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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불멸의 이순신>이란 드라마가 인기인 모양이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거북선을 구경하려는 사람들이 많았다. 뱃머리는 말 그대로 거북이 형상이다. 바로 밑에는 귀신머리가 그려져 있다. 지붕덮개는 철로 만들었다. 그 위에 ‘칼송곳’이 촘촘히 박혀 있다. ‘칼송곳’ 사이로 사람이 다닐 수 있는 좁은 십자로(十字路)가 나 있다. 돛대도 두 개 보였다.
우리 가족은 거북선 안으로 들어갔다. 방은 두 개고 화장실이 네 개다. 노가 서까래처럼 천장에 걸쳐 있다. 거북선에는 22개의 대포구멍이 있다. 화포뿐만 아니라 다른 무기들도 보인다. 배 밑으로 공격해오는 적을 막아내는 데 쓰는 ‘장병겸’, 근접해오는 적병을 무찌르는데 사용한 ‘장검’, 적선에 던져 배를 끄는데 사용한 ‘사조구’ 등등. 모두 훌륭한 무기들이었다.
우리 가족은 몇 곳 더 구경하고 해군사관학교를 나섰다. 아이들이 배가 고프다고 했다. 우리는 ‘중앙로타리’ 쪽으로 갔다. 그곳에는 야시장이 서 있었다. 아이들과 아내는 비빔밥을, 나는 국밥을 주문했다. 바비큐가 빙빙 돌고 있다. 주인이 칼로 살점을 떼 낸다. 나는 동동주를 시키려다 8000원이란 가격을 보고 그만둔다. 너무 비싸다.
우리 가족은 ‘진해탑’을 향했다. 365계단이다. 숨이 찬다. 나만 그런가 했더니 그게 아니다. 모두들 숨이 차는지 쉬엄쉬엄 오른다. 중간 중간에 노점상이 보인다. 사주보는 사람, 민속 못 박기 판을 펼쳐 놓은 사람, 그림 그리는 사람, 커피를 파는 사람 등등. 계단은 온통 사람들로 가득 차있다.
아이들은 이미 보이지 않는다. 큰 애과 작은 애은 계단 올라가기 시합을 하는 모양이다. 그때 유행가 소리가 들린다. 휠체어를 탄 사람이 노래를 부르고 있다. 그 사람 바로 앞에 통이 하나 놓여 있다. 아내는 통속에 1000원짜리 지폐를 한 장 넣었다. 조금 올라가니 그와 비슷한 사람이 또 보인다. 그런데 휠체어를 탄 사람과는 사뭇 다르다.
사내가 바닥에 엎어져 있다. 사지가 축 늘어졌다. 그는 노래 같은 것도 부르지 않았다. 미동도 하지 않았다. 사내의 턱은 동냥바구니에 반쯤 걸쳐 있다. 그 모습이 너무 애처롭다. 그런데 사람들은 냉담하기만 하다. 아무렇지도 않다는 표정이다. 마치 못 볼 거라도 본 것처럼 서둘러 그 자리를 뜨고 마는 것이었다. 나는 사내에게 별다른 도움을 줄 수 없었다. 1000원짜리 지폐 한 장을 주는 것으로 내 마음을 달래야 했다.
마음이 여간 울적한 게 아니었다. 우리 가족은 다시 ‘중앙로타리’를 향했다. 사람이 많이 모여 있는 곳으로 갔다. ‘청소년 오버 왕’이 열리고 있었다. 사회자의 말이 제법 그럴 듯하다. 그는 익살스런 표정을 지으며 ‘오버’를 이렇게 정의하는 것이었다.
“최선을 다하는 게 바로 오버 아니겠습니까?”
사람들이 모두 웃었다. 나도 따라 웃었다. 울적한 기분이 조금은 풀리는 것 같다. 사회자가 첫 번째 팀을 소개한다. 4명의 여자가 등장한다. 음악이 나오고 그에 맞춰 춤을 추기 시작한다. 경쾌한 발놀림이다. 허리가 무척 유연하다. 모두들 하얀 옷을 입었다. 배꼽 위에까지 옷이 올라가 있다.
사람들이 박수를 친다. 나는 그제야 빙긋 웃는다. 건강한 젊음이다. 저런 젊음이 있기에 아직은 희망이 있다. 나는 고개를 든다. 그때였다. 어, 언제 피었는가! 벚꽃이 활짝 웃고 있었다. 마치 눈꽃을 보는 것만 같다. 그 눈부심에 나는 한동안 어찌할 줄 몰랐다. 아름다운 벚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