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기사 쓰는 데 도움이 될까 해서 이것저것 책을 보고 있는데 그중 하나가 <신문읽기의 혁명>이다. 그러나 '편집을 읽어야 기사가 보인다'는 부제가 오히려 제목에 맞지 않나 싶다.
이 책에서는 "왜곡된 신문 편집 구조를 바로 세우는 작업을 현직 신문기자들에게 기대하기 어렵다면, 독자들은 가만히 앉아서 언제나 왜곡된 신문 지면을 바라만 볼 수밖에 없는가"라면서 더 적극성을 가지고 신문을 읽어야 하는 것이 독자의 의무임을 강조하고 있다.
신문 편집의 비밀을 하나씩 읽어 나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과거 일제시대에 일제에 호응하던 자칭 민족지들의 행태와 군부독재시절 '보도지침'과 권력에 알아서 기던 언론들이 이제는 거대 자본과 맞물려 스스로 권력을 가지게 된 과정을 알 수 있다.
이러한 내용을 통해 신문기사라는 것이 기사를 쓴 기자 개인의 의지보다는 편집자나 사주에 의해 변질되고 사실이 왜곡되어 전달되는 것의 구조적인 문제를 차근차근 밝히고 있다.
신문이나 책, TV를 통해 보는 것에 대해 무조건 사실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다. 활자화되거나 뉴스 보도된 경우 그 정보는 그만큼 여론을 호도하고 잘못된 판단을 내리게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 깨닫게 해 준다.
역사를 배우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사기 보도는 '모스크바 3상회의'에 대한 내용이 아닌가 싶다.
1945년 12월 16일 미·영·소 3국의 외상들은 전후 문제 처리를 위해 모스크바에서 3상 회의를 열었다. 미국무장관 번스는 한국인 참여가 적극 제한된 5년 동안의 신탁통치안을 핵심으로 한 해결 방안을 제시하고 이에 소련은 12월 20일 한국의 독립을 부여하기 위한 민주주의적 임시정부 수립을 핵심으로 하는 수정안을 제안했다. 12월 28일 소련측 수정안에 미국측이 약간 수정을 가해 발표한 것이 '조선에 관한 모스크바 3상회의 결정서'다.
그런데 국내에는 우익을 중심으로 신탁통치 반대운동이 벌어지기 시작했고 '찬탁=극좌/친소'라는 틀로 정국을 몰아가면서 자기들의 세력을 급속히 확대해 나가게 된다.
개인 경험으로는 1992년에 있었던 쌀 개방압력에 대한 것이 생각난다. 언론에서는 연일 쌀개방이 세계적인 추세라거나 개방 안하면 고립된다는 등의 논리를 주입시키고 있었고 노동자 농민의 아들 딸인 노동자들이 마치 자기 생각인양 '고립되니까 개방해야 된다'고 아무 비판 없이 말하던 모습이 답답하고 아픈 기억으로 남아 있다.
기사라는 것이 그것을 보도하는 자의 가치관에 따라 얼마나 달라질 수 있는가 어렴풋이나마 알수 있는 사건이었다.
이 책은 '편집을 해체하고 다시 편집해 읽어야'하는 신문 읽기의 혁명에 대해 말하고 있으나 내용면에서 봤을 때는 조선·중앙·동아 등 극우 신문에 대한 고발이라고도 보여진다. 특히 수없이 예로든 조선일보의 보도행태로 자연스럽게 반 조선일보 운동을 마음에 심기에 부족함이 없다.
굳이 조선일보를 읽으며 재편집해서 보는 수고를 하느니 제대로된 가치관을 가진 신문을 찾아서 편한 마음으로 신문 읽기를 하고 싶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인터넷 신문 참말로 http://www.chammalo.com/ 에도 보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