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요무형문화재 제74호 대목장인 신응수가 <목수>(도서출판 열림원) 라는 책을 펴냈다.
사촌형을 따라 처음 목수일을 시작하게 된 그는 1975년 수원성 복원 공사에 도편수로 참여하게 된 이래, 숭례문 중수 공사부터 시작해서 불국사, 수원 장안문, 경주 안압지, 창격궁, 구인사 조사전, 경복궁, 흥례문에 이르기까지 굵직굵직한 옛 건축 복원 공사 중에 그의 손을 거치지 않은 것이 거의 없을 정도다.
책은 '아름다움에 대하여', '인연에 대하여', '겸손에 대하여', '마음에 대하여', '고독에 대하여', '쓰임에 대하여' 등 크게 여섯 개의 장으로 나뉘어져 있다.
첫 번째 장인 '아름다움에 대하여'에서는 나무의 결과 향, 빛깔, 굽이와 옹이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는 "더디 자라고 우여곡절을 겪으며 촘촘하게 번진 나이테의 나무를 깍았을 때 그 결이 최고로 아름답다"고 말한다. 마치 사람 또한 그렇지 아니하냐고 묻는 듯하다.
'인연에 대하여'라는 두 번째 장에는 쓸만한 나무를 찾아내는 일의 어려움과 벌목하는 과정, 그리고 산판고사에 얽힌 에피소드 등이 나온다.
수령이 매우 오래된 소나무를 벨 때는 특별한 의식이 필요하다. 고사로 예를 갖춘 뒤 톱으로 베기 전 먼저 도끼를 들고 '어명이오'라고 외치는 것이다. 큰 소리로 외친 다음 도끼로 내려찍고 또 '어명이오'라고 외친 뒤 내려찍는 과정을 모두 세 번 행하고 나서야 비로소 톱을 댄다.
이것은 임금의 명으로 어쩔 수 없이 베어 내게 되었다고 나무를 달래는 한편 영험이 있고 오래 된 나무를 베어야 하는 사람에게는 미안한 마음을 덜어 주기 위한 것이다. 생명체의 하나인 나무에 대한 경외감이 엿보이는 의식이다.
세 번째 장인 '겸손에 대하여'에서는 나무의 운반하는 과정의 어려움과 먹긋기, 대패질, 대자귀질 등 나무 다루기에 대한 여러가지 이야기가 자세하게 기술되어 있다.
대패질에 관해 쓴 한 대목은 여태까지 우리가 갖고 있던 대패질에 대한 상식을 여지없이 뒤엎어 놓는다.
원래 우리나라의 대패질은 요즘 목수가 하는 것처럼 자기 몸 앞으로 끌어당기는 끌대패질이 아니라 밖으로 밀어내는 밀대패질이다. 밀대패질을 해야 목수의 힘이 고루 전달돼 평평한 면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 스승의 가르침이었다.
일본식인 끌대패질을 하게 되면 가운데를 꽉 눌러 주어 불필요하게 나무를 파먹게 되지만, 우리 조상들이 하던 대로 밀대패질을 하면 오히려 나무 가운데가 볼록하게 깎여 나가고 가운데를 파먹는 일이 없다는 것이다.
사람 비위 맞추기보다 어려운 게 나무 비위 맞추는 일
네 번째 장인 '마음에 대하여'에서는 나무를 다스리는 일과 사람 다스리는 일에 대하여 쓰고 있다. 그는 나무 다루는 일이 사람 다루는 일과 별반 다르지 않다고 실토한다.
또한, 나무는 각기 성격이 천층만층이다. 사람도 한 사람 한 사람 다 성격이 다른 것과 같다. 성질이 제멋대로인 나무를 함부로 깎아놓으면 쉽게 비틀어지기도 한다. 제 성질 대로 휘어버린 것을 반대로 켜면 나중에 옆으로 돌아가기도 한다. 제 생긴 대로 놔두지 않고 왜 목수 맘대로 반대로 켜냐고 심통을 부리는 것 같다. 제 생긴 대로 제 마음가는 대로 따라가 주는 것이 만만치 않다. 꼭 토라지기 잘하는 여자 마음 같기도 하다. 때로는 사람비위 맞추기보다 어려운 게 나무 비위 맞추는 일이다."
다섯 번째 장 '고독에 대하여'에서 소나무, 잣나무, 박달나무, 미루나무, 전나무, 참나무 등의 나무가 지닌 특성과 쓰임에 대하여 말하고 좋은 나무가 되려면 어떤 환경과 어떤 과정을 거쳐야 하는가에 대하여 결론 짓는다.
깊은 산속에서 홀로 외롭게 자란 나무가 곧고 튼실하다. 나무도 외로움을 견디며 안으로 안으로 파고들어 자란 것이 끝내는 재목이 되는 법이다.
그가 보기엔 사람도 이같이 세상과 단절되어 고독을 극복한 자만이 힘과 풍모를 갖춘 재목이 된다고 믿는 것 같다.
마지막 여섯 번째 장인 '쓰임에 대하여'는 기둥, 주춧돌, 보, 도리와 창방, 서까래, 포 등 건축 부재와 구조 하나 하나에 대해서 자신의 경험과 견해를 털어 놓는다.
나무를 아는 일은 옛 건축 문화를 아는 첫 걸음
사진작가 서원이 찍은 나무의 나이테, 나무의 빛깔, 벌목하는 장면, 산판고사를 지내는 장면, 먹긋기를 하는 장면을 담아낸 사진 등 시간성과 현장성이 고스란히 살아 있는 사진들은 책을 읽는 또 다른 재미를 던져준다.
'나무를 다루다, 사람을 다루다'라는 부제가 붙어 있는 이 책은 부제 그대로 나무를 다루면서, 사람을 다루면서 자연스럽게 깨우친 삶의 지혜가 담겨져 있다. 더구나 우리 옛 건축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갖고 있는 나에겐 여러가지로 흥미 있는 책이다. 아마도 나무를 아는 일이야말로 우리 문화를 이해하는 첫 걸음이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