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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지
'산길을 가다가 어떤 지점에 앉아서 걸어온 길을 되돌아보면 꿈같이 아득하기만 하다. 언제 그 길을 다 왔을까? 정말 내가 그 길을 왔단 말인가? 그래서 인생길은 자주 산길에 비유되는 지도 모른다.'

위와 같은 감정이 비단 알피니스트들만의 것은 아닐 것이다. 이 땅을 사는 누구나 한번쯤은 떠올렸을법한 단상. 서울경제신문 기자출신의 서재경(58)이 '산'과 '삶'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정리한 책 <산을 오르듯 나를 경영하라>(예지) 속에는 이런 잠언이 적지 않게 등장한다.

신문사를 거쳐 국내 유수의 대기업에서 하루 14시간이 넘는 강도 높은 노동에 시달리던 그는 40대 후반에 갑자기 건강이 나빠졌다. 악화된 육체의 건강을 회복하기 위해 시작한 등산. 회복된 건 몸의 건강만이 아니었다. 산은 그에게 정신적 충일감까지 선사한다.

이번에 출간된 책은 홀로 산을 오르며 그때그때 정리한 '서재경식' 깨달음과 철학을 담고 있다. '고생과 고행의 차이는 자율이냐 타율이냐의 차이이며, 타자의 강요가 아닌 자신의 의지로 겪는 힘겨움은 성장의 뿌듯함을 준다'는 진술은 지극히 보편적이지만 그러기에 더 큰 울림을 준다.

어떤 산이건 정상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첫걸음부터 떼어놓아야 한다는, 그런 까닭에 '산을 옮길만한 큰 일을 해내는 사람은 약삭빠른 이가 아닌 우직한 인간'이라는 서재경의 깨달음에 고개 끄덕일 독자들이 적지 않을 것 같다. 가볍고 작은 책이라 등산하는 틈틈이 다리를 쉬며 읽어도 좋을 듯하다.

북적거리는 저자에도 아름다움은 있다
- 유경희의 <시장에서 길을 묻다>


ⓒ 마리서사
이야기를 끌어가는 힘과 구성력이 여느 기성작가 못지 않다. 경남 삼천포 중앙시장에서 도깨비분식을 운영하는 '시장 아줌마' 유경희의 글모음집 <시장에서 길을 묻다>(마리서사)는 갑남을녀가 펼쳐 보이는 가슴 훈훈한 이야기로 가득하다.

3천원짜리 백반 한 상에 딸려오는 반찬으로 세 사람이 한 끼를 나누고, 한 줄에 1천원인 김밥 값에도 벌벌 떨지만, 때론 자기보다 못한 이웃을 위해 거금 1만원을 쾌척할 수 있는 사람들. 아이엠에프 때보다 더 하다는 얼어붙은 경제를 뜨뜻한 오뎅 국물 한 모금과 소주 한 잔에 녹이고, 다시 '삶의 가시밭길'로 웃으며 나서는 사람들. 이들 모두는 우리의 가족이고 이웃에 다름 아니다.

별다른 기교 없이 담담하게 서술되는 유경희의 글이 감칠맛 나게 읽히는 건 시장 사람들의 삶 속에 내재된 투박하지만 더없이 맑은 서정성 때문이 아닐까. 세상 온갖 풍파를 제 한 몸으로 견뎌온 욕쟁이 할머니와 쌀 성님, 혜원이 엄마와 진찬이 아지매의 입담이 얼마나 눈물나게 재밌는지 아래를 보라. 혼자 냉커피를 마시려니 미안한 마음이 들어 눙치는 참외장수 쏘대이모와 시장 사람들의 대화다.

"오다가 다리 위에서 첫사랑을 만났는데 한잔 사 주드라."
"첫사랑이 니 보고 아무 소리 안 하드나?"
"와 안 해. 지금까지 참외장사 밖에 못하냐고 하대."
"첫사랑 따라 가지, 와?"
"참외 팔아야지... 놔두고 가까?"


핍진하게 치고 받는 영남사투리가 빼앗기고 살았던 웃음을 참으로 오랜만에 돌려준다. 반갑다.

한줄 이상의 의미로 읽는 신간들

ⓒ창비
이태준의 <문장강화>(창비)

글을 쓰는 것을 업으로 삼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읽어야할 필독서. 뿐이랴, 논술시험이 일반화된 지금은 고교생들에게도 종요로운 책이 됐다. 이번 개정판은 성균관대 임형택 교수가 옛 말투를 현대어로 바꾸고, 발견된 몇몇 오류는 수정했다.

책이 일러주는 글쓰기 방법을 하나하나 알아가다 보면 왜 "시에는 (정)지용, 문장에는 (이)태준"이라는 말이 나왔는지 절로 고개가 끄덕여질 것이다.

송영 소설집 <새벽의 만찬>(문학수첩)
왜 우리는 뼛속까지 시린 외로움을 앓으면서도 타자를 향해 "나는 고독하오"라고 고백하지 못하는 것일까? 중진 소설가가 이에 대한 답을 찬찬히 일러준다.

구광본 소설집 <맘모스 편의점>(돋을새김)
모두가 가벼움에 열광하는 시대. 그럴수록 인간과 생의 본질에 천착하는 작가가 우리에겐 필요하다. 작가 구광본이 귀한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태기수 소설집 <누드 크로키>(이룸)
현실과 비현실, 환상과 실체의 경계는 어디인가. 끊임없이 자폐와 자학을 강요하는 현대사회의 협박 앞에 초라하게 선 사람들을 탐구한다.

백석의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다산북스)
더 이상 무슨 설명이 필요할까. 한국 현대문학사를 통틀어 가장 위대한 시인으로 손꼽혀 마땅할 백석의 절창들과 만나다. 그는 존재 자체가 시(詩)를 향했던 사람이다.

산을 오르듯 나를 경영하라

서재경 지음, 예지(Wisdom)(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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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꽃> <한국문학을 인터뷰하다> <내겐 너무 이쁜 그녀> <처음 흔들렸다> <안철수냐 문재인이냐>(공저) <서라벌 꽃비 내리던 날> <신라 여자> <아름다운 서약 풍류도와 화랑> <천년왕국 신라 서라벌의 보물들>등의 저자. 경북매일 특집기획부장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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