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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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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반에 오래 결석했던 녀석이 있습니다. 고등학교에 입학해서 본 첫 시험에서 성적이 바닥이란 걸 알게 되면서 의욕을 잃고 전학 가거나 자퇴를 하겠다고 학교에 나오지 않았습니다.

우리 학교는 시내에서 비교적 성적이 우수한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입니다. 그런데 지난 해 입학 정원보다 적은 학생이 지원해서 나중에 추가모집을 했는데 그 때 들어온 녀석입니다. 입학 초에는 다른 아이들과 다름없이 수업도 받고 야간 자율학습도 하고 학교생활에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던 녀석입니다. 그런데 시험을 본 뒤부터 결석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녀석은 제 성적에 맞는 인근 실업계 학교로 전학을 가고 싶어 했습니다. 그런데 그 학교에서는 전학을 쉽게 받아주려 하지 않았습니다. 일단 다른 지역을 거쳐서 올 경우에 받아줄 수 있다고 했답니다.

녀석이 결석한 지 열흘이나 지난 뒤 아버지의 손을 잡고 다시 학교로 왔습니다. 그동안 마음고생이 심했는지 얼굴이 많이 수척해 보였습니다. 다행히 군대에 있는 형이 휴가를 나왔다고 합니다. 형과 밤을 새워 이야기를 한 뒤에야 다시 학교에 다니기로 마음을 굳혔다고 합니다.

다른 친구들에 비해 영어나 수학 과목의 기초가 형편없이 뒤떨어져 수업 마치고 집에 가서 기초 과정부터 다시 공부를 하고 싶다는 말을 했습니다. 다른 아이들처럼 야간 자율학습을 하지 않고 집에 가서 혼자서 공부하고 싶다는 것입니다. 최선을 다해보겠다는 녀석이 기특해서 어깨를 다독여주었습니다.

ⓒ 이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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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 잔디만 있는 것보다는 민들레며 제비꽃이 섞여 자라는 잔디밭에서 더욱 봄의 정취가 느껴집니다. 잡초로만 생각하면 뽑아 버려도 되겠지만 함께 봄을 맞는 생명체라고 생각하면 민들레 홀씨가 바람에 날릴 때까지 두고 보는 것도 괜찮다는 생각이 듭니다. 제비꽃 꽃잎 떨어지고 조그만 씨앗이 여물 때까지 기다려주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열흘 만에 돌아온 녀석도 제 나름의 꽃을 준비하며 살아갈 것입니다. 지금은 해 진 뒤의 민들레처럼 풀이 죽어 있지만 언젠가는 민들레보다 더 화사한 꽃을 피울 거라고 믿으며 지켜보겠습니다.

덧붙이는 글 | 제 홈페이지 http://www.giweon.com 에도 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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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서 있는 모든 곳이 역사의 현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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