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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 그 교정에 다시 모인 친구들
그 때 그 교정에 다시 모인 친구들 ⓒ 이종득

그 때 그 교정에 다시 모인 친구들

사람으로 태어났으니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고민하던 때가 있었다. 그때 난 아마도 돈과 명예를 가장 먼저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정답은 그게 아니었다. 어린시절 추억을 함께 했던 친구들과 함께 살아가는 것이 가장 적합한 답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들은 그런 생각을 실천하지 못한 채 불혹이 되었다. 며칠 전 낯선 목소리의 전화가 한 통화 걸려왔다. 어릴 적 코 흘릴 때 만났던 친구였다. 그 친구는 “우리 한번 만나자!”고 뜬금없이 말했다. 난 그 말을 듣는 순간 왠지 모를 기쁨이 느껴졌다.

그래서 우리는 32년 만에 초등학교 동창회를 하게 된 것이다. 몇몇 친구와의 통화 끝에 거제도에 사는 친구, 여수에 사는 친구, 광주에 사는 친구, 포천에 사는 친구에게 엽서를 보내게 된 것이다.

우리들의 모습
우리들의 모습 ⓒ 이종득

우리들의 모습

그렇게 우리 초등학교 동창들은 모였다. 그 어떤 이해관계도 계산적이지도 않은 친구들. 잘난 사람도 못난 사람도 부잣집 아들도 가난한 집 딸도 모두 친구가 될 수 있었다. 그 어느 것도 친구가 되는데 제약을 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런 친구들이 32년 만에 그때 그 교정에 다시 모였다.

역 앞 약국집 딸, 학교 앞 문방구집 딸, 양조장 집 아들 그리고 외갓집에서 초등학교를 다니던 나까지. 그렇게 모인 친구들은 모두 76명이나 됐다. 당시 졸업생 240명 중 1/3정도가 느닷없이 보낸 엽서 한 장을 받고 달려온 것이었다.

우리는 모두 가슴에 이름표를 달았다. 32년이란 시간의 흐름이 우리들을 한눈에 확인 할 수 없게 만든 것일까. “너 몇 반이었냐?”라고 묻는 친구도 있었고 “너 2반 종득이지?”라고 단번에 알아보는 친구도 있었다. 우리는 그렇게 서로를 확인하며 반가운 포옹을 했다.

32년만에 만난 것이었지만 서먹함은 없었다. 너나 할 것 없이 먼저 말을 걸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대부분 고향을 떠나 살고 있는 친구들이어서 외로웠던 시간을 회상하는 이야기가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건강하게 살고 있는 친구들의 모습을 보니 더할 나위 없이 기뻤다.

선생님의 말씀
선생님의 말씀 ⓒ 이종득

선생님의 말씀

우리가 만난 4월 5일 식목일에는 봄바람이 심하게 불었다. 강원도 양양에서는 산불이 나 진화하는 데 큰 애를 먹기도 했단다. 32년 전 우리의 담임을 맡으셨던 선생님을 이렇게 말씀 하셨다.
“나 아닌 사람을 존중하고, 사랑하며, 자기가 하는 일에 관한 지식을 얻는 일에 소홀하지 말고, 책임져야 한다.”

이 말씀을 하신 이상태 선생님은 호랑이 선생님이셨다. 무섭다기보다 규칙에 엄한 선생님이셨다. 학생들이 잘못을 하면 회초리로 몸을 때리는 선생님이 아니고, 바르지 못한 마음을 때려주시는 선생님이셨다. 나는 세상의 이치를 깨닫게 해주신 선생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상식이 통하지 않는 지금 사회의 한 중심에 있는 우리들이 해야 할 일과 지켜야 할 규칙이 무엇일까 생각해 보았다.

세상의 모든 사물은 불에 타고나면 한줌 잿더미로 남는다. 그러나 우리 친구들의 마음속에 담겨져 있는 선생님의 말씀은 영원이 불타지 않을 것이다.

신나게 한판 놀고 나서
신나게 한판 놀고 나서 ⓒ 이종득
신나게 한판 놀고 나서
신나게 한판 놀고 나서 ⓒ 이종득

신나게 한판 놀고 나서

우리 동창들은 벌써 불혹으로 접어들어 다섯 해나 보냈다. 자기의 마음을 다스릴 줄 아는 나이가 된 것이다. 그래서일까. 코 흘릴 적 놀던 운동장에 모이자 금세 순박한 어린아이로 변했다.

반 대항 축구시합을 할 때도 승패는 문제가 아니었다. 친구와 함께 운동장을 뛸 수 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좋았다. 어린시절 공을 잘 차던 심성보가 넘어지자 모두 환하게 웃었고, 헛발질 하는 친구들을 보면서도 크게 웃을 수 있었다.

우리는 이기려는 사람은 이겨도 본전이라는 것을 우리는 이제 깨닫게 된 것일까. 코 흘릴 적에는 축구를 해도 이겨야 한다는 생각이 강해서인지 많이 즐겁지 않았다.

우리는 옛 짝을 찾아 풍선 터트리기도 하고 반 대항 계주도 하면서 머리와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던 가을 운동회의 추억을 하나씩 꺼냈다.

기념식수
기념식수 ⓒ 이종득

기념식수

우리는 왜 불혹의 나이가 되어서 다시 모이길 간절히 원했을까. 제주도에 사는 친구와 여수에 사는 친구, 포천에 사는 친구까지 왜 한걸음에 달려왔을까.

우리는 6년 동안 머물렀던 그 자리에 우리들의 마음을 심고 싶었던 것이다. 후배들에게 우리들의 아름다운 마음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다. 우리는 후배들에게 지금 있는 자리가 가장 아름다운 자리라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던 것이다.

우리는 그 자리에서 시작해 한 걸음 한 걸음씩 지금까지 걸어온 친구들이다. 고단하게 걸어온 친구들도 있을 테고, 가볍게 걸어온 친구도 있겠지만 처음 출발했던 그 자리로 돌아가는 걸음은 즐거움으로 가득할 것이다.

우리는 지금 처음 시작했던 그 자리로 돌아가기를 희망하고 있는 마음을 심어 놓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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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아재양념닭갈비를 가공 판매하는 소설 쓰는 노동자입니다. 두 딸을 키우는 아빠입니다. 서로가 신뢰하는 대한민국의 본래 모습을 찾는데, 미력이나마 보태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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