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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35세 촬영. 사진을 볼 때마다 머리엔 무슨 기름을 바르셨냐고, 그 주머니엔 뭐가 들어 있느냐고 어린아이 칭얼대든 묻고 싶은데 땅속에만 계시니….
아버지. 35세 촬영. 사진을 볼 때마다 머리엔 무슨 기름을 바르셨냐고, 그 주머니엔 뭐가 들어 있느냐고 어린아이 칭얼대든 묻고 싶은데 땅속에만 계시니…. ⓒ 송주현
지금 내 나이 무렵 돌아가신 아버지. 죽음을 서너 해 앞두고 가족사진을 찍어야겠으니 애들 챙겨서 따라 나서라고 하셨던 게지. 때마침 읍내 시장의 사진쟁이가 추수 중인 마을을 다니며 싸게 찍어주겠노라고 흥정을 놓았을 테고. 원래 일기쓰기를 즐겨 하셨고 가정적인데다 풍류를 제법 아셨다던 이 양반은 미리 팥 두어 말로 셈도 치러 놓은 상태였을 테지.

어머닌 농사도 해야 하고 햇살은 짧아지는데 무신 사진이냐고 그다지 관심을 두시지 않았을 게야. 결국 아버지 혼자라도 자전거를 타고 읍내 나가서 사진을 찍으셨는데 그 사진이 마지막으로 남을 줄이야.

어쩌면 지금의 나와 저리도 닮으셨는가. 곧 스스로의 삶이 끝날지도 모른다는 느낌이라도 받으셨던가. 보는 이로 하여금 연민을 자아내게 하는 저 눈빛을 보라. 난 두고두고 이 사진을 좋아하지 않을 예정이었다.

그가 자식 다섯이 딸린, 그래서 평소엔 어떨지라도 이런 사진 속에서는 입을 앙다물고 눈에 불을 켬으로써 강인한 인상을 박고 한번 마음먹은 일은 끝까지 완수하며 일평생 한가지 곧은 심지로 살고도 남을 것 같은 표정이어야 하는 '가장'이라는 운명이었음에도 카메라를 향해 금세 고해성사라도 할 것처럼 저 우수를 자아내는 나약함이라니.

아직 점잖과 시선의 무게를 모를 나이였다고는 하나 곧 얼마 후 황망히 자신을 땅에 묻고 남은 어린 아내와 자식들이 수없이 쳐다보며 이미 죽어 없어진 자신을 탓하고 그리워하기엔 너무도 처연한 사진이란 말이다.

아버지의 사진과 화해를 한 게 언제였더라.

딸아이에게 카메라를 들려주고 아빠 좀 찍어봐라, 아니, 아니야. 그게 아니고 그렇게 들어야지. 그렇지. 자, 이제 아빠가 멋진 표정을 할테니까 찍어 알았지? 아이는 꾸부정하게 카메라에 눈을 들이 대고 있고 나는 이윽고 포즈를 잡는다.

가장 품위있고 보수적이면서도 그 고집스러움을 통해서 아이에게 너도 나중에 아빠가 죽으면 이 사진속의 아빠를 보고 강한 생명력을 잃지 말거라. 이렇게 만들어 내는 표정으로. 나중에 저 아이가 나를 기억할 때 아, 나의 아버지는 바위같고 산 같은 그런 분이셨구나하고 스스로 자신도 모르게 나의 힘을 느껴 강하게 살아나갈 수 있도록. 그런데….

"아빠, 그런 표정 말고 그냥 날 쳐다봐. 내가 여기 있잖아."

딸아이의 사진기에 남은 내 표정은 그날의 기분에, 그날의 내 나이에 맞게, 그날 내 어깨 위에 있었던 삶의 무게만큼 약간은 쓸쓸함을 담은 서른 중반의 한 아버지.

어쩌면 아버지도 처음엔 내가 딸아이에게 했던 것처럼 그런 표정이셨을지 모르겠다. 사내답고 당당하고 엄격한. 거기에 적당한 우아함과 맵시까지 섞어서. 그랬는데 혹 어느 능란한 사진가가 아버지에게 사는 얘기를 물어봤겠지.

배다른 어머니에게 적응해야 했던 유년기와 제법 공부에 취미가 있어 우등 반장을 도맡아 했으면서도 끝내 중학교로 이어지지 않았던 부모의 무지와 홀대 속에서 그림자처럼 살아야 했던 사춘기와 탕진에 익숙한 시아버지와의 갈등으로 강퍅해지는 아내를 뚜렷하게 설득해내지 못하는 남편으로서의 심정과 다섯이나 되는 아이들.

또 그 아이들을 키워낼 만큼 건강하지 못할 거라는 무력감과 한숨과 다가올 세월과 살아내야 하는 시간과 결국은 흙과의 싸움에서 닳아질 자신의 손톱과… 어쩌면 아버지가 눈물이라도 날까봐 그 전에 성급하게 셔터가 눌려졌을지도. 아, 나의 아버지. 가엾은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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