와는 상호연동 되도록 만든 것이 아니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마치 한국이 북한의 탄도미사일을 요격하기 위해 '한국형 MD'를 추진하고 있는 것처럼 들린다.

그러나 최신형 이지스 전투체계는 다른 MD 체계의 상호연동되도록 설계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효과적인 미사일 요격을 위해서는 고성능 레이더와 인공위성 등 정보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점에서 해군측의 설명은 설득력이 없다. 미국과 연합방위체제를 이루고 있고, 무기체계의 상호운용성을 군당국 스스로 강조하면서 MD만 예외일 수 있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미국이 2002년 4월에 한국에 이지스 전투체계를 판매하기로 결정하면서 "이로써 미국은 한국과 함께 MD를 효과적으로 할 수 있게 되었다"고 발표한 것은 한국의 이지스함이 미국 주도의 MD와 무관하다는 해군측의 주장과 상반된 것이기도 하다.

해군은 제주도에 대규모의 해군 기지를 건설하면 제주도의 안전이 증진되고 해상 교통로 확보에도 도움이 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위에서 설명한 것처럼 제주 화순항이 한미연합 해군의 중추 기지, 특히 해상 MD 기지가 되면 중국은 이 기지를 유사시 우선적으로 공격하려고 할 것이다. 오히려 제주도를 물론 한국의 안전이 위태로워질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안정적인 해상 교통로를 확보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불필요한 적을 만들지 않고 협력 관계를 강화하는데 있다. 미국이 중국을 전략적 경쟁자로 규정하고 대중국 군사 작전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 한미동맹도 재편하고 있는 현실에서 제주도마저 미국 군사력의 전초기지로 변질된다면, 한중간의 긴장 고조는 불가피해진다. 이렇게 되면 오히려 해상 수송로도 위태로워질 수 있다.

57년 전, 무자비한 국가폭력으로 약 3만명이 희생된 제주도는 수십년간 숨죽여온 그 아픔을 딛고 '세계 평화의 섬'으로서의 웅비를 준비하고 있다. 노무현 정부가 제주도를 '평화의 섬'으로 지정한 것도 이러한 아픔과 희망을 동시에 봤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제주도에 대규모 해군기지가 들어서고 이 기지에 미국 항공모함과 이지스함이 들락거리면 제주도는 '평화의 허브'가 아니라 '해상 MD의 전초기지'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보다 큰 틀에서 제주 화순항 건설 문제를 바라봐야 할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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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네트워크 대표와 한겨레평화연구소 소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저의 관심 분야는 북한, 평화, 통일, 군축, 북한인권, 비핵화와 평화체제, 국제문제 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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