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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에서 붙인 압류 딱지.
법원에서 붙인 압류 딱지. ⓒ 오마이뉴스 김영균
경기도 용인에 사는 김아무개(45)씨는 지난주 당황스런 경험을 했다. H카드사에 300만원이 조금 넘는 빚이 있던 김씨의 집에 수원지방법원 집행관 일행이 들이닥친 것. 집행관 일행은 김씨와 아내의 만류를 뿌리치고 가재도구 곳곳에 '압류'란 붉은 딱지를 남겨두고 떠났다.

집행관과 함께 온 카드사 직원들은 떠나면서 "내일까지 빚을 갚지 않으면 압류된 재산을 경매에 부치겠다"는 경고를 남겼다. 당장 돈이 급하게 된 김씨는 아내가 내놓은 결혼 예물을 팔아 다음날인 14일 318만8000원을 입금시킨 뒤 압류 딱지를 뗐다. 김씨는 당시 하고 있던 사업이 망해 단돈 1만원도 구할 수 없는 형편이었다.

그리고 법원 집행관 홈페이지(http://marshal.go.kr)에서 자신의 '집행정보'를 확인하던 김씨는 깜짝 놀랐다. TV와 비디오, 피아노, 침대, 장롱 등 압류 당한 살림도구의 감정가 액수가 128만원밖에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지난 13일 법원 집행관이 찾아와 압류한 김씨의 재산 목록은 모두 17가지. 사실상 김씨가 가진 대부분의 값 나가는 살림도구들이 포함돼 있었다. 하지만 법원의 감정가는 터무니없이 낮았다.

법원 감정가에 따르면 450만원을 주고 산 피아노가 35만원, 150만원 짜리 중고 골프채 세트가 15만원밖에 되지 않았다. 심지어 비디오나 침대, 장롱은 1만∼5만원에 계산돼 있었다. 압류된 재산이 모두 경매에 넘겨지더라도 김씨가 진 빚 300여만원에는 턱없이 모자란 액수였다. 만약 김씨가 제때 돈을 구하지 못했다면, 살림도구를 몽땅 날리고도 200만원에 가까운 빚을 더 갚아야 할 판이었다.

압류 물품 감정가 턱없이 낮아... 빚도 다 못 갚을 판

"집행관과 함께 감정원의 감정사가 같이 왔는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감정사가 같이 왔더라도 어떻게 한번 슥 쳐다본 것만으로 감정가를 매길 수 있는지…. 돈을 못 줬으면 재산을 다 잃고도 빚이 더 남는 것 아닙니까?"

김씨는 그때 생각만 하면 부아가 치밀어 오른다.

현행 제도에 따르면 20만원 미만의 가재도구 등은 보통 집행관이 감정가를 산정하고 있다. 다만 고가의 제품은 감정인을 따로 선정해 감정가를 확정하도록 돼 있다.

수원지방법원 집행관실은 감정가 산정에 별다른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수원지방법원 집행관실 관계자는 "감정가는 통상 수원감정원 전문가에 의뢰해 산정한다"며 "집행관이 나갈 때면 감정사도 동행해 감정을 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김씨가 확인한 법원 감정서. 대부분의 물품이 10만원 미만으로 책정돼 있다.
김씨가 확인한 법원 감정서. 대부분의 물품이 10만원 미만으로 책정돼 있다. ⓒ 오마이뉴스 김영균
김씨가 더 억울해 하는 것은 원래 빚이 300여만원도 아니었다는 점이다.

애초 김씨가 H카드사에 지고 있던 빚은 170만원. 김씨는 이 돈을 갚을 방법이 막막하게 되자 H카드로부터 대환 대출을 받았다. 대환 대출로 전환하면서 김씨가 2년 동안 분할 납부해야 할 돈은 290만원(이자 24%)으로 늘어났다. 김씨는 지난 1월 첫회 분할금을 냈지만 2월부터 연체를 했고, H카드사는 법원을 앞세워 곧바로 강제집행(압류)을 해왔다.

사실 H카드사로서는 이번 일을 적법하게 처리했다고 주장할 수 있다. H카드사는 13일 이전 이미 여러차례 강제집행 가능성을 전화와 서면으로 통보한 것으로 밝혀졌다.

또, 지난 7일에도 법원 집행관이 강제집행을 하기 위해 김씨 집을 찾았으나 김씨 부인이 문을 열어주지 않아 그냥 돌아간 적이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13일 일어난 강제집행은 법원 집행관의 두 번째 방문이었다.

H카드사 채권팀은 "강제집행에 앞서 김씨가 채무조정을 하기 위해 찾아온 적이 있다"며 "이 때 일부 이자 감면을 제안하기도 했지만 김씨가 갚을 수 있는 돈과 차이가 많아 혜택을 주지 못했다"고 밝혔다.

김씨도 빚을 갚지 못한 자신에게 1차 책임이 있다는 점은 인정하고 있다. 다만 김씨는 H카드사 채권팀을 직접 찾아가는 등 채무를 갚겠다는 뜻을 여러 차례 밝혔는데도 강제집행을 실행한 것은 문제라는 주장을 펴고 있다. 결국 채무자를 벼랑 끝으로 몰아가는 방식이 아니냐는 얘기다.

김씨는 "사채업자라면 이해가 가겠지만, 대기업인 H카드사가 빚을 갚을 의지가 있는 채무자에게까지 시간 여유조차 주지 않고 강제집행을 실행한다면 결국 모두 죽으라는 것 아니냐"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씨는 법원의 압류 물품 감정 방법 역시 채무자에게 전적으로 불리하게 돼 있다고 지적했다. 김씨는 "법원의 방식대로라면 채무자는 헐값에 전 재산을 다 잃고도 빚을 갚지 못하게 된다"며 "가족까지 있는 채무자가 살림도구를 몽땅 가압류 당한다면 살아갈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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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오마이뉴스 입사 후 사회부, 정치부, 경제부, 편집부를 거쳐 정치팀장, 사회 2팀장으로 일했다. 지난 2006년 군 의료체계 문제점을 고발한 고 노충국 병장 사망 사건 연속 보도로 언론인권재단이 주는 언론인권상 본상, 인터넷기자협회 올해의 보도 대상 등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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