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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봄은 아름다워라
ⓒ 정일관

4월 중순으로 접어들면서 화사하게 꽃등을 켜고 찬란하게 피어 있던 그 많던 목련꽃들은 뿔뿔이 흩어져 모두 땅으로 돌아가고 마지막 남은 꽃만 매달려 바람에 흔들립니다. 더군다나 날이 부쩍 포근해져서 반팔 소매 옷을 입고 다니는 아이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개나리도 노란 색이 퇴조하고 아래로부터 푸른 잎사귀가 차오르고 벚꽃은 이미 분분히 날려 짧은 시절 인연이 아쉽습니다.

▲ 우리들은 꽃순이
ⓒ 정일관
경남 합천의 대안학교인 원경고등학교 아이들도 수업 시간에 자꾸 바깥을 내다보며 답답해 하고 있습니다. 바야흐로 꽃이 피는 봄이 난만하여 곳곳의 꽃 소식에 마음이 들뜨는 것을 어쩌지 못하겠지요. 게다가 전원 기숙사 생활을 하면서 100여명의 학생들이 모여 봄을 타고 있기 때문에 학교 교정이 턱 없이 좁을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또한 봄을 타는 것이 어찌 아이들뿐이겠습니까? 선생님들도 꽃과 연녹색 잎사귀들이 슬며시 고개를 드는 모습을 보고 창밖으로 고개를 돌리기 일쑤입니다. 그래서 선생님과 아이들은 소위 야외 수업이라는 이름으로 봄 길을 산책하기도 하고, 학교 근처 느티나무 숲이 있는 체육공원 정자에 앉아 부드러운 바람을 쐬기도 합니다.

▲ 선생님도 소녀같이(왼쪽), 손잡고 마구 달리고 싶은 청춘이여!(오른쪽)
ⓒ 정일관

마침 학교에서는 합천청소년상담원의 도움을 받아 김성숙 박사를 초빙하여 아름다운 학교를 만들기 위한 역할극을 준비 중입니다. 아이들의 속내를 이끌어내기 위한 한 판 마당을 학년별로 벌이고 있는 것이지요. 무학년제로 수업하는 선택 특성화 교과가 역할극에 참여하는 학년의 아이들이 빠져 제대로 이루어질 것 같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각 반 지도 선생님들은 역할극을 이미 끝낸 연극반, 동영상 편집반, 그리고 문예창작반 3학년 아이들 몇 명을 데리고 아직 남아있는 벚꽃의 끝자락을 보기 위해 합천댐으로 향했습니다.

기도를 위해 새벽에 출근하고 보충수업과 상담, 그리고 당직을 서느라 밝을 때 퇴근해보지 못한 선생님들은 훤한 대낮에 흐르는 황강의 아름다운 자태를 보며 매우 생소한 풍경을 보는 듯 생소하면서도 흐뭇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또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즐거운 비명을 질러댔습니다.

▲ 출렁이는 물결 같은 마음(왼쪽), 때론 쓸쓸해지기도 하지(오른쪽)
ⓒ 정일관

합천읍에서 합천댐까지 길게 늘어선 벚꽃 가로수 길은 비록 벚꽃 잎이 많이 져서 만개했을 때의 그 기막힌 아름다움은 없었지만 바람에 흩날리며 떨어지는 꽃잎을 보는 것도 괜찮았습니다. 합천댐으로 가는 도중에 있는 보조댐엔 만발한 개나리가 그대로이고 벚꽃도 꽤 풍성하여 우리는 모두 함께 사진을 찍었습니다. 아이들은 터질 듯한 웃음으로 사진기에 집중하였고, 사진 찍는 그 자체의 재미에 빠져들었습니다.

합천 본댐에서는 고요한 물결에 햇살이 부서져 내륙인 합천에서는 좀처럼 느끼기 어려운 또다른 정취를 느끼게 해줬습니다. 아이들은 선착장으로 내려가는 길을 이리저리 뛰어 다녔습니다.

▲ 합천댐에서
ⓒ 정일관
저는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봄은 저 청춘들에게 무엇일까? 저 19살 눈물겨운 아이들에게 꽃 피고 지는 이 하염없는 봄은 과연 무얼까? 저 꽃 같은 아이들이 맞이하는 꽃 같은 봄날은 무엇을 선사하는 걸까?’라는 생각 말입니다.

이런 저런 생각이 들자 저는 슬퍼졌습니다. 저 봄이 마치 상처 같아져서입니다. 불안한 미래에 막연한 아픔으로 신열을 앓던 저의 10대가 떠오른 것 같기도 하고, 주체할 수 없는 답답함을 합천댐에 던지고 싶지만 유보된 자유와 참혹한 시험 경쟁에 내몰려 누런 낯빛이 된 이 땅의 고등학생들이 생각났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나마 대안학교가 아이들에게 여백이 되고 숨통이 되어 저 아이들에게 봄이 봄다울 수 있었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도 아울러 들었습니다. 봄이 그야말로 시작이요, 희망이요, 생명이요, 자유를 상징하며 그 많은 함축적 의미를 품고 있는 계절이면서, 그 의미들이 아이들의 삶에서, 아니 우리들의 삶에서 빛이 날 수 있게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이 아이들은 역할극에서 인생의 기차를 타고 가며 차창 밖으로 정말 버리고 싶은 기억들을 많이 버렸다고 합니다. 그 기억들은 주로 중학교 때 당했던 우울하고 괴로웠던 기억들이었습니다. 온전히 사람에게서 당한 그 기억들은 우리 아이들의 가슴 한 구석에 묻혀 상처가 되었지만 이번 기회에 그것을 들어냄으로써 자유로워질 수 있었습니다.

더욱 더 다행인 것은 우리 아이들에게 인생의 기차를 타고 가다가 가장 내리고 싶은 편안하고 좋은 역을 물었더니 원경고등학교라고 대답하는 아이들이 많았다는 것입니다. 정말이지, 학교는 우리 아이들이 어둠에서 빛으로 나아가는 통로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맑고 훈훈한 심법으로 아이들을 푹 감싸 안는 학교가 되고 싶습니다. 아이들의 마음을 살려내는 심법이 아니면 도무지 교육이 되지 않음을 모두가 깨달아 가는 학교가 되고 싶습니다.

학교로 돌아오는 길에 학창 시절의 마지막 봄이라며 아쉬워하는 3학년 아이들과 윤도현밴드가 부르는 ‘행진’이란 노래를 함께 불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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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합천의 작은 대안고등학교에서 아이들과 만나고 있습니다. 시집 <느티나무 그늘 아래로>(내일을 여는 책), <너를 놓치다>(푸른사상사)을 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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