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를 방문했던 노무현 대통령이 16일 저녁 현지 동포 간담회에서 한 말에 대해 지금 이러쿵저러쿵 말들이 많다.
대구경북 지역신문인 <매일신문>도 4월 18일 사설 '그렇다면 노 대통령은 반미인가'를 통해 노 대통령의 말을 보도했다. 노 대통령이 어떤 말을 했고 이를 <매일신문>은 어떻게 비판했는지 자세히 살펴본다.
"제일 걱정스러운 것은 한국 국민인데, 상당히 유식한 한국 국민인데, 말하는 걸 보면 미국사람보다 더 친미적인 사고방식 갖고 얘기하는 사람이 있는 게 내게는 제일 힘들다."-노무현 대통령
"국익과 안보를 위해 미국을 동맹국으로 여기며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을 '걱정'하고 '힘들어' 한다면"-<매일신문>
<매일신문>은 노 대통령이 걱정한 '미국사람보다 더 친미적인 사람'을 '국익과 안보를 위해 미국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려는 사람'으로 대체했다. 하지만 이것은 노 대통령이 말한 '친미'의 범주를 지나치게 확대 해석했다고 볼 수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 가운데 거의 대부분 '미국과의 좋은 관계 유지'를 원할 것이다. 그리고 최근에는 북한조차도 미국과의 관계 정상화를 위해 사력을 다하고 있지 않은가. 그렇다고 이들 모두를 '친미'라고는 하지 않는다. 노 대통령은 '국익과 안보라는 미명 아래 미국의 입장을 일방적으로 받아들이려는 사람들'을 우려했다고 보는 것이 옳다.
그렇다면 <매일신문>은 왜 노 대통령의 말을 지나치게 확대 해석했을까? 노 대통령의 심중을 몰랐기 때문일까? 아니다. <매일신문>은 노무현 대통령을 대부분 국민들과 분리해서 이들과 대치 관계에 놓이게 할 요량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참여정부가 추진하는 외교정책은 절대 다수 국민의 의사와는 다른 것이므로 수정해야 하고, 기존의 한미동맹을 강화해야 한다는 그들의 평소 주장을 여론화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자신의 논리를 주장하기 위해 상대방의 진의를 왜곡하는 행위는 논리의 시비를 따지기 이전에 이미 바람직하지 못한 태도다. 논리가 빈약하거나 비논리적으로 선동하려는 목적을 가진 자가 아니라면 말이다.
"한국 사람이면 한국 사람답게 생각하고 판단해야 한다…한ㆍ미 동맹에는 전혀 이상이 없다"-노무현 대통령
"(이 둘은) 모순이다. 무슨 연유인지 그 배경 언저리가 의문스럽고 솔직히 걱정스럽다."-<매일신문>
<매일신문>은 '한국 사람이 한국 사람답게 생각하고 판단'하면 반드시 한미 동맹에 이상이 있어야 한다는 논리이다. 그리고 그것을 걱정한다.
그렇다면 묻지 않을 수 없다. 한국과 미국이 '동(등한)맹(약)' 관계라면 한국 사람이 한국 사람답게 행동하는 것과 미국 사람이 미국 사람답게 행동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 아닌가. 동맹이란 원래가 서로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졌을 때 형성되는 것이기 때문이니 말이다.
그런데 한국 사람답게 생각하고 판단하는 것이 동맹에 문제가 된다면 한국 사람들은 한미동맹관계에 대해 누구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누구의 처지에서 판단해야 할까? 만약에 우리의 동맹 문제를 우리의 처지에서 생각하고 판단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동맹이라 할 수 없다.
최소한 우리의 입장에서는 그렇다. 미국의 입장에서는 아주 바람직한 동맹관계일지는 몰라도 말이다.
만약에 <매일신문>이 노 대통령의 발언을 비판하는 의도가 이러한 기존의 한미동맹관계를 유지하고 강화하기 위해서라면 '미국 사람보다 더 친미적인'이란 말을 반추해보기 바란다. 이 세상 그 어디에도 자국민답게 생각하고 판단한다고 해서 문제가 발생하는 동맹은 없기 때문이다.
또 설령 문제가 발생한다고 하더라도 새로운 관계를 모색하는 것이 당연한 처사이지 문제 있는 동맹을 억지로 끌고 가려고 하지는 않는다. 모든 동맹은 자국민답게 생각하고 판단하는 기반 위에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한국인들 사이에 가장 경계해야 할 국가는 일본이고 동맹국으로는 역시 미국을 첫손꼽는 경향이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런데도 대통령의 입에서 '반미'라는 용어가 쉽게 사용된다는 것은 국익에 전혀 보탬이 될 리가 없다."-<매일신문>
하지만 노 대통령은 '반미'라는 용어를 사용한 적이 없다. <매일신문>의 비약이다. '미국사람보다 더 친미적인 한국사람'을 비판하는 것을 곧바로 '반미'로 연결시켰다. 이분법적인 흑백논리의 전형이다.
'친미'를 반대하면 '반미'가 되고, '반북'을 반대하면 '친북'이 되고, '반공'을 반대하면 '친공'이 되고…. 언제까지 이런 냉전시대의 단선적 시각으로 세상을 보려는가. 이래서야 복잡한 국제관계에서 어떻게 국익을 운운할 수 있겠는가.
냉전의 장벽이 무너진 지도 벌써 10여 년이 흘렀다. 그런데도 지금껏 그 끝자락을 잡고 왈가왈부하고 있다. 봄은 한창인데 두터운 외투 벗기를 두려워해서야 급변하는 사회에 적응하기 어려울 것이다.
문제는 다른 곳에 있다
노무현 대통령의 동북아 균형자론을 비롯한 일련의 외교적 발언들은 한반도를 둘러싼 이해 관계가 미국과 일치하지 않음을 전제로 한다. 또 일본 제국주의 문제, 북한 핵문제, 주한미군 역할 문제 등에서 의견 차이가 이라크 파병과 같은 참여정부의 온정주의적 외교정책으로는 메울 수 없다는 것을 반증한다.
그렇다면 문제는 이런 한미간의 의견 불일치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에 있다. 노 대통령의 터키 발언은 이런 불일치의 극복 방안으로 미국 입장의 수용을 제시하고 있는 세력들에 대한 견제의 의미가 크다. 또 노 대통령은 이런 불일치를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극복하기를 바란다는 의지를 밝힌 것이다.
하지만 그 말과 의지를 뒷받침할 만한 실질적인 내용은 아직 눈에 띄지 않는다. 국제관계에서 우리의 요구를 관철시키기 위해서는 그에 따르는 치밀한 대응책이 반드시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 대통령의 말 몇 마디로 바뀔 한미관계가 아니지 않은가.
따라서 언론은 이런 부분을 비판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동맹이니 좋은 관계니 뜬구름 잡는 얘기를 하지 이전에, 또 국익이니 안보니 하며 불안심리를 부추기기 이전에 우리와 미국과의 관계가 진정한 동맹관계인지 미국이 진실한 벗인지를 먼저 따져보고, 그 대응책을 찾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안태준 기자는 참언론대구시민연대 언론모니터팀장입니다.
자세한 문의 : 053-423-4315/http://www.chammal.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