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은 손 내밀 곳 없는 수렁과 같다. 점점 빠져들지만 답을 찾아도 답을 주지 않는. 아무리 멋진 카메라를 손에 들어도, 수많은 책을 찾아보아도 뭔가 알 것 같으면서도 알 수 없는 것이 '사진'이다.
이런 고민은 사진의 매력에 빠지고 어느 정도 주말 취미 수준을 벗어나게 되면 누구나 겪게 되는 열병일 것이다. 어떻게 찍어야 하나 기술적인 고민부터 시작해 어떤 카메라를 사용해야 하나 장비병을 앓게 되고, 나중에는 왜 내가 사진을 찍어야 하나, 사진이란 무엇인가 심오한(?) 고민까지.
고민이 심각한 지경에 이르면 비싼 카메라는 뒤로 하고, 다른 이의 사진에 오롯이 집중하게 된다. 보통 때 같으면 비싸다 투정 부릴 사진집도 사보게 되고, 마음에 드는 사진은 빚을 내서라도 사야겠다는 생각까지 하게 된다(필자는 지금까지 두 점의 사진을 구입했다. 사진을 돈을 내고 사면 사진에 대한 가치가 달라 보인다). 훌륭한 사진가의 사진을 보며 절망하기도 하고, 용기를 얻기도 한다.
스스로 묻고 답을 구하는 것이 힘들 때마다, 이런 생각을 갖게 된다. 진정 나의 사진을 이끌어 줄 '멘토'가 곁에 있었으면…. 하지만 참 어려운 일이다. 어떤 공부든 뛰어난 스승을 만나는 것은 행운이 따라야 한다. 행운이 오기 전에 자신의 실력도 열심히 갈고 닦아야 한다.
사진은 카메라를 다루는 법과 필름을 현상하고 사진을 인화해서 편집하는 기술적인 것을 기본적으로 익혀야 한다. 요즘은 디지털 기술도 필요하다. 기술적인 것은 마음먹기에 따라서 단시간에 익힐 수도 있으나 사진에 자신이 가진 감정을, 영혼을 불어넣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하물며 취미 수준을 어떻게든 벗어나려 노력하고 있는 나 같은 아마추어에겐 더 말할 것도 없다. 이럴 땐 나를 이끌어줄 수 있는 멘토를 찾기에 목마르다. 많이 읽고 보고 셔터를 누르는 것만으론 부족하다.
얼마 전 아주 아이러니한 기사를 읽었다. 정주하(백제예술대) 교수가 <동아일보>에 기고한 글(3월 15일자)의 제목은 '혹시 디지털 중독 아닙니까'였다. 일부 내용을 그대로 옮긴다.
"일부 대학에서는 암실을 폐쇄하고 컴퓨터를 들여놓고 학생들에게 소프트웨어를 가르치며 시대에 뒤떨어지지 않으려 노력해 왔다. 이러한 노력은 지금 부메랑이 되어 그 대학을 괴롭히고 있다. 그것은 바로 디지털 매체를 다루는 방식이 쉬워졌기 때문이다.
모두에게 다가가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디지털 방식은 그 근간을 당연히 대중화에 두고 있다. 다루기 쉬워지는 매체 방식에 노력과 시간을 투자할 리가 만무하다. 혼자 할 수 있는 일을 굳이 학교에 가서 배울 턱이 없는 것이다."
누구나 디지털 카메라를 가지게 되었고, 예전처럼 어려운 과정을 거치지 않아도 사진을 만들어낼 수 있는 시대가 되었기 때문에 사진을 깊이 있게 배울 수 있는 사진과를 택하지 않는 것이 요즘 세태다. 그의 말처럼 '온 국민이 사진가라도 되겠다는 듯 카메라를 들고 다니는' 그런 세상이 된 것이다.
하지만 카메라를 들고 있다고 해서 누구나 사진가가 될 순 없다. 진정 사진을 이해하기 위해선 사진 속의 알맹이를 읽어야 하고, 자신의 사진 속에 알맹이를 담을 수 있어야 한다. 단지 셔터를 누른다고 해서 사진가가 되는 것은 아니다.
고민 많은 아마추어가 '멘토' 같은 책을 만났다. 몇 쪽 되지 않는 작은 책이지만 깊이가 있다. 사진을 가르치기 시작한 지 40년, 사진을 배우려는 학생을 위해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고 방향을 가르쳐준 필립 퍼키스 선생님의 <사진강의 노트>다.
처음 책을 본 순간 40년이란 세월을 오직 '사진'만을 고민했던 노(老) 선생님의 저작치곤 너무나 짧다 느꼈지만, 150쪽 안에 담긴 내용들은 군더더기 없이 알맹이만 모아둔 값진 것이었다. 한 장 한 장 책장을 넘길 때마다 그동안 머리 속에 넣어두었던 헝클어진 실타래가 스르르 풀리는 느낌이었다.
머리말에서 "사진을 가르친다는 것은 외국어나 운전을 가르치는 것처럼 눈에 보이는 성과가 금방 드러나는 일이 아니다.(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를 학생들이 구석구석 깊이 볼 수 있도록 하는 데 과연 얼마나 도움이 되었겠는가?)"라고 했지만, 짧은 글 속엔 학생의 눈높이에서 '사진이란 무엇'인지 진지하게 가르쳐 주려는 선생님의 자상한 눈빛이 느껴진다.
그럼 디지털 시대의 사진에 대한 선생님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낚시꾼이 죽었다. 깨어나자 눈앞엔 이제까지 한번도 본 적이 없는 아름다운 강이 흐르고 있었다. 두 손에는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낚싯대가 들려 있었다. 들뜬 마음에 곧장 낚시 바늘에 고기밥을 꿰어 강물에 던졌다. 순식간에 길이 20인치의 완벽한 갈색 송어를 낚아 올렸다. 그는 탄성을 질렀다. 내가 천국에 와 있구나! 그는 다시 낚싯대를 강물에 던졌다. 똑같은 갈색 송어가 잡혔다. 던질 때마다 완벽한 최상의 고기가 걸려들었다. 우리들의 낚시꾼은 결국 그가 있는 곳이 천국이 아니라는 사실을 천천히 깨닫게 되었다."(124쪽)
선생님은 짧은 우화로 '항상 최상의 결과를 가져다 줄 수 있는 디지털 기술에 매몰되지 말라' 충고한다. 아무리 좋은 기술이라도 사진을 위한 도구일 뿐이라는 이야기다. 새로운 기술을 받아들이되 그것이 최선이라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 디지털에 '중독된' 사진가들이 새겨들을 이야기다.
그렇다면 사진가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다시 선생님의 이야기를 듣는다.
"기술이 중요한 게 아니다. 문제는, 보고 느끼는 사진 속에서 사진의 내용이 되는 질감과 명도를 제대로 살릴 수 있도록 사진가의 섬세함을 기르는 일이다. 음악의 음색, 목소리의 어조, 감정의 느낌, 시의 가락, 떨림의 장단, 동작의 선."(81쪽)
사진가에게 필요한 것은 기술이 아니라 사진 속에 자신의 감정과 의도를 담아낼 수 있는 '섬세함'이다. 그것은 비싼 카메라나 그래픽 프로그램을 다루는 능력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한국의 저 소박한 도자기나 낡은 음반에서 지직거리며 들려오는 레스트 영의 재즈 멜로디가 어째서 인간이 표현할 수 있는 최상의 형태 가운데 하나일 수 있는지 깨닫게 되었을 때, 나는 '예술'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대한 해답을 찾게 되었다."(72쪽)
깨달음을 얻는 것은 순간이지만, 깨달음의 얻기까진 끊임없는 노력과 식지 않는 열정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깨달음을 글로 전하는 것은 깨달음을 얻는 것보다 더 힘든 일이다.
<인간가족(The Family of Man)>으로 유명한 사진가 에드워드 스타이켄은 말했다. "내일의 문맹자는 사진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 될 것이다."(이 책 67쪽에도 인용되어 있다.) 40년의 세월동안 오롯이 '사진'을 고민하며 살았던 필립 퍼키스 선생님의 '초라하지만 진실된 내용'이 담긴 <사진강의 노트>를 읽어 보는 것만으로도 '내일의 문맹자'는 되지 않을 것이다.
덧붙이는 글 | 필립 퍼키스의 사진강의 노트 : 사진과 삶에 관한 단상
필립 퍼키스 / 박태희 옮김 | 눈빛 | 2005년 02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